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타락(墮落) [타ː락] [명사] 1.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

‘타락’에 대한 국어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선(善)한 인물이 악(惡)으로 노선을 변경할 경우, 우리는 그를 ‘타락했다’고 표현한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역시 현실세계처럼 타락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들은 악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작중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악한 인물보다 이 ‘타락해서 악당이 된 자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런 캐릭터들은 ‘타락의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는 대체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구나’라는 식으로 동정심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평면적인 악당과 달리 입체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더 매력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물론 현실 속에도 타락한 인물들은 차고 넘친다. 다만 한 개인이 누군가를 ‘악’하다고 규정하기까지는 누구라도 100% 공감할 근거와 명분이 필요하다. 오늘의 공감포스트는 ‘타락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다만 상기한 이유 때문에, ‘가상의 인물들’ 중에서만 꼽아봤다.

※ 내용 중에는 특정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다.

■ 정의감에서 태어나 비참히 끝장난 사신(死神)

[웹페이지 캡쳐]

사람의 이름이 적히면 죽는 노트에 관한 만화, ‘데스노트’는 주인공부터가 타락한 인물이다. 작품은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를 ‘최종보스’로 설정하고, 주인공에 반하는 세력들이 주인공의 뒤를 쫓는 식의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 여기에 의문의 명탐정 ‘L’과의 두뇌싸움까지 더해져 전세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웹페이지 캡쳐]

야가미 라이토는 ‘주인공/최종보스’라는 두 포지션을 충실히 수행해낸 대표적 예시로 꼽을만한 인물이다.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데스노트를 직접 사용해보고, 그 죽음의 능력을 세상을 바꾸는 일에 쓰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애초에 ‘누군가를 죽인다’는 행위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라이토는 서서히 조여오는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하며 점차 ‘키라’가 되어간다.

[영화 데스노트 스틸컷]

야가미 라이토가 작품 초반부에서 노트를 사용해 살인을 했다는 충격 때문에 두려움에 빠졌던 모습과, 중반부 거리낌 없이 ‘악인 처단’이라는 명분으로 살인을 하는 모습, 그리고 후반부 ‘죽기 싫다’며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독자들은 ‘훌륭히 타락한 캐릭터에 걸맞은 최후’라는 후문을 남겼다. 일부는 그 비참한 결말을 보며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지만, 선한 의지에서 비롯됐던 정의감이었던 간에 인간을 자신의 의지로 마구 죽였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 동전의 양면처럼 분열된 자아

[영화 다크나이트 속 장면]

DC코믹스를 대표하는 슈퍼히어로 ‘배트맨’ 시리즈는 주인공 뿐 아니라 다양한 매력의 빌런(악당)들도 사랑받는 점이 특징이다. 그들 중에도 ‘타락’이 원인인 빌런은 존재한다. ‘하비 덴트’는 ‘고담’시의 지방검사였다. 범죄와 부정부패가 만연해있던 도시에서 그는 보기 드문 선량함을 지닌, 고담 시민들의 희망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야기꾼들에게 그런 인물은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딱 좋은 캐릭터에 불과했나보다.

하비 덴트는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얼굴(또는 전신)의 절반을 잃게 된다. 화상을 입고 깨어난 그는 괴물처럼 흉측한 모습이 되어있었고, 이후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인격을 지닌 악당 ‘투 페이스’가 된다.

[웹페이지 캡쳐]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리메이크되고 재해석된 배트맨 시리즈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투 페이스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할 때 하는 ‘동전 던지기’다. 그는 동전을 튕겨서 깨끗한 앞면이 나오면 정의로운 행동을, 까맣게 불탄 뒷면이 나오면 악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슈퍼히어로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다크나이트’에서 역시 이러한 모습이 등장한다.

[게임 배트맨 더 텔테일 시리즈 속 장면]

사실 한참 나중에 붙은 설정이지만, 그가 타락하게된 결정적인 원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였다. 하비 덴트의 알콜중독자 아버지는 어린 하비를 폭행하다가 도망칠 ‘기회’를 주겠다며 동전을 던져 결정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그 동전은 양면이 같은 것이었다. 동전을 몇 번을 튕겨도 늘 같은 면이 나왔으며, 폭행이 멈추지 않았던 것. 기나긴 학대에 하비는 자연히 정신 질환을 앓게 됐다. 그가 열심히 공부해 지방검사자리에 오른 것은 그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투 페이스는 그의 내면에 사라지지 않았던 아픔과 ‘이중성’에 대한 집착이 극대화되는 사건으로 인해 타락하게 된 셈이다.

