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없다. 그냥 다 똑같은 지구인이다.

[공감신문] 대단한 날씨다. 옆구리 시린 겨울보다 더욱 더 연애 욕구를 증폭시키고 있잖아! 낮에는 이 따사로움을 함께 만끽하고 싶어서, 해질 무렵이면 노을이 너무 예뻐서, 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쌀쌀해지니 누군가에게 폭 안기고 싶어지게 한다. 이토록 날씨가 싱숭생숭하니,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 같은 애는 마음이 바빠 힘들다, 아이고. 적당히 좀 하자 적당히!
그런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내 주변 여자 친구들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부쩍 외롭다는 말과 함께 약속들이 늘어난다. 한번은 우리의 소싯적, 그러니까 연애할 적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초반에 진짜 러쉬(rush)하는데……. 한두 달? 그리고 좀 관계가 안정이 되면 난 내 루틴으로 거의 돌아가. 초반에는 진짜 연애 말고 다른 건 안중에 없는 것 같아. 초반 지나면 남자는 내가 변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근데 초반에 그렇게 다져놔야, 내가 맘이 안정되어서 일을 더 잘해.”
실제로 난 이런 스타일이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아이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너 되게 남자 같은 스타일이네? 보통 남자들이 그렇게 연애하잖아.”
그런가? 이게 ‘남자’같은 스타일인건가? 그래, 우리들이 알기로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랄까 연애하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알고 있지. 그리고 저런 건 남자같이 연애하는 거고? 음, 그런데 아마도 아닐 거다, 아니,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 구조 차이 때문에 다른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연애의 방식? 이것도 마찬가지다.
‘보통 남자들이 그러잖아.’ 라는 말은 틀렸다.
단,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넌 마치 조선시대 남자 같아.’, ‘넌 고려시대 남자 같아.’, ‘넌 근대적 남자 같아.,’ ‘넌 현대적 남자 같아.’라고.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의 뇌구조는 비슷하다 치더라도 시대적 남녀의 군상은 정말 다르니 말이다.

(신윤복 <월하정인>)

나의 이러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실제로 남녀의 뇌구조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하신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 연구진은 남녀 1400명을 대상으로 이런 검사를 했는데,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우리는 처음부터 비슷한 뇌구조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다. 그럼 왜 다르게 생각할까? 이 똑같은 뇌구조로 다른 성 역할들을 부여받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나 환경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성역할들.

친구들은 초반에 연애에 열중하는 나에게 ‘남자’같다고 했다. 이건 남자 같은 게 아니다. 아마도 꽤 많은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나처럼 연애할 거라 생각한다. 그냥 이런 사람들이 많은 거다.
친구들이 말하는 ‘남자 같다’는, 구체적으로는 ‘근대적 남자 같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현대에는 그렇지 않지만, 겨우 90년대에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저런 남자들이 꽤 있었다.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대부분 집에서 살림을 하는 걸로 그려진다. 혹은 악착같이 살다가 신데렐라가 되어버린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꾸려야 할 여자가, 20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을 남자에게 거는 거다, 맙소사. 여자들은 대부분 순종적이며, 바람피우지 않고, 그 남자만 바라본다. 남자들은 처자식 굶기면 안 되니까 밖에 나가 열심히 돈을 번다. 여자들은 살이 찌고 아줌마가 되어가며 여성성을 잃고 ‘집사람’이자 ‘엄마’가 되어간다. 남편과 자식만 보고 살면서. 반면 남자들은 잡은 물고기에 떡밥을 주는 걸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징그럽게 생각한다. 이것이 근대적 남자와 근대적 여자의 군상이었다.
친구들 말이,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내가 이런 남자의 특질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나 환경에 놓였던 남자들도 이러하였나?

아니지. 고려시대만큼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하던 때가 이 한반도에 또 있었을까. 국가의 체계가 잡힌 이후에 말이다. 국가의 체계를 왜 논하느냐면, ‘사회적 제재’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굉장했다는 것이다.
‘쌍화점’의 가사만 들어도 서방의 외국인(아마도 이슬람 상인)과 사랑을 나눴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단일 민족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태원 동네가 왜 ‘이태원’이라 불리는가? 효종 때 배 밭이 많은 동네라고 배나무 이梨를 써서 이태원(梨泰院)이라 한다지만……. 사실은 다른 유래도 있다. 이전부터 이 동네를 ‘다를 이(異), 태반 태(胎)자’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이라 했었다. ……배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는 동네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동안, 위 아래로 수많은 침략과 수모를 겪어온 우리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아무튼 그래도 쌍화점 노래에서 만큼은, 다행히 ‘회회아비’와의 은밀한 순간이 슬퍼 보이지 않는다. 고려시대에는 남녀 혼탕이 유행했음은 물론이요, 여자가 사유재산을 가질 수도 있었고, 심지어 집안의 호주가 될 수도 있었으며, 그 당시에 이혼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사회적인 편견 없이 재가(再嫁)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여성들이 활발하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연애지상주의 도시, 고려의 개성!

그렇다면 고려인과 사랑을 나눈 걸로 추정(?)되는 이슬람 상인들의 문화권은 어떠한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무슬림 여인들은 외간 남자에게 자기 속살을 보여선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히잡으로 온 몸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다닌다.

