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날아오는 주먹을 슬쩍 피하고, 빈 틈을 타 정강이를 걷어찬다. 자세가 무너지는 상대방에게 그대로 달려들어 테이크 다운(Take Down)을 걸고, 상대의 팔을 비틀어 꺾는다. 격투기 경기 중계를 지켜보고 있으면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원시적인 무언가가 고개를 든다.

폭력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나쁜 행동이다. 하지만 링 위에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해진 규칙 내에서 신체능력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은 단순하고 화끈하다. ‘격투’는 많은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무언가가 있다.

격투기 경기는 정해진 규칙 내에서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단순하고 화끈한 스포츠다. [플리커 이미지 캡쳐]

그러나 격투기 경기는 우리의 숨겨진 야수성을 대리만족시켜줄 뿐, 실제로 링 위에 올랐다가는 죽도록 얻어터지거나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기자나 여러분이 UFC 링에 올랐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결과는 몇 ‘라운드’가 아니라 몇 ‘초’만에 나올지 모른다.

격투기 경기에서의 뜨거운 결투를 대리 체험해보고 싶다면? 격투기 게임을 추천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웹사이트 캡쳐]

그래도 주먹과 주먹을 맞대며 남자의 승부를 가려보고 싶다면? 그런 이들을 위한 ‘격투 게임’을 추천한다. 아니, 비웃지 않길 바란다. 격투 게임은 경쟁이나 대결 콘셉트의 게임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게 실력에만 좌우되는 게임 장르다. 정말이다!

 

■ 격투게임은 순수하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이나 팀 대항전 MOBA 장르, 심지어 RPG 장르에서도 플레이어는 경쟁을 벌인다.

다이아로 갈 실력인 여러분이 브론즈인 이유는 모두 팀원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암튼 팀원 탓임.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장면]

하지만 이 게임들은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다양하다. 특히 LOL이나 오버워치 등 최근 흥행하는 MOBA 장르 게임들을 보자. ‘트롤’ 행위를 일삼는 팀원 때문에 어이없이 패배한 경험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스타크래프트에서 익숙하지 않은 맵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GG’를 쳐본 경험은?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가 갈리는 격투 게임. 캐릭빨? 같은 캐릭터를 택하면 그 핑계도 사라진다. [철권 게임 장면]

이와 달리 격투 게임은 대부분 1대1로 벌어지는 조작과 판단력, 기술의 승부다. 적이 고개를 숙이고 파고드는 찰나의 순간, 나락쓸기(하단 공격기)가 들어올지, 혹은 그게 풍신 스텝(상·중단 공격기의 선행동작)일지를 판단해야 한다. 실로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말하자면 두 무사가 생명을 걸고 일섬(一閃)으로 승부를 겨루는 그것을 느끼게 해준다.

 

■ 격투게임은 패널티가 없다

MMORPG에서 격투 게임에서도 PvP를 통해 이 스릴을 느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게임 장르 자체가 성장이나 장비 등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템빨’이나 ‘렙빨’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컨빨’도 물론 중요하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부른 만렙 '엄마·아빠'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었던 가시덤불 골짜기와 무법항. [와우 게임 장면 / 와우위키 웹사이트 캡쳐]

기자가 한창 ‘호드의 용사’였던 시절, 상대 진영 플레이어의 ‘뒷치기’에 몇 차례 죽고 나면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부터 고민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계속해서 죽으니 장비가 망가지고, 때문에 재도전이 불리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PvP로 인한 죽음에는 장비 내구도 감소 패널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 패배주의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동전을 넣으라고 눈빛 레이저를 쏘는 가일(구 규리).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장면]

그러나 격투게임은 몇 차례 패배해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언제든 Continue? 라는 카운트다운 메시지에 재도전을 선언할 수 있다. 그것도 아무 패널티 없이! 물론 아케이드에서는 동전을 넣어야 하지만, 적어도 패배로 인해 무기나 경험치를 잃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 격투게임은 뜨거웠다, 한때는

격투게임 팬들 사이에는 지금의 게임 형태를 정립한 것이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장면 / 유튜브 캡쳐]

대전 액션 게임, 격투 게임은 게임 역사의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어디까지를 이 장르로 구분해야 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화면 상단에 양 플레이어의 체력 게이지가 나오고 주먹이나 발차기로 승부를 겨루는 현재 방식의 대전 액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가 정립하고 대중화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P는? 쇼-류-켄!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장면 / 유튜브 캡쳐]

스트리트 파이터는 각각 개성 넘치는 캐릭터, 특수 커맨드 입력으로 시전 되는 ‘기술’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매력을 어필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이후, 90년대 초반부터는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대전 액션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며 게임계 붐을 이뤘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서서히 유저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 드높은 진입장벽에 뉴비들은 떠나가고

기존의 유저들은 갈수록 연습을 거듭하며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 유입되는 ‘뉴비’들은 그런 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게임이 되겠는가?

