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한반도에서 500년, 그 찬란하고 한 많은 세월을 겪었던 나라 조선. 조선은 우리의 얼과 문화에 아직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은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만큼 조선을 다스린 임금들에게도 남다른 취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감포스팅팀이 조선 왕들의 이색 취미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 위화도 회군의 ‘태조 이성계’, 칼이 아닌 꽃을 잡다? 

태조 이성계 어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무장이었던 그에게 어울리는 취미는 활과 사냥 같은 것들이다. 이성계는 사냥을 즐겼었다. 연산군 등 수많은 왕들의 취미가 사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계에게는 하나의 이색 취미가 있었다. 바로 꽃 가꾸기다. 이성계가 꽃에 빠진 계기가 있었다. 

나라 안팎의 사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태조 이성계는 그의 마음을 헤아린 김사행의 권유로 팔각정으로 향하여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된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유동근이 연기한 이성계

그날, 이성계는 마음이 편안해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이후 그는 김사행에게 팔각정을 수리하도록 해 어여쁜 화원으로 꾸미고 꽃을 가꾸었다. 

이성계는 조선의 국교를 유교로 삼으며 불교를 탄압했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한많은 이승을 떠나 극락왕생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수국으로 장식된 꽃상여와 함께였다. 

 

■ ‘정종’의 장수비결은 좋은 부부관계와 격구

정종은 57세까지 장수한 임금이다. 당시 조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0대에 그쳤다. 스트레스나 질병 때문에 일찍 생을 마감했던 왕들에 비하면 정종은 어마어마하게 오래 산 임금이다. 

조선 제2대 왕 정종

정종은 우선 정실부인이었던 정안왕후와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꽤 중요하다. 그에게 애정이 좋고 됨됨이가 괜찮은 부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정신적 위안이 되었겠는가! 

두 사람은 나라 정치 일을 의논할 정도로 가까웠으며 그만큼 정종이 부인을 많이 믿고 의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종을 소재로 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

또 정종은 격구를 즐겼다. 격구란 말을 탄 채로 공을 치는 상당히 격한 운동중 하나다. 정종은 40대 나이에 재위했다. 그는 젊은 시절 무관을 지냈던 인물로 워낙 운동 신경이 뛰어났으며, 그때부터 격구로 건강을 챙겨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냥이나 온천으로 건강을 챙겼다.

 

■ 서양 문물 수집이 취미였던 ‘효종’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 그는 인조반정 이후 왕자 책봉이 되고 1619년에 재위했다. 효종은 병자호란 당시, 형 소현세자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있었다.

효종의 어진

효종은 그 곳에서 청나라의 문물과 베이징에 도착한 천주교 선교사들로부터 새로운 서양 문물과 지식을 접하게 된다. 이후 효종은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다양한 문물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게 된다.

 

■ 알고 보면 타고난 시인의 감수성 ‘연산군’

이전과 달리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연산군. 그의 복잡한 가정사는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다. 그의 불멸의 연인인 장녹수까지도.

영화 <간신>에서 김강우가 연기한 연산군

그는 여러 문학,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그려졌다시피 음악은 물론이요, 모든 예술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에 능했다. 

연산군은 약 백편이 넘는 시를 남겼을 만큼 시 짓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시의 내용은 대부분 간신이나 조정 내부에 대한 답답함이 많았다. 아마도 표출하지 못하는 뜨거운 자기 속내를 시를 통해 풀어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연산군은 약 백편이 넘는 시를 남겼을 만큼 시 짓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연산 12년(1506) 2월 25일 작성한 시

가벼이 대답함은 깊게 믿음을 알고
사사로이 말함은 친함이 두터움을 느낄 수 있다.
호기를 내는 것은 천성을 따른 것이고
미친 짓 하는 것은 천진으로 부터 온다.
군신이 해학함을 말하지 말라.
나무라고 비웃음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부생을 누가 애석하지 않으리.
봄을 핑계하여 술 취하는 것으로 어찌 만족하랴.

輕對知深信, 私言感厚親
發豪從本性, 狂作自天眞 
莫言君臣謔, 譏啁亂國人
浮生誰不惜, 何厭醉憑春

 

■ 고종 황제, 커피 한잔 하실까요?

고종황제는 근심이 많았던 임금이다. 흥선대원군인 아버지와 명성황후인 부인이 사이가 안 좋은데다가 밖으로는 수많은 곳에서 조선 땅을 노리고 있었다. 

고종황제는 근심이 많았던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노서아(러시아)와도 교류가 있었고 역관을 파견하기도 했던 고종은 커피(가비)를 알게 된다. 당시 커피는 어둡고 진한 향기 때문에, 독약을 타서 독살하는데 쓰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나라의 왕이 이러한 커피를 즐긴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맹수들 사이에 놓인 연약한 사냥감 같은 조선의 왕에게 커피는 상당히 위험한 취미 생활이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영화 <가비>에서 커피를 즐기는 고종의 모습

그 밖에도 태종, 세종, 광해군, 정조는 독서를 즐겼으며, 성종과 명종, 철종은 오락을 즐겼다고 한다. 

한 나라의 정사를 돌보는데 바빴던 이들도 이렇듯 취미생활을 겸했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그랬기에 국사를 돌보는데 더욱 효율이 올라갔을 지도 모른다.

꽉 막힌 유교 국가였을 줄만 알았는데, 왕들의 이색 취미를 보니 무언가 한발자국 친근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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