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격권·건강권 보호 방안도 논의

[공감신문] 김대환 기자=일부의 블랙컨슈머 때문에 기업뿐만 아니라 선량한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금융권이 직접 나서서 블랙컨슈머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메뉴얼과 감정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금융 분야 악덕소비자 현황과 대처 방안 토론회’(더불어민주당 유동수 국회의원 개최)가 열렸다.

금융감독위원회(금감원) 민원 및 분쟁신청 현황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권리의식 신장으로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 및 분쟁 신청 건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이에 비례해서 블랙컨슈머의 피해 또한 증가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민원 및 분쟁 신청 건수는 2015년 9만6239건에서 2018년 11만 1215건으로 크게 늘었다.

금감원은 블랙컨슈머들의 주요 요구사항은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사건에 대한 구제 요구 ▲형사 고소한 금융회사나 금감원 직원이 무혐의 처분 받은 사실에 대한 부당함 호소 등 금감원의 권한 밖의 사안에 대한 해결요구 ▲법원 판결사항은 번복할 수 없어 도움을 드릴 수가 없는 데 막무가내로 금감원이 나서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는 요청 등이라고 밝혔다.

이현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1국 국장은 “블랙컨슈머들은 구체적인 입증자료 없이 무리하게 민원, 분쟁 해결 요구를 반복하며 담당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며 “민원, 분쟁처리 효율성을 크게 저하시키고 다른 국민들의 민원, 분쟁처리까지도 지연되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1국 국장 / 김대환 기자

이에 따라 금감원은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지난 2016년 4월부터 특별민원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 민원 심의위원회는 외부전문가 등이 참여해 악성민원으로 판단된 해당 민원을 일반 민원과 구분해 전담 조직에서 전담,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 10차례 회의를 개최하고 총 17명을 특별민원인으로 선정했으며, 특별민원인으로 선정된 이후에도 욕설, 소란행위를 반복한 자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고발 등 엄정조치를 취한다.

특히, 금감원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민원 및 분쟁 신청인으로부터 금감원 직원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현열 국장은 “통화중 민원 및 분쟁 신청인이 욕설 등 언어폭력을 하는 경우에는 통화를 종료할 수 있음을 알리고, 그럼에도 언어폭력이 계속되면 신속하게 통화를 종료할 수 있는 내부 기준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대응에 대비, 담당자 자리에 녹취기를 설치하고 면담장소에 CCTV를 설치했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특이행동 신청인 면담 시에는 방호인력이 대기하는 등 민원 및 분쟁 신청인을 상대하는 금감원 직원을 적극 보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박사는 “사업자인 금융계가 고객이 고객 같지 않으면 대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잘못 됐다”며 “블랙컨슈머는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정부와 금융회사가 나서서 소비자의 문제행동에 대한 방안을 세워야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소비자분쟁조정 성립률은 금융 분야 35.7%, 보험 57.1%에 불과하다.

백병성 박사는 “금융회사의 경우 조금이라도 애매한 경우에는 관련 약관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일단 소송을 제기함으로서 소비자의 반발을 키운다. 금융관련 분쟁조정성립율이 저조하다는 목소가 나온다”며 “이런 것이 블랙컨슈머가 등장하기 좋은 자양분이 된다”고 비판했다.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박사 / 김대환 기자

특히, 백 박사는 “정부는 소비자의 문제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해야하며,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잘못에 대해서는 유야무야하고 소비자의 피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보상시스템이 갖추지 못하다면 소비자는 직접 기업을 응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격권·건강권 보호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기존 노동관계가 2자 관계를 전제로 하고 사용자의 의무 준수를 중심으로 한 규율체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관계법령에서 근로자의 인격권 또는 건강권을 침해하는 블랙컨슈머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규정 체계를 찾기가 어렵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블랙컨슈머에게 근로자가 직접 책임 추궁이 어려워 민사법적으로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할 수밖에 없다”며 “중대한 인격권 침해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커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에도 블랙컨슈머의 불법 책임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최근 블랙컨슈머의 악의적 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적극적 조치, 근로자의 조치에 대한 사용자의 지원 등과 관련된 입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 내용은 ▲남녀고용평등법상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 ▲금융 5법상 고객응대직원에 대한 보호조치의무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 장해 예방 조치 규정 등 직접적인 가해행위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할 사용자의 의무 등이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김대환 기자

한인상 조사관은 “은행법을 비롯한 금융 5법의 고객응대직원에 대한 보호 조치 의무 조항이 시행된지 약 3년이 지났다. 최근 관련 규정이 사업장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평가했으며, 평가 결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있었다”며 “현행 규정의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생겼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악성소비자 대응 및 근로자 보호 시스템을 갖추려는 사용자 측의 의지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국가의 감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 조사관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 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부여되는 사업주의 ‘업무중단권’과 업무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업무중단 요구권’의 실효성에 대해 제고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자에 따라서는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업무중단권의 부여와 예방조치 이행청구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국회의원은 고객응대직원에 대한 보호조치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 현재 20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보호조치 외에도 업무의 일시적 중단, 전환 및 휴식시간 연장, 경고 및 응대거부, 질병 발생 시 금전 또는 휴직 지원 등의 근거를 추가적으로 마련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는 경우 고객에게 직원보호 관련 내용을 사전에 안내 ▲보호조치 미이행 시 부과되는 과태료의 상한액 현행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상향 등이다.

이에 대해 한 조사관은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바람직하나, 과태료 상향 수준의 적정성,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정합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