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최면’이라는 용어는 원래 라틴어로 잠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면’은 잠이 든 상태일까? 

최면 상태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최면전문가들은 “최면은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닌, 무엇엔가 가장하게 집중해서 주변 인식이 배제된 고도의 각성상태”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최면’은 어디에 사용되는가? 우울증 치료, 공황장애 완화 등 불안, 공포와 같은 심리 상담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심리 상담 외에도 ‘최면’을 범죄 수사에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1959년 최면을 범죄 수사에 이용한 후 FBI에서 76년부터 최면을 이용,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영구미제사건 전담반을 설치해 최면수사를 통해 약 60%의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도 한 해 평균 70건 정도의 최면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1997년, 처음 최면을 통해 검거에 성공한 후 19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최면 수사 전담부서가 설치됐다. 그 후 본격적인 수사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범죄가 지능화되고 있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한 지금도 최면 수사는 필요하다. 증거 확보 기법이 날로 진보하지만,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디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바로 목격자의 잠재의식이다. 최면 수사는 주로 목격자가 심리적 충격, 오랜 시간의 경과로 사건 관련 내용을 기억할 수 없을 때 쓰인다고 한다. 

오늘 공감포스트는 최면 수사를 통해 잠재의식 속 범인을 찾아낸 사례이다.

▶ “차들이 그 남자를 매달고 달리고 있어요.”

2007년 4월 밤 12시 40분쯤, 서울 강변북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구리 방향으로 가던 회사원이 택시에 치였다. 도로에 쓰러진 회사원은 뒤따라오던 차들에 잇따라 치여 10여 분 뒤 최초 사고 지점에서 5.5km 떨어진 곳에서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고를 목격한 목격자는 경찰에 “여러 대의 다른 차가 도로에 쓰러진 피해자를 계속 끌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목격자의 진술을 종합해 봤을 때 피해자를 매단 채 도로를 달린 뒤 응급조치 없이 달아난 차량은 10대쯤으로 추정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용산경찰서는 사고 현장 부근 CCTV나 과속차량 단속카메라 녹화 테이프를 확인했으나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게 별다른 수사의 진전이 없이 보름이 지나고, 경찰은 최면 수사에 나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함근수 범죄분석실장이 목격자를 상대로 최면 수사를 시도했다. 

목격자는 “강변북로 원효대교 부근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차들이 그 남자를 매달고 달린다.”라고 증언했다. 목격자는 최면 수사 후 차량이 SUV인지 승합차인지는 모르겠으나 검은색임을 기억해 냈고, 차량 번호 4자리를 똑똑히 기억해냈다. 

사고 현장을 본 교통경찰관은 “승합차는 바닥이 높아 사람을 끌고 갈 수 없다”며 목격자의 진술을 폄하했지만, 목격자가 진술한 단서를 토대로 등록 차량을 검색한 결과 33세 남성이 가해 차량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가해자의 차량은 검정 SUV였고, 목격자가 최면 수사를 통해 봤던 차량번호 또한 일치했다. 

▶ 두 아이를 장롱에 가둔 후 불을 지른 강도

2008년 7월 4일 오후 2시 40분, 전남 전북에서 어린 형제를 장롱에 감금하고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10분 전, 범인은 초등학교 인근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는 10살, 8살의 어린 형제를 발견, 집까지 두 형제를 뒤따라가 “어머님 심부름을 왔다”며 형제를 속이고 범행을 저질렀다.

형제를 속여 집으로 침입한 범인은 반지와 목걸이 등 35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뒤 아이들을 장롱에 감금한 후 철제 옷걸이로 장롱 문고리를 감아 고정한 뒤 불을 지른 후 도주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장롱문을 박차고 나와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두 아이는 사건의 충격으로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들은 인근에서 다른 목격자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엿을 팔던 목격자가 길 건너편에 서 있던 범인을 봤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목격자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떠올리지 못했다. 단서가 나오지 않자 법 최면 전문가인 박주호 수사관이 목격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고등학생이에요. 검은 무늬가 있는 노란 티를 입고 연한 청바지를 입었어요. 많이 말랐어요. 키는 175? 177cm로 보여요. 머리는 갈색이고 뒷머리가 귀를 덮었어요. 얼굴은 갸름하고 눈이 커요.”

목격자는 범인의 인상착의는 물론이고 공범인 친구와의 대화 내용, 친구가 타고 온 오토바이 모양까지 정확히 기억해냈다.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그려졌다. 

5일 뒤, 범인이 검거됐다. 목격자의 증언과 얼굴이 유사했고, 당시 입었던 옷과 오토바이 다른 증거물도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고 한다. 

▶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줄게” 연쇄 아동 성폭행 사건

2003년 4월, 충남 지역에서 연쇄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충남의 홍성, 당진, 예산 등지의 초등학교 주변을 돌며 주로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집에 데려다주겠다.”라며 유인한 후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 아이들을 강간했다.

초등학생 1~3학년 어린이 9명 포함해 모두 11회에 걸쳐 어린이를 연쇄적으로 강간한 이 사건은 단서는 전혀 없었고, 피해자들 역시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아 증언을 받기 힘들었다.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단서를 얻기 위해 충남 당진 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최면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과 최면 수사 연구원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 12세, 9세 어린이들에게 최면 수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푹신한 소파에 어린이를 앉히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조명을 낮추고 연구원이 최면을 시도했다.

“작은 파란 트럭에 무서운 아저씨예요”
“차 안에 인형이 있어요. 빨간 장난감 자동차도 있어요.”
“차의 네 자리 번호 중 첫 숫자는 ○예요, 두 번째에는 동그라미가 있고, 나머지 두 개는 같은 숫자예요.”

‘작은 파란 트럭’과 ‘무서운 아저씨’를 되풀이하던 어린이들이 점차 잠재의식에서 단서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최면 수사를 통한 증언을 토대로 비슷한 트럭 수백 대를 뒤졌고, 인형과 빨간 자동차가 있는 트럭을 발견했다. 트럭의 주인인 30대 초반의 남성을 검거했고, 경찰에 범행을 시인했다.

최면 수사는 외국에서만 진행되는 수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성공적으로 최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수사 단계에서 효과적인 진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최면 수사의 증언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리기에는 높은 범인 검거율을 자랑하는 수사 방법이며 성공적 사례가 다양하다.

특히 뺑소니, 강간 사건 범죄자 검거 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억 왜곡으로 인해 최면 수사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없다고 하니 사건 발생 후 최면 수사를 진행한다면 범인에 대한 윤곽이 더 빨리 드러나지 않을까?  

앞으로도 최면 수사를 통한 많은 사건 해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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