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매번 서로의 생일 때마다 행운목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 생일 즈음에 행운목을 보냈는데 소식이 없다. 안부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는데 대학생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사연인즉, 엄마가 수술하고고 회복 중이라고. 며칠 후에 병문안을 갔는데 친구는 몰라볼 정도로 야위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충격을 받아 연락할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갑자기 밥맛이 없고 모든 것이 귀찮고 무기력해지면서 체중이 불었다는 것이다. 

그저 갱년기 증상이라 여기며 무심코 넘겼는데, 갑자기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담도암의 판명을 받고 부랴부랴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친구를 방문했을 때에는 종양을  떼어내고 일반 병실에서 회복 중이었다. 

그 친구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평소에 건강하고  도전정신이 강했던 친구, 죽을 때까지 자아실현하겠다며 늦은 나이에 영어학원을 시작했던 친구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직접 학원을 경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스트레스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병이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하던 친구가 먼저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이제 아플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 두려움반, 걱정반, 그리고 조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코리아맥 블로그>

누구나 건강 걱정 안 하고 돈도 많고, 자식도 잘 돼서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건 바람일 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프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내가 아프지  않으면 가족이 아프다. 내 주변을 덮치는 불행의 그림자는 수없이 많다. 가족 중에 하나가 아프거나 흔들리면 가족 전체가 흔들리며 아프다. 그럼에도 아프게 되면 원망부터 한다. ‘왜  나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등을 외치며 원망하고 좌절한다. 가슴까지 차오른 공포감에 빠져 발버둥을 친다. 이렇게 아프다가 그냥 죽지는 않을까 하며 별의별 생각에 공포감에 휩싸인다. 

자꾸만 전신으로 넘실대는 물살에 아픈 몸으로 헤엄치지만, 공포의 물살은 끊임없이 밀려든다. 특히 중병에 걸렸을 땐 더 심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아픈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하지 않은 내 탓이다. 또 아픈 원인을 생각하며 자책하지 말고, 과거를 따지지 말고 현재를 받아들이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떻게 몸과 마음을 치료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크고 작은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크게 아프거나 작게 아픈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아픈 것이 터닝포인트, 변곡점이 될 수가 있다. 병에  걸리게 된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에 빠지게 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남은 시간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살 수가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다. 

비록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질병 이후의 삶을 더 아름답고 귀하게 꽃 피울 수가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조직과 헤아릴 수 없는 세포들로 구성된 유기체이고 세월이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을 수는 없다. 특히 나이가 들어 조직이  노쇠해지면 자연스럽게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병이 찾아왔을 때, 누구를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친구처럼 좋은 동반자로 여기면 된다.    

언젠가는 죽게 된다. 한 번은 죽게 된다. 대통령도, 의사도, 노숙자도 반드시 죽는다. 의사라 해서 영원히 살지도 노숙자라 해서 빨리 죽지도 않는다. 다만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산다면 최선을 다하게 될 테니까.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만을 생각하며 그 일에 몰입하게 될 테니까. 똑같은 병을 앓고도 어떤 사람은 5년을 살고 어떤 사람은  20년을 더 산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죽을 각오로 살려고 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게 병이다. 병을 극복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살겠다는 강한 집념이 있으면 아무리 사람의 수명이 하늘의 뜻이라 하더라도 신은 사람의 목숨을 쉽게 거두어가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고통이 찾아왔을 때 신에게 매달린다. 아픈 사람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수술을 앞둔 사람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한다고 해서 병이 당장 낫지는 않지만 마음의 평화나 위안을 얻게 된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희망으로 가득 차오른다. 

몸이 아파 발버둥 치는 시한부 인생이라도 생각과 시선은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향한다.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한다. 삶과 죽음의 경게는 종이 한 장의 차이. 어쩌면 종이 한 장 보다도 더 얇은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은 반드시 자신의 재판자가 되고, 또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나를 냉철하게 심판도 해야 하지만 또 한없이 사랑하고 응원하라는 것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꿋꿋이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아프든, 아프지 않든, 나를 재판하면서도 나에게 한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을 학대하거나 무참히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끝없이 새로운 알을 깨면서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며 살아야 한다. 아프고 낫고 또 아프면서 낫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지혜가 축적이 된다. 어쨌든 끝없이 탈피하면서 변화해야 바람직하게 치유되고 성숙되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홀가분하게, 미소 지으며 한 줌 티끌이 되어 날아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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