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영화에는 대체로 악당이 등장한다. 영화 속 악당들은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궁지에 몰아넣는다. 때문에, 주로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극 중 악역을 나쁘게 느끼기 마련이다. 괜히 ‘악역(惡易)’이겠는가. 이들을 영어로는 ‘빌런(Villain)’이라 칭한다.

'짐짝처럼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라에몽' 주인공 '노진구'. [도라에몽 애니메이션 장면]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가 전면에서 ‘얘가 바로 빌런이란다’하고 내세우는 악역 외에도 눈총을 받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주로 악의 없는 행동을 통해 주인공 일행의 발목을 잡던가, 혹은 의도와 무관하게 직접적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아, 짐짝처럼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도 존재한다.

작중 짜증나는 행동을 일삼고 극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조연들을 관객들은 '발암' 캐릭터라 칭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영화 속 주인공과 대척을 이루는 것은 악역이 맡지만, 그 외에 갈등을 유발하거나 기폭제가 되는 것은 이런 특징을 지닌 주·조연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악의 없는’ 행동을 관객들이 ‘그럴 수 있지’라며 대인배처럼 받아들일 리가 없다. 가뜩이나 대놓고 악역인 등장인물도 싫은데 말이다. 이들의 짜증나고 어이없는 행동에 관객들은 ‘발암’이라면서 답답함을 호소한다.

물론 영화 뿐이 아니라 현실 속에도 지독하게 악랄한 빌런들은 존재한다. [크롱빌런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발암 유발자’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악역의 그늘에 가려진 또 하나의 ‘빌런’이라 할 수 있겠다.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숨은 빌런’들을 살펴봤다.

주제 특성상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할 것. 만약 영화를 아직 안 본 이들이라면 영화 줄거리 설명 부분에서 잽싸게 스크롤을 내리기 바란다.

 

■ 추격자 - 개미슈퍼 아줌마

단 한 문장만으로 관객들의 탄식을 자아낸 추격자의 슈퍼 아주머니. [영화 추격자 장면]

“그 아가씨가 여기 있대니깐?”

포스트 아이템을 결정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빌런, 일명 ‘슈퍼 아줌마’다. 상당히 성공한 영화 ‘추격자(2008)’의 등장인물이기에, 포스트를 읽는 여러분들도 ‘아!’ 하고 무릎을 탁 칠지 모르겠다.

개미슈퍼 주인 아주머니 역할을 맡은 연극배우 이재희. [이재희 배우 블로그 캡쳐]

개미슈퍼 아줌마는 극중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 급 단역이다. 하지만 짧은 순간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그녀의 대표적(이자 유일한) 발암 행보는 위에 소개한 그녀의 명대사 “그 아가씨가 여기 있대니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포일러-

극중 지영민에게 담배가 딱 한 가치만 더 있었더라면… [영화 추격자 장면]

극중 사이코패스 살인마 지영민은 수사를 받던 도중 증거가 부족해 풀려난다. 이후 영민은 귀가 도중 담배를 사러 ‘개미슈퍼’에 들어간다. 개미슈퍼 주인아줌마는 다친 영민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그에게 “요즘 동네에 미친XX가 많다”는 말로 ‘발암’ 행동을 시작한다.

살인범에게 강력한 아이템을 쥐어주고나서 든든하다며 미소짓는 그녀. [영화 추격자 장면]

아줌마의 설명에 의하면, 누군가가 한 여자를 가둬두고 죽이려 했다는 것. 물론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그 ‘미친XX’가 아줌마 눈앞의 영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는다. 그 놈이 쫓아올까봐 겁나니, 영민에게 잠시 가게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영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슈퍼를 떠나려 했으나, 이때 아줌마가 그를 붙잡으며 결정적 멘트를 날린다. 바로, 위의 그것이다.

영화 추격자는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영화 추격자 해외판 포스터]

사실 이 영화에는 정말로 선한 인물이 별로 없는데, 숱한 ‘나쁜 놈’들 중에서도 그녀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덕일까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리뷰에서조차 그녀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관객들은 개미슈퍼 아줌마가 ‘한국 영화 최고의 악당’에 꼽힌다는 농담 섞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업햄 상병

'고문관'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바로 그 이름의 주인공, 업햄 상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장면]

한국 영화계에 ‘개미슈퍼 아줌마’가 있다면, 헐리웃에는 ‘업햄 상병’이 있다. 그만큼 대표적인 ‘발암’ 유발 캐릭터라는 의미다.

참혹한 전쟁에 대한 묘사로 아직까지 전쟁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포스터]

일명 ‘전쟁영화의 교과서’라 불리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등장하는 업햄은 약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발암 캐릭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스포일러-

영화의 주인공 존 밀러 대위는 라이언 일병을 찾으라는 임무를 하달 받고, 부족한 인원 보충에 나선다. 그 중 밀러 대위의 눈에 든 것이 바로 업햄 상병이다. 업햄은 지도 제작 임무를 맡은 측량병이었으나, 밀러 대위는 업햄이 독일어와 불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뽑았다. 그것이 밀러 대위의 가장 큰 실수일 줄이야…

분대원들 중에서도 상냥한 성격이 돋보였던 업햄 상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장면]

그는 전투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 종반의 최종전에서 탄약을 나르는 임무만을 맡았다. 물론 쉬운 임무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대원들은 무수한 적과 직접 전투를 벌여야 했기에 전투경험이 적은 그를 배려해 탄약 지원을 맡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처음에는 업햄도 이리 저리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참혹한 전투 속에서 정신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상황이 다 끝난 뒤 내려오는 독일군조차 업햄을 무시하고 지나쳐가버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장면]

상당히 중요한 지원 임무가 업햄 때문에 공백이 생기자 결국 탄환이 부족해졌고, 기관총 진지는 나치군에 의해 무력화되기 이르렀다. 이로 인해 기관총 사수 멜리쉬 일병은 독일 병사와 육탄전까지 벌이게 되는데, 지척에 있던 업햄은 그 상황을 알면서도 패닉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멜리쉬 일병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지는 죽음을 당하고 만다.

