블랙미러3, 추락 - 조 라이트

(출처:www.mbird.com)

- 쿠키도 하나 드릴까요? 서비스예요.

- 어머 참 친절하시네요.

[공감신문] ‘오늘 한번의 실수로 평점이 3.9로 떨어졌다. 다시 4점대로 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주엔 친구들과 XX랜드에 가기로 했으니까! 거긴 4.0이상만 입장할 수 있단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한다. 기억하자. 더 친절하게, 더 착하게, 더 환하게.’

어느날 일기에 이렇게 적을 수도 있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대학 학점을 이야기 하는건지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건지 뭔지. 학점이 3.9면 잘한거라며 위안 삼을 수도 있고, 오디션이야 씁쓸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릴 수도 있다치자. 점수 미달로 입장을 불허한 XX랜드에 대고선 찰지게 욕한마디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 일기에서 말하는 평점이 사람들이 ‘나’에게 준 평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추락]의 시대엔 스마트 렌즈를 통해 손쉽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SNS가 상대방의 얼굴 옆에 홀로그램으로 뜨니 굳이 핸드폰으로 뒤지지 않아도 된다. 할말이 없을 때는 사진들을 보면서 대화거리를 찾을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저 사람은 어떤 곳을 가는지 어떤 걸 먹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쉽게 해결되고,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하던 친구들과도 별점을 날리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평점 시스템 덕에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별점을 주고받으며 호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하게 별 한개를 날려도 된다, 눈치는 보이겠지만. 별 한개를 받지 않기 위해선 서로 얼굴 붉힐 일없이 예의를 갖추고 대할 것이다. 세상엔 친절과 웃음이 넘치고 너무나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평점이 있다면 높고 낮음에 대한 혜택이 달라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평점을 매기는 의미가 없을테니까. 4.5 이상인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든 혜택을 받고, 평점이 택도없는 수준이라면 출입이 금지되는 곳도 생길테다. 그러니 사람들은 높은 평점을 위해 어떻게든 호감을 얻어야만 한다. (옷깃도 스치기 싫은) 상대에게 억지로 웃음 짓고, (관심도 없는) 댁네 아이가 그린 그림이 수준급이라고 칭찬을 쥐어 짜야할 것이며, (자리를 박차고싶지만) 상대와의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게다가 상대를 겪어보기도 전에 평점으로 단정짓게 되고, 결국엔 평점과 인성은 같은 것으로 인식 될 것이다. 높은 평점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 낮은 평점의 사람들은 나쁜 사람으로. 세상엔 거짓과 억지 웃음이 넘치고 행복을 가장한 감옥이 될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출처:GQ Magazine)

- 누나가 이러는건 펠리컨 코브 때문이잖아?

- 그게 어때서? 거기서 살고 싶다고!

- 거긴 가짜 행복이나 꾸며대는 감옥이야!

손쓸 수 없을만큼 커져버린 SNS. 이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상대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게 아니라) 알 게 되었다. SNS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거리는 소멸되었다. 고로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고 영영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분명 SNS에도 순기능이 있다. 연락이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 친구를 찾고, 어색하게 전화하지 않아도 인사치레로 안부를 묻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SNS 상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게다가 친구의 일상을 알게되니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도 몇몇 SNS의 순기능을 경험했다.

하지만 궁금해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상대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다. 아니 알아버렸다고 생각하고 호기심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정말 그들에 대해 아는걸까? SNS만 보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맛있는 것만 먹고, 좋은 곳만 가고, 여행도 잘 다닌다. SNS의 일상을 진짜 그 사람의 일상으로 쉽게 믿어버리게 된다. 얼마전 친구가 “내 SNS를 보고 몇몇 애들이 내가 엄청 한가한줄 알더라”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바쁜 스케줄 가운데 가졌던 휴식을 올렸을 뿐인데, 그것이 ‘친구는 한가하다’라는 이미지를 준 것이다. 아무 고민없이 행복해보이기만 한 그들을 보며 왜이렇게 나만 찌질하게 사는 것 같지라며 우울할 수도 있다. 게다가 난 왜이렇게 ‘하트’가 없는 거야! ‘좋아요’가 없냐고! 별거 아닌 하트가 왜이리도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건지. 좋아요와 하트의 갯수가, 팔로워의 명수가 사람의 인기와 호감을 반영하며, 삶을 평가하게 만들기도 한다.

