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philosophy)이라는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을 풀자면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공감신문] 어제는 현충일이었다.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난 이태원에서 낮술을 한잔 마시며 공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 역시 부끄럽게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빈다거나 그런 마음가짐보다는 비 냄새에 섞인 술맛이 참 달다는 생각이 상당히 지배적이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현충일 전날 밤,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은 6.1%였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마치 주말 밤다운 밤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어제의 시청률은 6.8%였다. 19대 대선 다음 날이었던 5월 10일의 시청률 7.0%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지금 또 떠들썩한 이슈들이 많아 그렇다 치더라도, 뉴스 시청률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꾸준한 편이다. 종합편성채널들의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 중 7개가 시사프로그램이다. 정말 아름다운 순위 되시겠다. 우린 이러한 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가끔 정말 놀랄 때가 있다.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믿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것은 단지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SNS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페이스북을 이용하며, 그 중에서도 몇 가지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다. 유머나 뷰티, 생활정보 같은 페이지 이외에도 뉴스 페이지 같은 것을 대부분 한 두 가지 정도 챙겨본다. 그런데 여기서 흘러나오는 정보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많고, 막상 들어가서 내용을 보면 제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 것들도 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인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내용을 시간 내어 들여다보지 않고 제목만을 가지고 추측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그대로 집어넣어 버린다. 그 정치인이 이렇게 했데, 그가 이렇게 말했데, 그가 이렇게 제안했데.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 그 내용의 마지막 줄에, ‘한편 누구는 그런 제안을 받은 바가 없다고 전했다’라는 건 읽지도 않은 채.
이게 정말 큰 문제라는 거다. 아, 지금은 엄청 큰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위험하다. 특히나 정치에 관한 이슈일 경우 더욱. 그는 하지도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이 되기도 하며, 그것 때문에 그가 공약을 지킨 사람이 되거나 혹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다!

내가 믿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당신이 믿는 것, 그것은 당신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사실’에 입각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 달리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채널 홍수 상태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당신이 구독했던 유머 페이지가 어떤 특정 성향을 가진 집단에 팔리는 거다. 이 유머 페이지를 구독하던 수많은 유저들은 그 정보를 수동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그들이 노출하는 것을 저도 모르게 계속 보게 되는 거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 누구를 팔로우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당신은 아마도 습관적으로 SNS를 하루에도 몇 차례 들여다 볼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매체가 SNS일지도. 그러면 스스로를 위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구독하는 페이지들이 과연 내가 구독할 때의 톤 앤 매너를 지키고 있는 지, 그리고 그 정보들이 정말 사실에 입각한 내용인지 말이다.

철학자들은 논리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철학은 반박에 반박이다. 앞선 이들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발전해왔다. 당연히 철학적인 질문에는 답이 없다. 내가 철학을 좋아한다고 하면, 누구들은 그 답이 없고 말장난 같은 걸 왜 좋아하느냐고 하지만, 그래, 말장난 같고 끝이 없기 때문에 계속 탐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의 어원도 사실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알고자 하는 노력을 ‘철학’이라 부른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앞선 철학자들의 논리가 아직도 논리적이고 수긍이 간다는 사실이다. 아 물론, 플라톤의 <국가론>같은 이야기는 너무 현실과 동 떨어지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정치인들 역시 논리적이다. 그들 역시 반박에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역사들도 다르게 해석하고 비꼬고 옹호하고 입장을 바꾼다. 그러니 우리는 ‘알고자하는 노력’, 즉 ‘철학적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믿는 진실이 지금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일주일 후에는 ‘사실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뉴스에 나올 수 있으며, 한 달 후에는 ‘사실이 아니었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놓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놓으면 우리가 뽑은 ‘그들’도 놓는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플라톤이 말하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의 면모를 드러낼지 누가 안담? 언제는 뭐 알고 당했나.
조금만 아는 것은 차라리 모르느니만 못하다. 물론 무지한 그들 역시 대의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여야겠지만……. 휴.

