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나태주

[공감신문] 최근 무릎을 치며, ‘그랬구나!’하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여태껏 살면서 내가 정말 좋아했었으며 진지하게 연애했던 남자들은 대부분 ‘친구 사이’에서 시작되었던 거였다! 그래, ‘친구’라는 말을 막 쓰지 말자. 뭐 ‘아는 오빠’나 ‘지인’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알던 사이였다가 관계가 발전했던 거다.
요즘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든다. 벌써 연애를 안 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도대체 난 뭐가 문제지?’라고 고민하면서 이전에 내가 어떻게 연애했었는지 떠올리다가 깨달은 거다. 아, 그래서 또 알게 된 거다. 친구들로부터 ‘소개팅 할래?’라며 제안 받거나 혹은 사석에서 매력적인 새로운 남자를 알게 되어도, 나에겐 열정이 없는 거다. 나에게 ‘뉴페’(new face)들은 큰 매력이 없다. 싸이의 노래와는 달리 나는 ‘뉴페이스’를 봐도 궁금하지 않고 심지어 엄청 잘 까먹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나는 왜 뉴페이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사실 어릴 때는 뉴페이스에게 매력을 느낀 적도 꽤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겁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연애를 하면 어떻게까지 빠질 수 있는지 알게 되니 더욱 신중해지는 것 같다. 이건 단순히 연애를 하는 애인을 고를 때 뿐 만이 아니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이런 것에 신중해진다. 어릴 땐 정말 금방 급 친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천천히 보다보니, ‘아 저 친구랑은 더 가까워지고 싶군!’ 이렇게 느끼며 내가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자주 보자고 한 여자 친구들이 꽤 있다. 주변에서, ‘너희가 원래 이렇게 친했나? 둘이 무슨 계기가 있었어?’라고 묻기도 한다. 아니, 그런 거 없다. 갑자기 어느 순간 쭉- 알고 싶다고, 그럴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뿐. 느린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사이에 놓인 잔에 천천히, 물이 다 채워진 것이다. 하물며 ‘애인’이 될 상대에겐 어떠하겠는가.

두 번째로는 내 주변에 겉모습이 매력적인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거다.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서 겉모습이라고 하면 키, 몸매, 얼굴, 목소리는 물론이요 학력이나 집안, 직업, 재력 같은 것까지 말하는 거다. 정말 내 주변에는 이런 요소들이 매력적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래서 그런 요건들이 꽤 훌륭하다고 해서 확 각인되지는 않는다.
한편 나는 그런 요소가 잘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내 지인들이 잘났을 뿐. 하지만 나도 나만의 조건이라는 게 있다. 매력적인 외모는 좀 필요하지만 재력이나 학력, 집안 같은 건별로 따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멋진 미남자의 외모에 순간 매혹된 다 할지라도 정말 그 순간뿐이라는 거다. 대한민국 서울 동네엔 잘생긴 남자가 너무도 많다. 그가 나와 SNS 친구를 맺지 않는다면 난 정말 그의 얼굴을 금방 잊고, 다시 만났을 때 어디 내가 자주 가는 술집 단골인가보다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세 번째로는 위와 좀 비슷한 맥락인데, 저러한 외부조건이 아니라 내부조건이 더 끝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성격이 매력적이라던가 취향이 잘 맞아서 알면 알수록 궁금해졌으면 좋겠다. 그 다음 이유는 이러하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가 너무 벅차다는 거다.
나는 ‘넌 **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정말 안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그 때 그때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그런데 어떻게 날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가 있지? 난 그런 식으로 나에 대해서 아는 척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내가 규정지을 수 있는 나는 겨우 이런 것들 따위다, 나는 호불호가 확실하다, 나는 자유를 추구한다, 나는 다양성이 어마어마한 인간이다.
실제로 나는 남들보다 ‘다양’에 대한 스펙트럼이 크다고 느낀다. 이건 자타공인 인정하는 사실이다. 내한공연차 한국에 왔던 해외 아티스트 친구가, 생방송 라디오 도중 뜬금없이 내 이름을 언급하더라. ‘파티걸(party girl)’이라며! 나에게 그런 주말은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다가도 또 어떤 주말은 스터디 모임에서 철학을 논하기도 하며 평일엔 학교들로 강의를 다닌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옷 갈아입을 일이 생긴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내 지인들도 나를 파악 중이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단시간 내에 날 설명하지? 그게 너무 귀찮고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피곤하다.

예전에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상태로 급하게 가까워져 연락하던 남자가 있었다. 내 또래였는데, 신기하게도 취향이 비슷한 구석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책을 고르는 취향이 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 몇 가지. 순간적으로 아, 이런 사람과 만나면 뭘 해도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금방 가까워진 우리는 겨우 그게 다였음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지루해졌다. 물론 서로 ‘케미’가 맞는 사이였다면 정말 만남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탐색 기간 동안 보아하니, 영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자꾸 ‘탐색’기간이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매일 ‘그’의 SNS나 취향 같은 걸 지켜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켜볼 필요가 없지 않나! 난 새로 알게 된 그에게 큰 관심이 없는데 굳이 왜 지켜보겠는가? 단, 친구나 지인 사이로 지내면서 그가 문득 던지는 ‘어떠한 것’들이 매력적으로 내게 꽂혀올 수 있다, 그 뿐이다. 그렇게 잔에 물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 사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혼자서 사랑에 퐁당 빠져버릴지도.

사실은 정말로 잔에 물이 한 방울, 때로는 한 스푼 이렇게 차근차근 채워지는 건데 정작 난 모르고 있던 걸 수도 있다. 우리는 묻는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어떻게 가는 거냐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보통 이런 식으로 해왔던 내가 이야기하자면, ‘차근차근’이 답이라 하겠다. 우선 연애할 만한, 믿을 만한 사람으로 비춰져야 한다.

마지막 연애를 했던 상대도 나와 알던 오빠 동생 사이였다. 우리는 어느 날 우연히 단 둘이서 소주를 마시게 됐었다. 그 때 안주로 계란탕을 시켰었다. 계란탕에는 전분 가루가 들어있어서 국물의 점도가 높았다. 계란이 5개나 들어있는 꽤 푸짐한 영양식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아냐고?
“오빠 계란탕이 너무 야해.”
나는 뭐에 홀렸는지 그런 말을 꺼냈고 그 계란탕이 궁금해진 우리는 안주해주는 이모에게 물어본 거다, 이 야한 계란탕의 레시피를.
그 날 이후로, 우리는 그 야한 계란탕에 수줍어하며 갑자기 ‘오빠-동생’에서 ‘썸’으로 노선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 난 그 야한 계란탕이 어떤 ‘터닝 포인트’ 같은 건 줄 알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둘이 소주를 마시러 간 그 자체가, 이미 잔에 물이 거의 채워지고 있었던 거였다! 끈적한 국물을 만들어주는 전분 가루에, 단백질 덩어리 계란이 다섯 개 씩이나……아니, 이런 레시피가 중요하기나 해? 뭣이 중헌디, 응? 이미 우리의 마음이 야했던 걸. 계란이 야하다는 나에게, 영화 <몽상가들>에서 주인공들이 섹스 할 때 부엌에서 요리되는 음식도 계란이라며 받아치던 그의 마음가짐 역시도 이미 야했던 거다.
우리는 그게 계란이 아니라 아무 안주, 아무 식재료였을 지라도 야하게 말했을 거다.
(오, 어릴 땐 그렇게 끼 부리는 멘트를 잘했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쑥맥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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