모든 이슬람 문화권이 이런 것은 아니고 어느 특수한 사회의 이야기이긴 한데, ‘할례’는 엄청 심각한 인권 문제다. 그들의 전통이라지만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마치 정조대를 채우듯 여성의 성기를 꿰매어 버린다. 평생 고통 받는 여성들이 수도 없이 많고, 심지어 이 시술 때문에 목숨을 잃는 여성들도 있다. 그들의 문화권에서, 여성 스스로의 쾌락은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쾌락 역시 남성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여성들은 강간 범죄 노출에 노출되기 쉽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용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이슬람 문화권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오늘날 20대들에게 유행하는 것이 바로 ‘데이트 통장’이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만 부담하는 게 아니다. 또래인 두 사람이 연애를 하거나 소득이 비슷할 경우, 남자 혼자 데이트 비용을 내는 건 당연히 불공평하다. 두 사람이 일정 금액을 똑같이 통장에 넣고, 이것으로 체크카드를 만들어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는 거다. 그러면 두 사람 모두 훨씬 책임감 있는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한 때 ‘남녀 성 역차별’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요즘의 남자와 여자들은 꽤 평등하게 연애하려고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렇듯 시대나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있어왔다. 그러니 어느 특정한 행동을 보고 남성적 혹은 여성적 특성으로 보는 건 적절하지 못하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단지 개인의 성격일 뿐!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아예 똑같을까? 그것 역시 아니다. 생물학적인 구조의 차이로 조금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학적 구조 차이 때문에 지배받은 행동 양식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들의 ‘월경’이다.
한 달에 한번 여자들은 급격히 예민해지고, 뚱뚱해지고, 못생겨지고, 둔해진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여자들이 한 달에 한번 마법에 걸리면 성격이 마녀 같아진다는 것을 알고서 조심한다. 아, 그런데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우리도 우리가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 월경 때만 이러냐고? 아니다. 심지어 ‘월경 전 증후군’이라는 것도 있다. 많은 여성들이 ‘월경 전 증후군’을 막기 위하여 약까지 복용한다. 휴, 정말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라니까.
남자들 역시 월경처럼 불편한 게 있겠지……. 그냥 남자들은 음, 페니스를 가진 자체가 불편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내 생각에 남자들은 좀, 짠하다. 남자들은 페니스 때문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과 말도 안 되는 돈을 쓰고, 또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또 말도 안 되는 말도 한다. 아 물론 여자들도 이럴 때가 있지만, 남자들은 더 하다. 남자들에게 이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게 다 페니스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욕구를 자주 느끼며, 높은 추진력을 가진다. 행동에 옮기는 거다. 아니, 수정할 때만 봐도 난자는 기다리고 정자들은 목숨 걸고 가잖아?
예전에 <548일 남장체험>(노라 빈센트 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인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18개월 동안 남자의 삶을 체험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다.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들이 가물가물한데, 정말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가 이런 내용이었다. 남녀를 떠나 정말 객관적인 눈으로 보아하니, 남자들은 성욕 때문에 고통 받는 존재라는 거다! 본인들도 스스로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주체 못 할 성욕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어 보인다더라고.
여자들이 월경 때 평소보다 평균적으로 500칼로리를 더 섭취한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느낌인건가. 근데 그걸 매일, 심지어 엄청 자주? 아, 정말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졌다. 그 책을 읽은 이후로, 아무리 나에게 ‘개새끼’같은 짓을 하려는 속이 빤히 보이는 남자를 보아도 ‘나쁜 새끼’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속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자격으로 욕을 하겠나? 대신 이렇게 말하게 되었지, 불쌍한 놈.
소년을 위로해줘, 그래 위로해주자 여자들아, 저런 불쌍한 놈들 빼고!

이런 남녀의 생물학적인 구조 차이로 인한 특성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남녀의 생각하는 방식, 판단하는 방식, 연애하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이런 제발 이런 거 하지 말자, ‘남자들은 보통 이럴 때 이런다.’, ‘여자들은 보통 이런 걸 좋아한다.’
물론 보편적인 특성이 있을 수 있지만 남자가 화성에도 와서 이렇고 여자가 금성에서 와서 이렇다는 논리를 펴지도 말고,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걸 믿지도 말자는 거다.
휴, 내가 ‘남자 같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나처럼 여성스러운 애가 어디 있다고? 요리 잘 하지, 유연하지, 목소리 톤 높지, 감성적이지 ……외국인들 하고도 잘 친해지지, 노래하고 춤추는 거 좋아하지, 연애지상주의지, 오, 눈치 채셨나? 그렇다, 나는 고려시대 ‘여자’같은 스타일이다!
원래 ‘뭐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듣는 걸 좋아했다. ‘당신은 어떤 여자예요?’라는 질문은 뭔가 정말 대충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아니, 어떻게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는 거지? 그렇게 나를 간편하게 알고 싶은 건가, 싶어 보였다. 오, 그런데 이젠 할 말이 생겼구나!

날씨가 이러하니 자꾸만 설레는 곳으로 가자. 가서, 화성인 금성인 구분 그만 짓고 너와 나 어화둥둥 같은 지구인이니까 사이좋게 지내자는 거다. 분명 눈빛만 봐도 찌릿찌릿 통하는 게 있을 거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미 발그레해진 당신 볼이 속삭이고 있을 거고 그의 바지는 팽팽해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 사랑하기 참 좋은 날이어라!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