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정의와 속설들

[공감신문]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가슴 따뜻한 멜로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 노희경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란 에세이를 펴냈다.

멜로 드라마 작가 노희경씨. [페이스북 캡쳐]

그런데 책의 내용에 앞서, 도발적인 제목에 많은 ‘모쏠’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눈물 흘린 이유는 난데없이 내려진 유죄 판결만이 억울해서만은 아닐 듯 싶다.

모쏠들은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집 제목을 보고 촉촉하게 눈을 적셨다.

책의 제목이 모쏠들의 슬픈 눈망울을 촉촉이 적신 까닭은 아마 ‘사랑해본 적 없음’에 대한 팩트 폭력이 아팠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슬픈 눈망울이 빛나는 모쏠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여러분은 정말로 살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나?

우리는 살면서 연애 감정에서 오는 사랑 외에도 온갖 형태의 사랑을 경험한다.

같은 질문에 대해 기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연애 감정에서 생기는 사랑 외에도 우리는 살면서 온갖 형태의 사랑을 마주한다. 어떤 사랑은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게 스치듯 지나가곤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아무리 못나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다’고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 당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는 당신을 사랑했었다

다양한 사랑 중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지금의 사랑’과 더불어 ‘첫사랑’이 있을 것.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끼는 그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은 오랜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운 좋게 첫사랑과 연인이 돼도 서툰 감정표현으로 잘 맺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첫사랑.’ 그것이 짝사랑으로 끝났든, 아니면 서툴게 시작해 이제는 흑역사로 기억 한 켠에 자리 잡았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을 테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를 통해, 가슴 속에 첫사랑의 추억을 묻어둔 많은 이들을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첫사랑'만이 지닌 특유의 감성을 잘 표현해 흥행했던 영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 영화 속 장면]

기자는 그 문구를 쓴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알게 된다면, 소박하게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다. 그 이유는 비단 그 문구가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큰 깨달음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문구는 ‘난 한 번도 사랑받아본 적 없어’라 자책하는 많은 이들을 타이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와 동시에, 남몰래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아파본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당신은 기억도 못하는 어느 날, 우연히 내민 당신의 손을 잡고 설레했던 누군가가 있을 지 모른다.

당신도 누군가를 사랑했듯, 누군가 역시 당신을 사랑했었다. 그저 당신이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 언제 한 사랑이 첫사랑인가

기자와 최근 만났던 새신랑 친구는 아내에게 “여보는 첫 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일을 소개하며, 물론 아내의 질문에는 “당신”이라 답했지만 의문이 생겼노라고 고백했었다.

첫사랑이 누군지를 되짚었을 때 단 한명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들도 은근히 많다.

첫사랑이 기억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그랬던 것 만큼은 절대 아니었다고 덧붙인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굴 좋아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누구를 첫사랑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흔치 않은 케이스다. 자신의 첫사랑이 누군지를 정의내리지 못하다니. 그런데 의외로, 누구를 첫사랑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꽤 된다.

70년대 태생 남자들의 상당수가 만화 '은하철도 999' 속 '메텔'을 보고 설레했다고 한다.

첫사랑을 ‘처음 연애 감정을 느낀 상대’라고만 국한하면 우리 추억의 폭은 상당히 좁아질 것이다. 때문에 첫사랑은 시기보다는 각자의 감정으로 정의하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그렇게나’ 좋아해본 게 처음이었다면, 그게 첫사랑이었다고 결론짓길 권하고 싶다.

또 다른 친구 역시 자신의 첫사랑으로 ‘어릴 적 처음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된 누군가’가 아니라, ‘몇 년 전 헤어졌지만 아직도 그리운 전 남친’이라고 못박아뒀었다.

첫사랑이 누군지를 꼽을 때, 꼭 '처음'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 새신랑 친구는 대체 첫사랑을 누구라고 결론지어야 했을까? 처음으로 수줍게 고백했던(혹은 받았던) 그 사람? 소위 말하는 ‘진도’를 처음 나갔던 누군가? 그것도 아니면 숱한 과거의 연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사람?