■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

[스타워즈 시리즈 영화 장면]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분’, 즉 ‘다스 베이더’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시간적 배경에서 과거를 다룬 프리퀄 트릴로지의 1,2편은 그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다루고, 3편은 그가 어떤 이유로 타락하게 됐는지를 다룬다. 또한 그의 후세 이야기인 클래식 트릴로지 중 4,5편은 그가 어떤 악당이 되어버렸는지를 다루고, 마지막 6편에서는 그가 무엇 때문에 타락으로부터 되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다룬다.

이제는 너무 많이 알려져 스포일러라 할만 한 것도 없지만, 다스 베이더는 사실 ‘아나킨 스카이워커’라는 유능한 제다이였다. 그는 어린 시절(1편) 콰이곤 진의 눈에 들어 제다이 교육을 받게 된다. 놀라운 포스 잠재력을 지닌 그에 대해 콰이곤 진은 ‘예언의 아이’라고 하지만, 제다이 평의회는 불안한 요소가 많다고 경계한다. 청년기(2편)를 거치며 그는 어머니의 살해에 대한 분노로 학살을 벌인다. 불필요한 살생은 제다이에게 금기였는데, 그것을 깨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혼인에 대한 금기 역시 깨버렸다. 이것이 그의 타락을 알리는 전조였다고 분석하는 팬들도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 영화 장면]

실제로 그가 포스의 어두운 면(Dark Side)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 때문이었다. 아나킨은 비밀리에 임신한 상태의 아내 ‘파드메 아미달라’가 출산 중 죽는 꿈을 꾸며, 이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인다. 또한 고위 제다이 ‘메이스 윈두’가 아나킨에게 지닌 지나친 경계심 역시 그를 타락의 길로 이끄는 데 한 몫 했다. 마침내 만악의 근원 다스 시디어스의 곁에 선 이유는 바로 아내를 지킬 강한 힘을 위해서였다.

[스타워즈 시리즈 영화 장면]

보통 콘텐츠에서 ‘사랑하는 이를 지킬 힘’은 주인공을 강하게 만들지만, 아나킨은 바로 이것 때문에 타락해 다스 베이더가 됐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선량함은 결국 자신의 아들을 구해내는 데 결정적 동기가 됐다.

■ 패륜아 왕자

[웹페이지 캡쳐]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를 흔히 ‘타락 덕후’라고 칭한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시리즈 등 과거부터 블리자드 게임에 ‘타락’ 속성을 지닌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임 팬들은 블리자드의 이러한 타락 스토리 남발에 식상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워크래프트 시리즈 속 로데론의 왕자, 아서스 만큼은 식상하다는 평가를 비껴갔다. 그가 얼마나 ‘잘’ 타락했는지는 그의 영웅적 등장(워크래프트3)에서부터 시작된다.

3차 대전쟁으로 혼란한 조국 로데론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으로 향한 아서스. 그는 직접 발로 뛰며 백성들을 구원하는 등의 면모를 통해 백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는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역병이 왕국 전체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야말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은 실망한 나머지 아서스를 떠나간다. 배신감을 느낀 아서스는 이 사태의 원흉 ‘말가니스’를 쫓아 ‘노스렌드’로 향한다.

[웹페이지 캡쳐]

이미 집착과 광기에 빠진 아서스는 말가니스를 타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끔 변해버렸다. 그는 결국 사악한 룬 검 ‘서리한’을 뽑아들게 되고, 서리한의 속삭임으로 미쳐버린다. 노스렌드에서 복귀한 아서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난 후, 언데드 군단의 수장 ‘리치왕’이 된다. 백성들로부터 사랑받았던 후계자에 의해 로데론 왕국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리치왕의 분노 시네마틱 트레일러 캡쳐]

워크래프트3에서 첫 등장해, 이어지는 확장팩에서 리치왕이 되어버린 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 번째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에서 유저들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그의 생애를 쭉 지켜봐온 많은 유저들은 리치왕을 쓰러뜨린 이후 착잡함을 느꼈다. 타락하지만 않았더라면 위대한 왕이 됐을 텐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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