스틱을 처음 잡아본 뉴비들은 어 어 하는 사이 고수들에게 두들겨맞고 패하기 일쑤였다. [KOF 게임 장면 / 앱스토어 캡쳐]

오락실에서 뉴비들이 조이스틱을 잡으면, 그 오락실을 터로 하고 있던 고수들이 옆 자리(혹은 건너편 자리)에 슬쩍 앉아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며 뉴비들을 끝장내곤 했다. 그렇게 지고 나서 들끓는 승부욕도 한 두 판일 뿐, 패배가 계속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어느새 격투게임은 새로운 유저 진입 없이 기존의 유저들만 즐기는 게임이 돼 버렸다. [플리커 이미지 캡쳐]

그리고 잔뜩 짜증이 난 패자는 오락실을 떠난다. 게임을 재밌자고 하는 건데, 지기만 하는 것이 재밌을 리가 없었다. 연습? 물론 컴퓨터를 상대로 맹연습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실제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연습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결국 격투 게임은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렸다. 찾는 이가 적어지자, 게임 개발사들도 인기가 사그라든 이 장르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1999년 이후에는 신작 격투게임을 찾기 힘들만큼 줄어들었다. 또한 동네마다 있었던 오락실의 붕괴도 격투게임의 몰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다시금 서서히 달아오르는 격투게임

그래픽, 시스템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던 철권의 네번째 작품. [철권 위키 웹사이트 캡쳐]

이러한 격투게임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킹 오브 파이터즈(KOF)’ 등 이름난 시리즈들은 계속해서 맥을 이어왔다. 전에 비해 다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이 게임들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변화와 진화의 방향을 모색했다. 그 결과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도 다수 존재하며, 과거와 비교해 괄목할만큼 큰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진일보한 철권 최신작의 그래픽. [철권 웹사이트 캡쳐]

그런 시리즈들이 최근 비슷한 시기에 신작을 출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3D 격투 게임 ‘철권’은 오랜만에 후속작 ‘철권7’의 PC버전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위상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KOF 시리즈도 ‘XIV(14)’라는 정식 넘버링으로 PC버전이 출시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달에는 배트맨·슈퍼맨을 비롯한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이 대거 등장하는 대전 격투 게임 ‘인저스티스2’가 출시돼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격투 게임들이 다시금 등장하면서, 오락실에서의 그것과 같은 조작감을 선사하는 조이스틱 제품들이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 격투게임을 하다 이런 장면이 연출될 우려도 적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속속 쏟아지는 격투게임들을 보고있자면 반갑고 기쁘다. 특히 요즘은 오락실을 가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다른 이들과 겨뤄볼 수도 있다고 하니 ‘현실PK’가 벌어질 우려도 적다. 기자 역시 방과 후 오락실을 꾸준히 출근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잘 하는 편에 속했는데,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탈탈 털리고 울상을 지으려나?

 

■ 독특한 콘셉트의 격투게임들

앞서 소개했던 이름난 격투게임 외에도, 다양한 콘셉트의 격투게임들이 나와 있다. 그 중 주목해볼만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 포켄(출시예정)

포켓몬 격투 게임이라니… [폿켄 게임 장면 / 유튜브 캡쳐]

포켓몬과 철권(Tekken, 일칭 텟켄)의 콜라보. 폿권이라고도 불린다. 귀여운 포켓몬들과 철권의 조합은 의외로 절묘하다. 단순하고 심플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기존 포켓몬스터 게임의 전투에 비해 대단히 박진감 넘칠 것으로 기대된다.

- 사이언스 컴뱃(2016)

퀴리부인:받아랏! 라듐-파! [사이언스 컴뱃 게임 장면]

아인슈타인, 뉴턴, 스티븐 호킹 등 역사 속 과학자들의 격투를 다룬 게임이다. 볼륨은 작은 편에 속하나, 픽셀로 표현된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과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스킬 등이 기발하다. 참고로 끝판 왕은 ‘신’이라고… 과연 종교와 과학은 대척관계인 것일까?

 

- 동동 네버다이(2009)

아마도 모든 캐릭터가 게임 제작자의 주변인물인듯 하다. [동동 네버다이 게임 장면]

이 괴랄한 제목의 게임은 중국의 게임학과 대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사같은 그래픽의 격투가 아니라… 진짜 실사를 사용했다! 다소 어설프고 병맛에 가깝지만 패러디나 독특한 콘셉트의 캐릭터들이 볼만하다.

 

■ 격투는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서만

종합격투기 UFC 경기장에 몰려든 관객들. [위키미디아 웹사이트 캡쳐]

혹자는 인간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고 하는데, 격투기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의 환호성을 듣고 있으면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성 묘사를 극대화한 게임도 존재한다. [모탈컴뱃 게임 장면]

특히 게임계에서 상업성을 위해 ‘폭력’에 대한 묘사를 결코 배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일전에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에는 크든 작든 폭력에 대한 묘사가 담겨있다. 이 씁쓸한 팩트는 인간이 대리 체험을 통해서나마 폭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겠다.

격투 게임은 '게임이니까 용납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플리커 이미지 캡쳐]

‘폭력’이나 ‘격투’라는 키워드로 조금 과격해보일 수 있는 포스트를 작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이를 실천하라는 내용은 아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다짜고짜 폭행을 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다. 그렇기에, 만약 아주 분노가 치미는 일이 있더라도 격투 게임을 통해서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바란다. 친구를 때리면 나쁜 어린이다. 어른은 뭐냐고? 쇠고랑이지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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