사랑이란 감정의 크기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누군가를 10만큼 좋아했다 하더라도, 다음번에 만나는 누군가를 15만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수치를 매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박수봉 작가의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은 첫사랑, 그 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묘사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 속 장면]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원하는 대로 누군가를 자신의 첫사랑이라 말해도 된다. 심지어,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이 설레고 절절하게 목매달았던 상대방에 대해서도 “사실은 별로 좋아하진 않았었어”라 말하면 그만인 거다.

 

■ 첫사랑과 관련된 속설들

- 남자는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

흔히 ‘남자는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는 둥,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여러 여성들은 남자가 첫사랑을 평생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다는 속설을 믿는다.

실제로 남자는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간직할까? 첫사랑과 재회하면 지금의 연인을 ‘팽’하고 그녀(혹은 그)에게 달아나 버릴까? 물론 어디에나 적용될 ‘케바케’라는 말이 첫사랑에도 적용되겠지만, 설문조사 결과는 No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남성 2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첫사랑과의 재회 혹은 결혼이 가능하다면?’이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응답자의 51%는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고 응답했고, 30%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른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 역시 첫사랑을 그냥 묻어두고 싶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편이다.

당신 곁에 있는 남자친구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 뿐, 과거의 그녀가 아니다.

남자친구의 첫사랑이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그들은 첫사랑과의 재회를 원치 않으니까, 또 지금 당장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길 수 있는 여러분 뿐이니까.

 

-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남자의 첫사랑 어쩌구’ 하는 속설 외에도, 첫사랑과 관련된 유명한 속설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연인으로 발전한 첫사랑은 갈등 끝에 갈라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속설은 실제로도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지금 한창 첫사랑 진행 중인 이들에게는 조금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첫사랑은 실패한다.

대부분의 설문조사 결과 남자는 학창시절, 여자는 대학시절 첫사랑을 경험한다는 응답을 하는데, 학창시절이건 대학 신입생 시절이건 사랑을 ‘첫’ 경험할 때는 서툴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처음 겪는 과정은 어색하고 서툴기 마련인데, 사랑이라고 왜 안 그럴까.

청소년들에게 '연애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들은 많지 않다. [웹페이지 캡쳐]

가뜩이나 ‘질풍노도’라 불리는 시기, 절절 끓는 사랑은 열병이 된다. 연애 감정은 TV나 영화로만 봤지, 누가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서 첫사랑에게 우리는 바보짓도 하고, 서투른 행동으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오직 첫사랑의 흑역사가 있는 자 만이 '이불킥+슬픈노래+눈물' 3관왕을 달성할 수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이불을 뻥뻥 걷어차며 후회도 하고, 그 때로 되돌아가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배워나간다. 누가 한 번도 가르쳐준 적 없으니까.

그러나 ‘첫사랑=실패’라는 공식은 어디까지나 ‘대체로’ 그렇다는 것일 뿐, 지고지순하게 첫사랑을 지켜 결혼까지 성공한 사례도 왕왕 들어볼 수 있다. 연예인으로는 배우 차태현, 개그맨 홍인규 등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한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 ‘첫사랑 판타지’, 그 꿈같은 이야기

차태현은 지난 2006년 첫사랑과 결혼해 세 아이를 얻었다. [웹페이지 캡쳐]

앞서 소개한 ‘첫사랑과 결혼한 연예인’의 사례처럼, 많은 이들은 첫사랑의 실현을 일종의 판타지처럼 여긴다. 마치 첫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다. 첫사랑이 진정한 사랑일 수는 있겠지만, 몇 번의 연애 후에 만난 새로운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웹툰 '찌질의 역사'의 이 장면은 많은 이들을 장탄식하게 했다… [웹툰 '찌질의 역사 속' 장면]

‘지나간’ 첫사랑에 한해, 그 추억은 대단히 미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번 떠올렸을 그 기억은 점점 거듭해가며 현실과 달라졌을 테고, 그 때의 찌질 했던 모습은 조금씩 살이 붙어가며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각색됐을 것이 분명하다.

현실은 결코 상상을 이길 수 없다. ‘뇌내망상’을 통해 각색된 과거에 얽매여 있다간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랑을 놓친다. ‘있을 때 잘할 것.’ 만고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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