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현충일, 의병의 날, 6.25 한국전쟁일 등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돼 있다.

호국(護國)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훈(報勳)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들에 보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는 달이 된다.

과거부터 나라와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아끼지 않은 인물들은 늘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에도 존재한다.

과거보다 집중 받지 못하지만,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 모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천안함·세월호의 영웅들
고(故) 한주호 준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자 동료 및 선·후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든 군인이다.

고(故) 한주호 준위 / 연합뉴스

그는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46명의 승조원이 실종되자, 작전지원부서(해군 특수전 여단 작전지원대)에 재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임무에 자원한다.

이후 구조 현장에서 53세라는 나이도 잊고,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잠수 수색에 나선다.

당시 한주호 준위는 구조현장이 익숙하지 않은 경력이 낮은 대원들은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자신이 보다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은 높은 파고, 낮은 수온, 깊은 침몰 수심 등이라는 악조건 투성이었다. 하지만 한주호 준위는 실종자들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실신해, 미 해군 구조함 살바(SALVOR)함으로 후송돼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순직했다.

고(故) 이광욱 잠수사 / 연합뉴스

고(故) 이광욱 잠수사, 많은 학생과 일반인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이광욱 잠수사는 주저 없이 현장으로 향한다.

이광욱 잠수사의 아들도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 때문에 이광욱 잠수사는 수색작업을 위해 현장에 향하던 중에도 세월호 참사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광욱 잠수사는 부모의 입장이라, 느끼는 감정이 달랐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서둘러 학생들을 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광욱 잠수사는 현장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후 의사자로 인정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유족들의 슬픔에 비할 순 없을 것이다.

물망초,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다

한주호 준위와 이광욱 잠수사 외에도 천안함과 세월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그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섰을 뿐이다.

◆강재구 소령
수류탄은 손으로 던지는 근접 무기다. 수류탄은 폭발할 떄 그 외부를 구성하는 금속 파편이 퍼지면서 살상 범위를 확대하는 무기다.

이처럼 위험한 무기를 자신의 몸으로 막아, 많은 사람들을 구한 분이 존재한다. 바로 고(故) 강재구 소령이다. 강재구 소령은 1965년, 베트남전 투입 결정된 수도사단(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으로 보직됐다.

강재구 소령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베트남 전 투입을 앞둔 10월 4일, 맹호부대는 수류탄투척 훈련이 한창이었다. 당시 훈련에 참가했던 한 이등병이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실수로 떨어뜨린다. 강재구 소령은 이에 자신의 몸을 폭발 직전의 수류탄 위에 덮친다.

이로 인해 훈련장에 있던 중대원 100여명은 목숨을 구한다. 중대원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재구 소령이 자신을 희생해 이들을 구한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쉽지 않을 결정이다. 강재구 소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강재구 소령은 자신을 희생했다.

강재구 소령 동상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맹호부대 1연대 3대대는 강재구 소령의 이름을 딴 ‘재구대대’로 불리고 있다. 아울러 육군은 모범중대장을 선발하는 상의 이름을 ‘재구상’으로 명명했다.

◆헬기 추락 순직 소방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7월, 사고 해역 수색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던 강원소방본부 소속 헬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강원 춘천 동내면 거두리 강원효장례문화원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임무 수행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이동하자 동료 소방관들이 무릎을 끓고 처우 개선 등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7.20 / 연합뉴스

당시 헬기는 정설철 소방경, 박인돈 소방위, 안병국 소방장, 신영룡 소방교, 이은교 소방사가 탑승해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4일 동안 수색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상악화로 복귀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헬기 추락으로 발생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광주 도심에서 발생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성철 소방령의 아들인 대학생 정비단 씨가 소방관 정복 상의와 모자를 갖춰 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씨는 "소방공무원은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다"며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4.9.27 / 연합뉴스

이 사고로 소방관들의 처우 문제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은 개선을 약속 했으나,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북한과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1968년, 북한은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의 무장공비들을 우리나라에 침투시킨다.

당시 국내는 무장공비 침입 소식으로 큰 혼란에 빠졌고,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무장공비들은 자신들의 목표였던 청와대로 향하기 위해 서울로 진입한다.

정종수 경사 흉상 제막식 / 연합뉴스TV

그리고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자하문에 나타나, 당시 정종수 순경 등 경찰들과 대치한다. 이를 보고받은 최규식 종로경찰서장도 현장으로 출동한다.

우리 경찰들은 무장공비들과 총격전을 벌였고, 청와대 진입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순경은 총에 맞아 끝내 사망한다.

2007년 현충일을 맞아 구은수 종로서장과 각 과의 과장들이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 출처=경찰청

결국 무장공비들은 대부분 사살되고, 작전도 종료된다. 이들의 살신성인으로 인해 국민의 피해와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김도현 소령
어린이 날인 2006년 5월 5일, 수원비행장에서 공군 특수비행대 ‘블랙이글스’가 에어쇼를 선보이고 있었다. 당시 비행장에는 블랙이글스의 비행을 관람하기 위해 1000여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블랙이글스 대원 중 한명인 고(故) 김도현 소령은 기체이상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후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김도현 소령은 비상탈출로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

울산대공원 현충탑에서 김도현 공군 소령 순국 10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2016.5.4 / 연합뉴스

그러나 김도현 소령은 비상탈출 하지 않고, 끝까지 비행해 관람객들의 피해를 막는다. 그의 희생이 대형 사고를 막은 것이다. 당시 김도현 소령에게는 4살과 3살의 어린 아들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더욱 안타까워 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편을 통해 소개한 분들 외에도 자신을 희생해 나라와 국민을 지킨 많은 분들이 존재한다. 이 분들 역시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가유공자인 박용규씨(가운데)를 부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를 통해 강조한 것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나라와 국민을 지킨 이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대접받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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