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은 바로 젊은 계층이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 똘스토이 <악마> 중에서

[공감신문] 최근 한 3주 동안은 정말 글로벌하게 논 것 같다. 단지 내가 저번 주에 외국에 다녀와서 그런 게 아니다. 다녀오기 바로 직전까지도 그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쿄에 공연 있었다가 잠시 한국에 들러 짧은 관광을 하고 간 네덜란드 가수 친구, 한국에 내한 공연 왔던 친구들, 방콕여행에서 만난 친구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인도, 일본, 중국 등 거의 10개국에 걸쳐진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아침 비행기로 인천에 들어와,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내 침대에 앉아 나를 베어 문 이불을 덮고 글을 쓰는 지금, 이 기분 역시 비정상, 회담 적이랄까.

사실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면 영어를 쓰니까 난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장난삼아 백인 친구에게 ‘오빠’라는 단어를 가르쳐서 오빠오빠할 때도 있고, 정말 친한 게이 친구들과는 이름 대신 ‘허니(honey)’ 혹은 ‘스윗하트(sweetheart)’라고 부를 때도 있다만. 거기엔 윗사람 아랫사람 느낌보다는 그냥 정말 ‘JUST 호칭’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 외국 친구들의 나이가 꽤 있다는 것이다(!). 우린 물리적 거리상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만나면 뜨거운 포옹을 한 뒤, 하얗게 불태우며 논다. 서로에게 잊지 못 할 추억(?)을 선사한다. 우리의 밤이 당신의 낮보다 열정적이며 아름답더라. 그게 너무도 즐겁고 화려하고 미련이 오래가는 기억들이라, 나는 방콕에 갈 때마다 K언니를 몇 년 째 만나고 있으며 네덜란드 출신 가수 바우터 하멜(Wouter hamel)과는 벌써 7년째 내한공연 뒤풀이(?)를 함께 하고 있다.
친한 언니 오빠가 방콕을 잘 알아서, 하멜이 유명해서 같이 노는 게 아니다. 진짜 그들과 있으면 멋진 시간이 된다. 왜? 그들은 놀 줄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콕에 가서 알게 된 오빠(?)가 있다. 아이리쉬 출신의 영국 오빠. 우연치 않게 친한 언니와 아는 사이라 함께 파티를 즐기게 된 거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오픈한지 겨우 두 달되어서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클럽부터 제일 핫한 클럽까지, 그는 모르는 게 없었다. 단지 위치나 분위기만 안다고 아는 게 아니지. 이 클럽은 무슨 요일 가야 재밌고, (클럽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방콕에서) 오늘은 어딜 가야 핫하고, 거긴 어떻고 이런 애들이 오고... 그는 한 마디로 ‘Party professional’이었다! 그는 아이리쉬 출신답게(!) 술도 엄청 잘 마시고 통도 컸다. 그의 테이블 주변엔 각국의 여자들이 즐비했다. 물론 모두 그의 친구들이다. 두 달에 한번쯤 방콕에 들른다는 그는, 내가 본 어느 방콕 남자들보다 더욱 ‘로컬(local)’답게 편안하고 자유분방하게 즐기고, 중국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돈을 쓰며, UMF KOREA 헤드라이너들 옆 동네 사람처럼 EDM을 들었다.
난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말 밤에 저 오빠의 동선을 따라야 한다는 건 가늠할 수 있었다. 난 여행을 왔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쓰고 싶었고, 더 나아가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나에게 이런 ‘나이 불문’의 친구가 있다. 그를 만나는 것 역시 난 한잔 할 거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쓰고 싶고,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bar중 한 곳의 사장님이 내 술친구이시다. 사실 그는 단지 바 사장님만은 아니다. 실력과 개성이 출중한 아티스트들을 매니지먼트 하는 <플럭서스 뮤직>이라는 회사의 김진석 ‘대표님’이다. 그 역시 기타리스트 출신이며, 그 바에 놓인 새우깡처럼 캐주얼하게 툭툭 말을 던지시지만- 사실 그 내용들은 낮 시간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 라디오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10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사님’이셨고, ‘대표님’이 된 후에도 난 계속 이사님이라 한다. 내가 외국 친구들을 대할 때처럼, ‘JUST 호칭’인 것이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나이 차이를 떠나 ‘노는 것’에 있어서 친구 사이다. 서로 감각적으로 교류한다.