저 상황에서 용감한 영웅처럼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장면]

결론만 보자면 라이언 일병은 생존했으나, 주인공 존 밀러 대위를 비롯한 구출팀의 분대원이 궤멸당한 것은 패닉에 빠진 업햄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중 몇이나 전시 상황에서 영웅처럼 맹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 그를 평범한 우리가 전장에 투입된 모습으로 투영해야 한다는 견해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 부산행 - 용석

비열하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부산행'의 용석. [부산행 영화 장면]

한국 좀비 영화 ‘부산행(2016)’의 등장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그가 맡은 캐릭터의 이름(용석)은 몰라도, 그의 얼굴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외국 좀비 영화만 보다가 친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좀비가 나오니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부산행 영화 장면]

부산행에는 주인공 일행을 위협하는 것이 좀비뿐만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 일행들은 주인공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 중 리더격 인물이 바로 용석이다. 물론 목소리가 커 리더처럼 보일 뿐, 딱히 리더쉽을 발휘하진 않는다.

-스포일러-

용석은 첫 등장부터 강렬한 ‘패드립성’ 대사로 인상을 톡톡히 남겼다. 그는 작품 초반 어린 서수안에게 노숙자를 보고 “공부 안 하면 커서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오지랖 넓은 충고를 한다. 그 말을 들은 수안이 “엄마가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나쁜사람이라고 하던데”라 대꾸하는데, 용석은 지지 않고 “너네 엄마는 공부 안 하셨나보네”라는 얼토당토 않은 소릴 한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속물적 발언을 했을 뿐, 숨은 악역이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부산행을 본 관객들 다수는 배우 김의성의 캐릭터 '용석'이 너무 미워서 '명존쎄'를 하고 싶다는 후문을 남겼다. [부산행 영화 장면]

좀비 바이러스가 KTX에 퍼지면서 용석은 서서히 이기주의적 면모를 드러낸다.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극단적 행동을 일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좀비에게 쫓기는 생존자들을 ‘버리고 빨리 출발하자’며 승무원을 보채고, ‘감염됐을지 모른다’며 외부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들이는 것에 반대한다. 심지어 살기 위해 다른 이를 밀쳐 좀비들의 희생양으로 바치고, 그 틈을 타 달아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민폐+발암 캐릭터의 특징인 ‘문 열어놓고 도망가기’도 깨알같이 시전한다.

영화 개봉 이후 배우 김의성에 대한 욕설 트윗…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그러면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탓에 많은 몇몇 관객들은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아직도 안 죽었냐’고 분노하기도 했다. 이 포스트의 주제 ‘영화 속 발암 유발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범한 소시민 ▲상황을 미처 몰랐음 등의 공통점이 있는데, 용석 캐릭터는 그저 생존만을 위해 행동하다보니 좀비보다 많은 ‘킬 수’를 올렸다.

배우 김의성은 '명존쎄'가 뭔지 몰라 멋모르고 공약을 내걸었다 고마운 분에게 의미를 전달받고 황급히 공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김의성 배우 페이스북 캡쳐]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대체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창작물에서 생존자가 장기간 살아남을 경우, 생존을 위해 다소 이기적 행동까지 한다는 것이다. ‘워킹데드’, ‘28일후’ 등 다양한 작품에서, 그런 행동들이 ‘생존을 위한 선택’처럼 묘사되곤 한다. 어쩌면 용석의 행동이 관객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좀비 사태 초반이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용석과 같이 행동하는 이들이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 그 밖의 인물들

'미스트'에서 광신도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속의 카모디 부인. [미스트 영화 장면]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로 평가가 엇갈리는 공포영화 ‘미스트(2007)’에도 대표적인 발암 유발 캐릭터가 등장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개독(기독교인에 대한 멸칭) 아줌마’라 불리는 카모디 부인이다.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그녀의 사망 장면에서 환호했다고 알려져있다. [미스트 영화 장면]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카모디 부인은 기독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녀는 기독교적 표현으로 말을 할 뿐, 행동만 보자면 사이비 광신도와 다를 바 없다. 마트에 모인 생존자들에게 불안과 불신을 퍼트리고 서서히 그들을 장악해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하는 행동과 유사해 보인다. 짜증나는 행동을 일삼는 그녀가 죽는 장면이 나오자 몇몇 극장에서 실제로 관객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다.

한 팬은 자자 빙크스가 너무 싫은 나머지 이런 팬아트를 그리기도. [구글 이미지 캡쳐]

스타워즈 시리즈에도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1(1999)’의 ‘자자 빙크스’다. 그는 양서류인간 ‘건간(Gungan)’의 일원으로,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사고를 치는 데다 징그러운 외모 탓에 팬들로부터 ‘시리즈 사상 최고의 악역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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