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약 10여 년 전. 당시 마악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속에는, 그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놀 거리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웃긴 사진이나 유머를 모아 게시했었고,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이들이 커뮤니티에 모여 밤을 새우며 채팅도 했었다. 200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1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기석은 2000년대 초반 '황제' 임요환이 부상하기 전까지 프로게이머의 대표적 인물로 꼽혔다.

2000년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의 추억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당시 유행했던 인터넷 문화들을 돌아봤다. 아! 세월의 덧없음이란! 그 때로부터 불과 십 수 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벌써 ‘추억’이라 부를 만큼 시간이 흘러 버렸다니.

 

■ ‘엽기 열풍’의 주역, 바부!코리아

2000년대 '엽기' 열풍을 선도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바부! 코리아'. [웹사이트 캡쳐]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인터넷 유머 트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엽기’였다. 본래 엽기(獵奇)는 비정상적이거나 기이한 일을 찾아다닌다는 뜻이지만, 당시 국내에서 쓰였던 ‘엽기’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병맛' 만화작가 엉덩국의 작품. [블로그 캡쳐]

그래, 요즘 쓰는 ‘병맛’이라는 단어가 당시 쓰이던 ‘엽기’의 의미와 그나마 유사한 것 같다. 그 때를 풍미했던 문화 코드 ‘엽기’는 괴상망측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단순히 웃기는 것이 아니라 고어하고 혐오스러운 것도 '엽기'의 범주에 속한다. '노란국물'처럼. [웹사이트 캡쳐]

그러나 병맛이 코믹함을 내포하고 있다면, 엽기는 ‘극혐’적인 요소들도 포함해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당시 ‘초딩’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노란국물’ 시리즈도 엽기 자료 중 하나였으니.

이러한 엽기 열풍에 힘입어, 인터넷 엽기 자료들(예를 들어 이상한 합성사진 등)을 모아놓은 사이트가 탄생했다. 포털사이트 ‘야후! 코리아’에서 이름을 딴 ‘바부! 코리아(이하 바부코리아)’다.

이런 합성 이미지만 봐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시절이었다. [웹사이트 캡쳐]

바부코리아 이전에도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많았다. 그러나 해외 커뮤니티에서 그대로 퍼온 자료나 사진들이 대다수를 차지했었기 때문에, 이와 차별화하고자 바부코리아는 자작 콘텐츠 생산을 장려했다. 그 덕에 바부코리아는 ‘신선한’ 엽기 자료를 찾는 이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아마 그쯤부터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기 어려워졌던 것 같다. 아파트 놀이터에 삼삼오오 모여 ‘얼음~ 땡~’을 외치던 아이들은 그들의 새로운 놀이터, 인터넷 속에서 동네 친구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 플래쉬 애니메이션 붐과 ‘오인용!’

"오인용!" 하는 강렬한 목소리와 얼굴이 등장하는 오프닝이 시그니쳐. [오인용 웹사이트 캡쳐]

2000년도 초반 인터넷 상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플래쉬 애니메이션이 정말 많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것도 에피소드 형식의 시리즈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졸라맨'은 따라 그리기 쉽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웹사이트 캡쳐]

플래쉬 애니메이션 열풍의 초창기 작품들 중에는 일부 퀄리티가 떨어지는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대체로 개인 제작자들이 취미삼아 만든 것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본업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그것처럼 수준 높은 작화와 더빙을 담은 플래시 애니메이션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 시발점이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 ‘오인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코믹 요소를 극대화한 작품도 있었지만 서정적이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도 많았다. [오인용 웹사이트 캡쳐]

오인용의 작품들은 아무런 내러티브도 담지 못했던 기존의 다른 플래시와는 달랐다. 그들은 엽기 열풍에 편승하면서도 매 작품마다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담아내거나, 다음 회차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을 남기는 엔딩으로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인용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돼지’, ‘중년탐정 김정일’, ‘식맨아맨’ 등이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음과 동시에 엄청난 지탄을 받은 작품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연예인 지옥’이었다.

아마 오인용의 흑역사가 아닐까 싶은 '연예인지옥' 속 캐릭터 '무뇌중'. 지금은 오인용이 게시물을 모두 삭제해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웹사이트 캡쳐]

연예인 지옥은 당시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가수 ‘문희준’을 패러디한 캐릭터 ‘무뇌중(충 아님)’이 군대에 입대한다는 상황을 가정해 그가 겪는 수난들을 폭력적이고 코믹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 때만 해도 문희준 안티팬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인지, 안티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연예인 지옥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결국 오인용은 인기에 힘입어 ‘스티븐 유’를 패러디한 캐릭터까지 추가하게 됐다.

둘만 남은 오인용 감독들이 지난 3월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만담강호' 속 장면. 논객 진X권과 변X재 씨의 신경전을 패러디한 장면. [네이버 영화]

그러나 가수 문희준의 해명과 그에 따른 대중들의 인식 변화, 플래쉬 애니메이션 시장의 축소 등으로 어느새 오인용의 입지도 좁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은 5명의 팀원 중 2명만이 남게 됐다.