18대 대선 전의 일이다. 실명을 밝힐 순 없지만 나름 유명한 음악 하는 오빠가 있다. 그 오빠가 나에게 ‘곧 대통령 선거 한다며? 누구 나와?’라고 물었다. 오빠는 정치에 대해 정말 ‘1’도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 음악만 안다. 곁다리로 영화나 연애 정도?
당시에는 야권이 단일화를 하느니 마느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몇몇 두드러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빠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아는 그 안철수? 바이러스 치유하는 그 안철수가 대통령에 나온다고?”
“네. 지지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심지어.”
그러자 오빠는 몇 초 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가 인기가 많은지 알겠다고 했다. 뉴스도 안보는 사람이 왜 그가 인기 많은 지 어떻게 안담? 왜 그럴 거 같냐고 물었다.
“이름이 철수잖아!”
아, 그렇구나. 안철수도 이름을 부르면 철수구나.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 정말 국민으로서 꽝이야. 나는 정말 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오빠 세금도 엄청 많이 내면서 그 돈을 누가 어떻게 쓰는 지 안 궁금해요?”
“응, 안 궁금해. 그냥 난 음악만 할 수 있으면 돼, 지금처럼.”
그렇구나. 안 궁금하구나. 나는 오빠에게 정치에 왜 관심을 가져야하는 지 이야기하려다가 그냥 안했다. 어차피 그의 성격상 관심을 잠시 가지다가 얼마 안가 또 뉴스를 꺼버릴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이렇게 가끔 이야기나 해주지, 뭐.
“나 대신 네가 정치에 많이많이 관심 가지고 내 세금 잘 쓰나 감시해줘. 맛있는 거 사줄게.”
……아, 오빠 죄송해요. 국민연금이 그렇게 쓰이고 있는 지, 저도 까맣게 몰랐군요.

차라리 이렇게 정치에 무지할거면, 그럼 ‘척’이라도 하자. 감시자인척을 하자는 거다. 당신이 너무 먹고 살기 바쁘고 머리가 아파서 신문을 읽을 여유가 안 생긴다면 뭐 어떡하겠는가. 그러면 정치인들이 긴장이라도 하게 감시하는 척, 깐깐한 척, 도도한 척 굴자는 거다. 다음에 표를 안주겠다고, 혹은 이번에 좀 잘하면 내 표를 주겠다고 도도한 유권자가 되자는 거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볼 뉴스들이 좀 훈훈해질 것 같으니까.

바라는 게 있다면, 언론사들이 인터넷 뉴스에 너무 많은 광고를 싣지 않으셨으면 한다. 스포츠나 연예, 경제 뉴스는 그렇다 치자. 정치 뉴스에는 과한 광고로 독자들을 고단하고 귀찮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내용을 안 읽게 되는 거 아냐! 광고 창에 왜 그렇게 ‘X’ 표시를 작게 해놓는 거야? 독자들이, 아니 국민들이 이제라도 정치 뉴스를 많이 읽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 광고를 줄이는 아름다운 배려(?)를 해주셨으면 한다. 이를테면 공감신문처럼?

철학적으로 산다, 는 것은 단지 삶에 대한 의미를 파악한다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알고자 하는 노력, 지혜를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너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 라는 말은 철학적으로 널 사랑하는 뜻일 수도 있다.
이 음식의 소스는 무엇으로 만들었죠?, 라는 질문은 철학적으로 맛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난 이 글을 마치고 오늘 밤 비행기로 또, 방콕으로 떠난다. 여러 번 갔지만 갈수록 새롭고 알고 싶은 도시다.
난 철학적으로, 방콕을 사랑한다.
여러분도 철학적으로, 정치에 사회에 경제에 세계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조심스레 바라 본다. 그것은 늘 답이 없고 역동적이며, 허무하면서도 가치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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