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뛰어난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는 해당 문장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정환경 등으로 출발선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며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을 부정한다. 오죽하면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나왔겠는가.

물론, 여러 요인으로 인해 출발선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출발선이 결과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말을 증명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가난과 거듭된 실패 속에도 노력했고, 결국 성공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위치에 올랐다. 이번 편을 통해 그들을 만나보자.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김동연’

지난 21일 국민 대부분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을 지명했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

김동연 후보자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그는 어머니, 세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었다. 김동연 후보자는 덕수상고에 진학한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열일곱 살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한다.

사실 은행 일만 해도 체력소비가 크다. 그러나 김동연 후보자는 낮엔 은행원, 저녁엔 야간대학교 학생이 돼 꾸준히 공부한다. 그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82년, 입법고시에 합격한다. 같은 해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이듬해 경제부처 공무원이 된다.

경제부처는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 곳에서 야간대 출신인 김 후보자는 노력과 철저함으로 인정받는다.

경제기획원(EPB) 경제기획국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옛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재정정책기획관을 지냈다. 경제부처 요직을 두루 거친 김 후보자는 2012년 기재부 제2차관, 2013년엔 장관직인 국무조정실장에 오른다.

과거 청계천 판자촌 / 연합뉴스

김 후보자는 최근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하며 “김 총장은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판자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조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축구로 인생을 뒤바꾼 남자 ‘안정환’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전 축구선수, 현 방송인 안정환은 매우 힘들게 자랐다고 한다. 서울의 달동네 판자촌에서 할머니와 살았던 그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축구부에서 나눠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싶어서였다.

안정환은 모 방송에 출연해 비닐로 된 800원 짜리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환. / 안정환 공식사이트

사실 안정환은 축구 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운동부 특성이라면 특성일 수 있는 구타와 욕설 등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다 나은 인생에 대한 일념 하나로 버티고 노력한 그는 결국 대한민국 전설의 축구선수 대열에 합류한다.

안정환은 축구를 그만두고, 소위 말하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축구를 했고, 결국 현재에 이르렀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위해 노력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나, 사실상 부모 역할을 해준 할머니의 사랑은 분명 그에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학 입학한 기업 회장 ‘마윈’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주이자 CEO(최고경영자)인 마윈은 개구쟁이면서 사고뭉치였다. 이랬던 그가 어떻게 대기업의 회장이 될 수 있었을까?

알리바바 그룹 CEO 마윈. / 위키피디아

마윈은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 대학은 세 번의 도전 만에 입학했고, 30개 회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터무니없는 월급을 받고 일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도 창업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윈은 결국 하이보라는 통역회사 창업에 성공한다. 이그리고 알리바바를 설립한다. 마윈은 거듭된 한계에도 꿈을 이뤘다. 아울러 그는 성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누구보다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쌀가게 배달원에서 대기업 회장까지 ‘정주영’

고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은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현재 북한)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배경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정주영 전 회장은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은 늘 농부인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몇 번 실패 뒤 결국 결국 가출에 성공한 정 전 회장은 항구, 공사현장, 철도 공사판과 쌀가게 등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정주영 전 회장과 쌀가게 주인 / 출처=아산사회복지재단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하던 정 전 회장은 장부를 잘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받는다. 경영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쌀가게 주인은 성실하게 일하는 정 전 회장이 마음에 들었다며, 본인의 아들이 아닌 정 전 회장에게 쌀가게를 물려준다.

정 전 회장은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 등을 경험하며,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한다.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건설업에도 진출, 중동 신화를 이루기도 한다.

1971년 정 전 회장은 혼자서 부산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유럽을 돌았다.

차관을 받기 위해서였다. 여러 곳에서 부정적인 반응만 받았다.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차관을 받기 위해 A&P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지만, 그도 역시 거부한다.

정주영 전 회장이 영국에서 보인 500원 지폐 / 사진출처=아산사회복지재단

그러나 정 전 회장은 우리나라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설득했고,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재계 1·2위를 다툰 현대 그룹을 만든다. 물론, 그가 이 같은 결과를 이루는 데에는 국가의 지원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이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점도 그의 성공에 큰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고졸 출신 변호사에서 대통령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등학교 졸업’이란 최종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지금보다 출신 대학과 학과를 중요시 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학력이 상고(상업계고등학교) 졸업인 노 전 대통령의 사시 합격은 매우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출처=노무현 재단

노 전 대통령은 앞서 소개한 김동연 후보자처럼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를 외상으로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려웠던 가정환경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 했는지,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직할 수 있는 부산 상고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망제조 업체에 취직했으나, 최저 생계비도 되지 않는 임금과 근무 중 다쳐도 치료도 않는 고용주에 실망, 퇴직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막 노동과 사시 공부를 병행 하던 중 사시에 합격, 판사에 임용된다.

판사 임용 5개월 만에 법복을 벗은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세무 변호사로 이름을 떨치지만,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당한 고문과 인권침해 사례를 들은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변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 하던 중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발탁, 정계에 입문한 노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출처=노무현재단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무엇일까. 기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막노동’, ‘열악한 근무환경’, ‘인권변호사’ 등을 경험한 그의 삶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담은 영화, ‘변호인’에는 주인공이 벽에 쓴 글귀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글귀는 다음과 같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영화 변호인 장면 / 출처=영상 플랫폼 사이트 영화 변호인 갈무리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온 이들도 꿈을 이뤘다. 성공의 기준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꼭 많이 알려지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게 성공일 것이다. 개천에도 용이 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잠룡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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