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모든 작품에는 인물, 배경, 이야기가 존재한다. 특히 극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물의 등장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링 요소이다.

이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극 중의 정의로움으로 대변되던 주인공을 통해 희열을 느끼고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스포트라이트는 주연에서 조연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에서 악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재벌3세 조태오를 맡아 열연을 펼친 유아인 / 출처=영화 배태랑 캡처

이번 시간에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역대 급 악역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사실 악역이라는 것도 동전의 양면처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때때로 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천재 의사의 끝없는 야망 종말론, 하얀거탑 장준혁(배우 김명민)

2007년에 방영 된 하얀거탑은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가진 한 천재 의사 장준혁(배우 김명민 분)의 끝없는 질주와 종말을 그린 드라마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학 그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는 장준혁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극의 장치이다.

훤칠한 키에 강인한 인상, 그리고 메스를 다루는 탁월한 솜씨 까지 지닌 장준혁은 명인대 일반외과 부교수까지 올라가며 겉보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얀거탑에서 불꽃 카리스마를 선보인 김명민 / 출처=하얀거탑 홈페이지 캡처

외과의로서 최고를 꿈꾸는 장준혁은 정교수 자리를 통해 세계최고로 나아 갈 야망을 품는다. 하지만 빽 하나 없이 너무도 가난 했던 집안 환경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때론 목적과 수단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각자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한 김명민과 이선균/ 출처=하얀거탑 홈페이지 캡처

하얀거탑에 등장하는 장준혁의 모습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출세를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 홀로 계신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 인술론을 펼치는 최도영과의 우정,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적 모습이 등장한다.

김명민의 역대 급 인생연기로 기억되고 있는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겉보기에는 권력과 야망에 눈이 먼 한 속물적 의사의 일대기로 볼 수 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 고민을 담고 있어 큰 공감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죽음을 맞이하는 장준혁 의사 / 출처=하얀거탑 홈페이지 캡처

 

■ 성악 천재 건달의 등장, 파파로티 장호(배우 이제훈)

SBS 스타킹에 출연했던 고등학생 테너이자 파파로티로 불리던 김호중씨를 모티브로 만든 이 영화는 실화를 그대로 옮긴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장호(배우 이제훈 분)는 천부적인 노래 실력을 지녔으나, 일찍이 주먹세계에 입문해 낮에는 수업, 저녁에는 업소관리를 하는 등의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꿈을 통해 비상하는 장호 / 출처=영화 파파로티 스틸컷

주먹과 노래 두 가지 재능을 타고 났으나, 주먹은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고 노래는 꿈을 위한 선택이었다. 결국 장호는 음악을 하기 위해 스스로가 몸을 담고 있던 조직을 나오게 된다.

다시는 주먹을 쓰지 않겠다는 한석규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는 장호의 모습, 그리고 경연이 모두 종료된 뒤에 홀연히 무대에 올라 네순도르마를 열창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조폭도, 학생도 아닌 꿈을 그리는 사랑스러운 한 인간의 모습만이 비춰질 뿐이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 한석규와 이제훈 / 출처=영화 파파로티 스틸컷

 

■ 복수의 끝판 왕, 냉혈한 이우진(배우 유지태)

이유도 없이 15년간 사설 감금 방에 갇혀 만두를 먹어야 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후에는 심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충격적인 소재로 개봉당시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며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는 오대수를 연기한 최민식의 야성미 넘치는 연기뿐만 아니라 유지태의 섬세한 연기 또한 돋보인 작품이었다.

디테일한 연기가 돋보인 유지태 / 출처=올드보이 스틸컷

자신이 왜 갇혀있어야 하는지, 관객도, 주인공도, 그 이유를 모르는 상황에서 이우진(배우 유지태 분)은 그저 악랄함의 극치이며 반드시 복수해야 할 인물로 그려진다.

극은 오대수의 입장에서 진행되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우진이 15년간 그를 가둘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공개되며 관객들의 마음에 왠지 모를 미안함과 측은함마저 들게 만든다.

용서야 말로 진정한 복수는 아니었을까 / 출처=올드보이 스틸컷

자신의 친 누나와 사랑했던 우진은 이 같은 사실을 모두에게 발설해, 결국 누나를 자살의 궁지로 몰아넣었던 대수에게 복수심을 품었고 15년 이후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회의감과 허탈함에 자살을 하게 된다.

분명한 악역이지만 마냥 미워 할 수만은 없는 우진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사랑하는 누나를 떠나보내야 했던 우진 / 출처=올드보이 스틸컷

"누나와 나는 다 알면서도 사랑했다. 너희도 그럴 수 있었을 까?" 올드보이 대사 中 우진의 말

 

■ ‘살려는 드릴게’ 츤데레의 정석 신세계 중구 형

‘살려는 드릴게’, ‘중구형 거 장난이 너무 심한거 아니오’ 등의 최대 유행어를 남기며 신세계 수혜자로 떠오른 (배우 박성웅 분) 이중구는 극 중 골드문 상무이사로 대부업, 다단계, 금융, 엔터테인먼트 관련을 담당한다.

품위 있으면서도 위압감 넘치는 독설을 쉴새없이 퍼붓는 모습이 압권이며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다른 주역에 비해 적지만 그만큼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중구 / 출처=영화 신세계 스틸컷

또한 극 중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함께 자신의 식구를 끔찍이 아끼는 츤데레 모습을 보여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뜻밖의 훈훈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성웅은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해 “나는 신세계에서 나쁜 놈이 아니었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냐”며 “사실 거기서 제일 나쁜 놈은 강 과장(최민식 분)이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박성웅 / 출처=SBS 리멤버 방송 캡처

 

■ 헐리웃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 악역들.. 안톤 시거, 다크나이트 조커

코언 형제의 12번째 장편영화로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주연을 맡은 안톤 시거(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소름 돋는 살인마 연기에 시선을 뗄 수 없다.

영화에서 보여 지는 시거의 모습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절대 악에 치우쳐 있는 살인마로 비추어 진다.

살인마 연기의 끝을 보여준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시거를 통해 드러내려는 의도를 보인다. 때문에 시거는 단순히 원한을 품거나, 돈을 노리는 살인마가 아닌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 그 자체인 것이다.

이어 매년 할리우드 최고의 악역으로 꼽히는 다크나이트 조커는 베트맨이 있어 행복한 악당이라 할 수 있겠다. 둘은 선과 악의 대립처럼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자비한 악행을 저지르는 그에게도 남모를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알콜중독자에 악마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칼날을 넣고 ‘왜 그렇게 심각해?’라고 물으며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

베트맨의 영원한 맞수 조커 / 출처=영화 다크나이트 스틸컷

한 때 유행어였던 Why so serious?는 어떻게 보면 조커의 어두운 내면을 가장 잘 대표하는 문장 일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