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대한민국은 자타공인 양궁 최강국이다. 뭐 고구려 시조인 ’주몽‘과 조선 시조인 ’이성계‘가 활 솜씨 하나로 나라를 건국할 정도였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에서 활약했던 활잡이로는 누가 있었을까? 공감 포스팅팀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활잡이들을 찾아봤다. 

■ 라스트 하이랜더 <잭 처칠>

현실판 호크아이 그 자체. 제식소총으로 전투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웨일스가 원산지인 롱보우'와 '스코틀랜드의 검인 클레이모어'로 무장해서 참전했다. 심지어 잘 싸웠다는 것이 함정.

1943년에는 지휘관으로 소총수 한 명을 데리고,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전선에 참전했다. 이 때 허리에는 클레이모어를 차고, 등에는 장궁과 화살, 그리고 손에는 백파이프를 들었다. 심지어 잭이 지휘한 부대의 공격신호는 잭이 독일군을 활로 쏴 맞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제2세계대전에서 활로 적을 사살한 군인은 그가 유일하다. 그 당시 별명은 싸움꾼 잭 처칠(Fighting Jack Churchill)과 미치광이 잭(Mad Jack).

노르웨이에 주둔한 독일군에게 수류탄을 던져 무공을 올리기도 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백파이프로 ‘카메론의 사내들’이란 곡을 불었다. 뭐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작전에서 그는 570명이 중 서열 2위 지휘관이었다. 차선임 지휘관이 백파이프 불면서 직접 수류탄 던지는 전과를 올린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무공십자훈장(Military Cross)을 수여받았다.

잭은 일본군과 직접 싸우고 싶어 했으나, 그 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그는 아직 10년은 더 싸울 수 있었는데, 전쟁이 끝났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 일본의 명궁 <나스노 요이치>
날아가는 새 3마리 중 최소한 2마리는 반드시 맞춘다는 명궁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주몽', 영국의 '로빈 훗'처럼 명궁의 대명사로 불린다. 활 잘 쏘는 사람을 가리켜 '마치 나스노 요이치 같다'라 칭찬할 정도.

특히 야시마 전투에서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 당시 헤이케 홍군은 배를 타고 상륙을 시도했지만, 요시츠네가 이끄는 백군으로 인해 홍군은 상륙을 위해 타고 왔던 배까지 후퇴하게 된다.

이후 백군은 해변에 진을 치고, 홍군은 배를 타고 근해에 진을 친 상태에서 양군이 대치하게 된다. 이때 홍군 측에서 장대를 단 소녀를 태운 배가 접근해 온다. 그 장대 끝에는 홍군 사령관의 부채가 달려 있었다. 이를 쏴서 맞출 수 있으면 맞춰보라며 백군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백군 측은 이 도발에 맞대응하기 위해 명궁으로 유명한 나스노 요이치를 부른다. 이에 나스노 는 어쩔 수 없이 해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들어가 흔들리는 배 위에 서있는 소녀가 든 장대 위 부채를 쏘게 된다.

그 때 "나무 하치만 대보살!!!(될 대로 되라!!!)"이라 외친 것을 보면 나스노도 큰 기대는 없었던 듯. 하지만 그 부채는 물론이고, 백군을 도발하던 다이라 군까지 쏴 맞추는데 성공한다.

이 야시마 전투 공적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영토까지 하사받게 된다. 하지만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실각 이후 불도에 입문하고, 24세 나이로 병사한다.

■ 양궁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수녕>

대한민국 양궁을 대표하는 사상 최고의 선수.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했다. 이는 대한민국 올림픽 최다 금메달 기록(4개)이면서 최다 메달 기록(6개)이다.

청주여고 1학년 때 최연소 양궁 국가대표가 되면서 양궁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88년 처음 데뷔한 국제대회에서 우승은 물론이고, 세계 신기록까지 수립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도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올랐다.

당시 서울 올림픽 개인전은 거리별 성적을 합산해서 메달 색깔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김수녕은 총점 344점을 기록하면서 팀 동료이자 선배인 왕희경, 윤영숙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단체전에서 선배들과 힘을 합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때 김수녕의 나이는 겨우 만 17세였다.

이 후 그녀는 ▲1989년~1991년 세계선수권 2년 연속 2관왕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9년 거리별 공인 6종목 세계신기록 보유 등 20대 초반에 이미 양궁계 최강자로 등극했다. 이 시절 세운 세계 기록이 하도 많아서 본인도 기억하지 못 할 정도.

한국에서 ‘신궁’이란 호칭은 오직 김수녕에게만 허락된다는 점에서 그녀가 가진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세계선수권 2년 연속 2관왕은 김수녕 이후 단 한 사람도 해내지 못했다.

■ 한국사 최강의 보우마스터 <이성계>

이성계의 활 실력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다. 장거리 저격뿐만 아니라 말 타고 돌격하면서 근접 백병전으로 활을 사용해 적들을 물리칠 정도. 중국 역사상 최강으로 손꼽히는 항우급 인간병기. 정말 무서운 점은 그 정도의 실력이 야사뿐만 아니라 정사에도 기록됐다는 것.

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해서 항전하는 성의 병사들에게 70발을 쏴서 70명을 맞혔다. 이를 보고 성 안의 적군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곧 항복했다고 전해진다. 출처는 왕조차 함부로 못 읽던 정식 역사서인 태조대왕실록.

또한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투구를 3번 중 3번을 다 맞혀서 군사의 사기를 드높였다. 출처는 태조대왕실록. 대략 270m 거리에서도 백발백중이었던 셈이다. 이 정도 사거리는 웬만한 초기 화약병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백보(180m) 밖 배나무 가지에 달린 배를 쏴서 떨어뜨려 그 배로 손님을 대접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역시 태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 다른 나라 속 전설들과 비교해도 안 꿀린다.

■ 시대를 대표하는 명궁 <양유기>
활 하나로 잡병에서 대부까지 된 인간승리자. 100번 쏴서 100번 다 맞춘다는 ‘백발백중’ 고사의 주인공. 이는 명궁들의 특기인 백보 앞 버들잎을 맞춰서 떨어뜨리는 고사의 원조격이다.

아직 무명이던 시절에는 투월초 반란을 진압하면서 강을 사이에 두고 투월초와 화살 3개로 일기토를 벌여 그를 사살했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절대적인 명사수로서 명성을 드높였다.

춘추시대 언릉 전투에서 그 당시 양유기의 주군이던 초공왕이 눈에 화살을 맞아서 한쪽 눈을 잃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에 양유기는 화살 한 대만 가지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초공왕에게 상해를 입힌 장수를 순식간에 쏴 죽여서 복수했다.

이 때 초공왕은 늑대 이빨로 만든 특별한 화살 3대를 주면서 복수를 명했지만, 단 한대면 충분하다면서 거절했다. 그리고 실제고 단 한대만으로 적장을 쏴 죽였다. 초공왕은 이를 보고 “언젠가 활로 흥한 자, 반드시 활로 화를 입으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로 양유기는 적의 계책에 말려서 혼자 분전하다가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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