 

■ 해충 고민만 들어준 게 아니다, ‘세스코 Q&A’

한때 네이버 지식인보다 명쾌하게 해답을 알려준다고 평가받았던 세스코의 Q&A 게시판은 여전히 건재하다. [세스코 웹사이트 캡쳐]

요즘 여러 기업들의 홍보 트렌드는 SNS 등을 활용한 고객과의 소통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업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기업과 고객간의 소통에 벽이 있지 않았나 싶다. 또한 고객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도 다소 경직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한 업체의 홈페이지 Q&A 카테고리가 한동안 눈길을 끈 바 있다. 해충박멸업체 세스코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아직 기량이 떨어지지 않은 세스코 Q&A. [웹사이트 캡쳐]

흔히 누구나 질문글을 올릴 수 있는 Q&A 게시판에는 다소 장난스러운 질문 글들도 올라오곤 한다. 기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질문이나, 아무런 의미 없는 농담성 질문들이 그런 예시다.

단순히 유머러스한 답변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내용으로 격려와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웹사이트 캡쳐]

그런데 한 네티즌들에 의해 세스코 Q&A 게시판의 관리자가 어떤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온라인상에는 세스코의 위트 있는 답변을 캡쳐한 이미지가 유행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세스코 Q&A가 유명해지자 너도나도 센스 있는 답변을 듣기 위해 홈페이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몰려든 네티즌들 만큼 황당한 질문도 많았을 터인데, 세스코 Q&A팀은 여전히 성실하고 위트 있는 답변으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줬다.

한 네티즌은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세스코 Q&A 게시판 관리를 담당했던 직원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전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세스코 브랜드홍보와 이미지개선에 큰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의 사교장, ‘버디버디’

학교 끝나고 집에 도착해 컴퓨터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바로 '버디버디' 로그인이었다.

무릎 밑에 때가 낄 때까지 놀이터를 전전하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놀이터로 이주했던 ‘초딩’들처럼, 새 놀이마당을 찾은 것은 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네 집에 “XX이 있어요?”라며 전화를 거는 풍경도 차츰 사라져갔다. 굳이 전화 걸 필요 없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면 되니까.

딱히 할말이 없어도 반 친구들에게 쪽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FM코리아 캡쳐]

청소년들은 학교가 끝나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메신저에 출석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였던 메신저는 단연 ‘버디버디’가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의 사교의 장, 버디버디는 지금의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처럼 ‘SNS’라는 말을 들을만 한 플랫폼이었다. 향후 고등학생들은 점차 네이트온으로 옮겨가게 됐지만, 적어도 초등‧중학생들에게는 가공할 점유율로 영향력을 미쳤었다.

아이디에 특수문자를 넣는 것은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웹사이트 캡쳐]

한때 유행했던 ‘외계어’도 대부분이 버디버디 메신저 활동에서 비롯됐다. 학생들은 눈에 띄는 특수문자들을 아이디에 넣어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간Zㅣ남’, ‘ⓔ뿐겅듀’ 등은 약과였다.

그런가하면 친한 친구(패밀리의 준말 ‘팸’이라고도 불렀다)들과 비슷하게 아이디를 맞추는 것도 유행했었다. 예를 들면, ‘매력쟁이공감이’, ‘귀염둥이신문이’ 등으로 집단 소속감을 드러내는 식이다.

버디버디 이모티콘들. [웹사이트 캡쳐]

그러나 버디버디는 쪽지를 보내는 메신저 기능 외에 불특정 다수가 모여 채팅을 할 수 있는 ‘채팅방’을 본격적으로 운영한다는 악수를 뒀다.

버디버디는 ‘게임’, ‘서울시’, ‘중학생’ 등 취미나 지역, 연령대별로 채널을 구분해 채팅할 수 있도록 채팅방을 꾸렸다. 초창기에는 버디버디의 의도대로 테마별 채팅방이 운영됐다.

한 일반인이 미성년자 때 버디버디에서 촬영한 '몸캠' 때문에 논란을 겪은 일도 발생했었다. [웹사이트 캡쳐]

그러나 도용된 주민등록번호를 검출하지 못한다거나, 주민등록번호 1개로 3개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는 등의 문제점 때문에 각 채널의 채팅방들은 점점 막장화가 됐다.

실제로 버디버디는 서비스 말기에 가출 청소년들이 성매매 고객을 찾거나 음란 채팅 등의 용도로 활용됐다. 특히 미성년자 성매매라는 심각한 문제점도 상당히 이슈화됐다.

지난 2012년 버디버디 서비스가 종료돼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느꼈다. [웹사이트 캡쳐]

버디버디는 지난 2012년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비록 끝물은 실망스러웠지만 서비스종료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출생한 이들에게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듯 싶다.

 

■ 지금의 인터넷 문화도 언젠가는 추억이 된다

"아버지 난 누구에요?", "나도 잘 몰러~"라는 대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Na' 광고도 엽기 열풍을 겨냥한 광고 중 하나였다. [웹사이트 캡쳐]

2000년대, 인터넷이 걸음마를 떼고 달리기를 배웠던 그 무렵에는 사실 지금보다 훨씬 더 선정적인 정보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문화도 현재와 비교하면 한참 성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도 청년기를 거치면서 방황을 하거나, 조금은 거친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도 보급과 성장 시기를 거쳐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2000년대를 거치며 발전한 인터넷은 이제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도 쉽게 접하는 '생활'이 된지 오래다.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인터넷의 성장 시기도 지나고 이제는 누구든 스마트폰이나 PC, 노트북 등 다양한 기기를 이용해 온라인에 접속하고 있다.

심지어 전구 스위치, TV 등 가전제품과 사물들을 인터넷으로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다.

인터넷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최근 많은 이들이 즐겨 찾고 주목하는 대형 커뮤니티들은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많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인터넷 문화는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소비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무엇을 ‘추억의 인터넷 문화’라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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