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부전자전'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자식은 부모를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 뜻이다. 이는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자식이 부모의 장점만 닮아갈 순 없기 때문에 '호부호자'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공감 포스팅팀이 뛰어난 부모와 그 못지 않은 자식들의 좋은 역사 속 사례들을 모아봤다.   
 

■ 아웅 산 – 아웅 산 수 지
아버지는 미얀마의 독립 영웅, 딸은 폭압적인 미얀마 군사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상징.

‘아웅 산’은 버마의 독립운동가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버마 독립군을 양성해 일본의 도움을 받으며 영국군과 싸웠다. 이 후 버마로 다시 돌아와서는 영국보다 가혹하게 통치하는 일본에 맞서 ‘30인의 동지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결성해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덕분에 영국이 버마를 재점령하자, 1947년 당시 영국 총리와 ‘애틀리-아웅 산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얀마의 독립 기반을 마련했다.

‘아웅 산’은 국민들에게 미얀마 국부로 대접받고 있다. 그의 딸인 아웅 산 수 지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면서 미얀마 독재 정권에게 밉보였지만, 겨우 가택 연금으로 끝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독재 정권이지만 아웅 산의 딸을 건드렸다간 후환이 두려워질 정도란 의미다.

연합뉴스=공감신문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아웅 산 수 지’는 1988년 군사 통치 반대 집회(통칭 8888 항쟁)에 참여하면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이 후 수지 여사는 버마를 일당 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당에게 다원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또한 야당 세력을 망라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해 그 의장이 된다. 1991년에는 민주화 운동의 공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신사임당 – 율곡 이이
한국의 지폐 속 모자(母子) 주인공.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오만원권, 아들 율곡 이이는 오천원권의 모델이 됐다. 오만원권 지폐 앞 면과 오천원권 지폐 뒷 면의 그림은 신사임당 작품.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호인 사임(師任)과 안주인이 기거하는 별채라는 뜻의 '당(堂)'을 붙여서 사임당이라 부르다보니 통칭이 이렇게 고정되어 버렸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선비가 갖춰야할 최고의 덕목인 시(詩), 서(書), 화(畵)는 물론이고 학문까지 능했다. 특히 '안견에 버금가는 화가'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예술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 아들인 율곡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다. 이이(李珥)가 본명이고, 율곡(栗谷)은 호이다.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을 완성시킨 인물. 두 사람이 정립한 이기론 이후로 조선의 붕당은 이기론 해석에 따라 갈리게 된다.

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붕당정치에서 서인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가였다. 특히 그의 제자들이 정권을 잡은 덕분에 이후 조선에서 거론된 수많은 정책과 개혁론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정책에 뿌리를 두게 된다.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장 르누아르
아버지는 그림, 그 아들은 영화로 미를 표현했다.

아버지인 피에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색을 선명하게 칠했으며 특히 적색 표현에 뛰어났다. 이에 근대 최대의 색채 화가로 알려졌다. 인상파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멋을 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여성 육체를 특수하게 표현했으며 풍경화에도 뛰어났다. 노년에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이 마비되자 붓을 입으로 물면서까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주요 작품은 〈해수욕장의 풍경〉, 〈대수욕〉, 〈목욕하는 여인들〉, 〈큰길〉 등이다.

아들인 장 르누아르는 그 업적과 영향력으로 영화계에서 전설 취급을 받고 있다. 1924년 첫 작품인 <물의 딸>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후 여러 작품을 발표했지만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화 평론계에서 재조명된다. 이 후 '프랑스 영화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작품인 <게임의 규칙>(1939)은 ‘불멸의 영화 100’, ‘세계 걸작 100’에 자주 선정되는 명작이다.
 

■ 안창호 - 안필립
아버지는 민족을 위해 평생 헌신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그 아들은 미국에 조국의 이름을 알린 성공한 영화배우다.

아버지인 안창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로 호는 도산(島山)이다. 특히 ‘비폭력 자강’ 교육계 독립운동가로 독보적인 원훈.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민족 실력양성‘을 주장했으며, 그가 설립한 흥사단은 현재까지 이어져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안창호는 북미 최대의 한인 자치단체인 ‘공립협회’의 창립멤버다. 이후 조국으로 돌아와 활발한 애국계몽 운동을 펼쳤다. 그는 뛰어난 웅변으로 많은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아들인 안필립은 할리우드 1세대 동양인 배우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긴 첫번째 한국인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모친은 배우를 본업으로 삼는 것을 반대했으나, 부친인 안창호가 그의 결정을 지지해준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슈퍼스타인 존 웨인, 게리 쿠퍼, 험프리 보가트, 록 허드슨, 프랭크 시나트라, 줄리 앤드루스, 그레고리 펙 등과 함께 조역으로서 활약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성공한 유일한 한국계 배우이기도 하다
 

■ 닐스 보어 – 아게 닐스 보어
아버지와 아들 모두 20세기 물리학계를 풍미하며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과학자다.

아버지인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1922년 그는 원자 구조에 대한 가설(보어 모델)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07번 원소 '보륨'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또한 수소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양자론을 도입했다. 덕분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도 영향을 줬다.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모든 국가에게 원자력 개방정책 및 공동 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아들인 오게 닐스 보어는 ‘원자핵의 진동과 회전이란 집단운동적인 면과 껍질모형적 거동을 하는 핵자(核子) 개별 운동’을 통합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후 “원자핵 내의 집단운동과 입자운동의 연관성 발견과 이 연관성에 기반한 핵자 구조 이론의 연구”에 대한 업적으로 197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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