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안락한 주거생활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요건일 뿐 아니라 가족의 유지와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사회통합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그동안 성장 위주의 경제·사회적 목표 아래,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할 정도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의 공급량도 크게 늘어 수도권을 제외한 주택보급률이 일찌감치 100%가 넘었다. 하지만 윤택한 경제생활의 바탕이면서 사회 안정을 위한 주거생활의 질적인 측면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크지 않았다.
  그동안 주거문제는 주로 주택의 공급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기부양을 위한 부동산활성화와 투기억제 수단으로서의 부동산대책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으로, 주로 서민과 빈곤층 대상의 보편적 주거복지를 위한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살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적절한 주택과 서비스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1976년의 밴쿠버 선언에서의 이른바 주거권이 그 바탕이 되었다.
  최근에 이러한 주거권의 실현을 위한 초석이 마련되었다. 국민의 주거권을 명확히 하고 국가가 담당해야 할 주거정책의 기본원칙이 제시된 ‘주거기본법’이 지난 6월말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제정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기존의 주택법보다는 이 법을 바탕으로 국가의 주거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같은 내용의 입법이 마련됨으로써 국민의 주거 생활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국민의 주생활안정 중심의 주거복지체계 구축이라는 시대적 사명이 반영된 것이다. 경제적 관점의 주택문제나 부동산문제와 더불어서 사회적 측면에서의 주거복지 문제를 통합적으로 정책 대상화함으로써 새로운 주거정책의 영역을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우리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주거권 개념을 명확히 한 측면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풀어야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정부 입장에서는 주택의 문제를 경기부양이나 투기조절 수단으로 활용해온 관행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택정책을 주거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주생활 수준의 지표로 활용되어 온 최저주거기준에 더하여, ‘1인 가구는 방 2개와 부엌이 딸린 33㎡규모’라는 보다 높은 수준의 유도주거기준이라는 제도까지 도입했지만 실질적 효과를 얻을 묘안 찾기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전월세상한제 도입 주장 등에서 보듯이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주거복지를 바라보는 진영 간 이념적 견해차도 여전하다. 매년 실시하는 주거실태조사의 경우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중복조사와 부족한 예산의 문제가 당분간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전월세난과 같은 특히 서민층의 주거불안 문제들까지 산재해 있어 이러한 문제들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거기본법 제정이라는 첫 단추가 꿰어졌으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개선해나가면 된다. 정부는 주거빈곤자를 위한 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해 나가되 시장원리에 기초하여 민간의 역량을 배려하면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의 증액이나 관계법령의 제·개정시 정치권의 관심과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