(출처:국민일보)

한때 대만의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의 사진이 인터넷을 달궜다. ‘The Truth Behind Instagram photos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밖의 진실)’이라는 제목이었다. 이런걸 두고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는 걸까. 이제는 사진 편집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우리는 그걸 적극 활용한다. 사진의 지저분한 부분은 잘라내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SNS에 올린다. (몇번을 썼다 지웠다 한) 센스있는 몇마디는 덤이다. 우리는 편집된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고 좋아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추락]의 여주인공 레이시는 소꿉친구 나오미(그녀는 평점 4.8이다)의 화려한 일상을 보며 별 다섯개를 날린다. 그녀도 나에게 별 다섯개를 주길 바라면서.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사이트에선 인스타그램을 대행하고 광고를 대신 기획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팔로워와 하트를 판다! 우리는 십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한명의 친구를 살 수 있고, 오천원을 내면 좋아요 백개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이 아닌 유령의 흔적들. [추락]에서의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평점 3점짜리 남동생과 따로 살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던 레이시는 펠리컨 코브에 살고 싶어한다. 부동산 직원은 ‘당신이 이 집에서 산다면 이런 삶이 펼쳐질 거예요’라고 말하듯 레이시의 가상의 삶을 홀로그램으로 띄워 현혹시킨다. 게다가 터무니없는 가격에 망설이는 레이시에게 “평점 4.5가 넘으면 할인을 해드릴 수 있다”는 한방을 날린다. 평점 4.2였던 레이시는 급하게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고 어떻게 하면 평점을 높일 수 있는지 코치를 받는다. 더 친절하게(가식적이게), 더 착하게(더 가식적이게), 더 환하게(더 더 가식적이게) 레이시는 ‘높은 평점’을 가진 사람들에게 점수를 받기위해 안달한다. 그 와중에 나오미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로 초대받게 되고, 높은 평점의 하객들에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출처:Tobias van Schneider)

- 당신은 지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괴물 소가 싼 똥처럼 생기셨네요.

- 당신은 그 실험실에서 버려진 것 같은데요.

당신 얼굴은 생물학적인 사고로 만들어져서 피카소도 눈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말할 것 같네요.

“거 참 말도 안 되게 생겼네.”

나오미의 결혼식을 가는 길은 험난하다. 일이 꼬이고 꼬여 평점이 점점 내려가고, 결국 나오미에게 “오지마.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평점이 2.6인 애는 내 결혼식에 올 수 없어. 4점대 초반인 너와의 우정을 하객들에게 보여주는게 원래 내 완벽한 시나리오였어. 적어도 0.2는 올라갈 상황이었지. (중략) 너무 낮아서 아무 도움도 안 돼.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처음부터 점수때문이었냐는 레이시의 물음에 나오미는 “집어치워! 너나 나나 점수때문이었지. (중략) 돌아가!”라며 비수를 꽂는다. 다섯살 때 처음 만나 래그 아저씨 인형의 추억을 나눈 나오미와 레이시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버린다.

우리는 안심해야 한다. 아직 이런 세상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아직은 오프라인에서마저 SNS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솔직함을 영영 잃어서는 안 된다. 트렁크를 끌며 결혼식장으로 걸어가던 레이시에게 태워다 주겠다는 할머니의 평점은 1.4였다. 원래는 4.6이었지만 아픈 남편이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 밀려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될대로 되란 식으로 가식없이 할말을 하니 사람들이 낮은 평점을 줬기 때문이었다. 레이시는 그런 할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꽉 끼는 신발을 벗어던진 기분이라고.

SNS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식적이고 행복한척 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분명 진실되고 행복한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이 입은 옷이 사이즈가 맞지않아 숨을 못 쉴 지경인데 억지로 입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 행복을 가장한 감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마지막에 나오미의 결혼식에서 난동을 부린 탓에 구치소에 수감된 레이시는 건너편에 수감된 남성과 함께 신랄하게 서로를 비난한다. 몇년 동안, 또는 평생 동안 그러한 말은 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하는 레이시가 느꼈을 감정은 무엇일까. 아마 ‘통쾌함’이지 않을까. 그래, 통쾌함이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비난하라는게 아니다. 그냥 이 한마디 해주자는 거다.

“그래, 나 이렇게 사는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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