나보다 좀 먼저 태어난 나의 친구들은, 나보다 경험이 많다. 그리고 먼저 벌어놔서, 혹은 돈을 버는 방법을 더 많이 알아서 지갑에 여유가 있다. 돈과 시간이 있었기에 자기 취향이 뭔지 더 잘 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모두가 경험이 많은 건 아니다. 정말 나이만 먹고 재미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재미가 없으니 호기심이 없어 시도조차 안하는 거다. 그저 나같이 어린 친구와 함께 자리를 하게 될 때면, 재미도 없고 센스도 없는 야한 농담까지 던지는 최악의 상황도 생긴다. 맙소사, 미안하지만 난 그런 자리에서 정말 표정관리가 안 된다. 해주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세상에, 정말 나이를 똥구녕으로 쳐드셨나봐요!”

예전에는 항상 ‘지금 나이가 제일’ 재미있겠지,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내 주변을 보자면 나이가 먹을수록 재밌어지더라. 새로운 것들은 계속 생겨나고 문화는 재창조에 재창조를 반복한다. 시대는 항상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시장구조를 가진다. 힙플레이스라면 뭐든 따르는 젊은이들처럼, 그들은 마구잡이로 휩쓸리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 주변에 내가 친구라고 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인생 재미없네, 뭐 있냐.’라면서 번 돈을 다 룸싸롱에 꼴아 박고 동남아에 골프 핑계로 가서 돈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하는 리얼 ‘아재’들은 없다는 거다. 아, 물론 저런 재미를 즐길 순 있지만 그들에게 그 비중이 아주 작거나 ‘0’에 가깝다는 것.

(영화 <그레이트 뷰티> 중에서

나이 많은 친구들은 오히려 나보다 자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부류들이다. 일이나 여가,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다. 아 물론, 내 친구들 같은 어른의 부류.

똘스토이의 소설 <악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노년층이 매우 보수적이고,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주의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결코 공정하거나 옳지 못하다. 통상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은 바로 젊은 계층이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늘 보아 왔던 삶의 방식을 자기 삶의 전형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었다.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다. 젊은 층들은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열렬히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정적으로 즐기고자 한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오히려 이걸 우리가 ‘꼰대’라고 말할 수도 있는 나이의 사람들 중에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즉 우리한테서 더욱 꼰대가 많다, 이 말이다.

(레프 똘스토이)

주변에 좀 ‘딥(deep)한’ 친구들이 있다. 남다른 음악과 영화, 책을 읽고 물론 생각하는 방향도 보편적이진 않다. 이런 게 쌓이고 쌓여 만드는 그 사람의 아우라가 있다. 뭐랄까, 똘스토이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 부류들인 것이다. 그들은 젊은 꼰대들과는 별개로 삶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디테일하게 생각해낼 수 있다. 물론 나도,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부류 중 하나다. 알베르 까뮈처럼 ‘자살을 할까, 커피를 한잔 할까’같은 멋있는 말은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수도 없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대학 나와서 취업해서 여자는 서른 전후에 기반이 탄탄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게 잘사는 거라 말하는 여자 사람을 만나면 정말 물 없이 고구마 먹은 듯 숨이 콱 막히는 것 같다. 그냥 대화를 안할란다.

어쩌면 젊을 때는 돈이 없고 취향이 불분명해서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모를지도. YOLO? You Only Live One, 한번 사는 인생이니 즐겨야 된다고? 분명 그러하다. 정말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어떻게 살아야할지 치열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하지 않을까. 오히려 나이가 먹고 돈이 더 생기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한번 뿐인 인생을 정말 효율적으로 즐기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똘스토이의 말처럼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떠한 사건들, 이를테면 갑자기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실패,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이별, 이혼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가 아니라 스스로 말이다. 환경에 끌려 다니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 거다. 인생을 즐기는 거? 인스타그램에 ‘#힐링’같은 말 같지도 않은 태그 달지도 말아라, 정말 힐링한 게 아니면!
젊은 우리들은 자신을 소모하며 즐거운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아니 정말 즐기는 사람은 표정부터가 다르다. 인증샷을 위한 게 아니라고.
#대기업 #호텔에서의 결혼 #1등 신랑감 서울 어느 동네 #아파트 #보유 비행기는 #퍼스트클래스 ...
글쎄, 그게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그걸 위해 당신이 포기한 것들과 놓고 봤을 때, 인생을 걸고 정당한 거래였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인생도 인증샷을 위한 인생이 아닐 텐데.
고민하고 생각하자, 치열하게. 나는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혼자서 답을 찾기 어렵다면 철학책을 읽거나 인생을 재미지게 사는 것 같은 나이 많은 친구를 찾아가자. 아이리쉬 오빠가 방콕 클럽에 빠삭한 것처럼, 나이 많은 친구들도 인생을 즐기는 일엔 빠삭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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