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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인간에게 없어선 안 될 생필품들의 탄생 이야기

[공감신문] 일상 속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발명은 ‘아!’하는 순간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건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과학자는 몇 년을 혹은 평생을 노력한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발명가의 손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몇 세기에 거쳐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물건이 완성된 것이다.

오늘 공감포스팅은 인간에게 없어선 안 될 생필품들의 탄생 이야기이다.

 

■ ‘비누’의 시작은 고기에서부터?

기원전 2800년경, 바빌로니아인이 비누를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데 인류가 고기를 불로 구워서 먹기 시작한 후, 기름과 재를 발견해 이를 비누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바빌론의 유물로 증명됐다. 비누와 유사한 재료를 담고 있는 진흙 통의 측면에 ‘기름과 재를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의 유명한 학자 플리니우스는 ‘자연사’에서 “비누는 갈리아인들이 만들어냈으며 비누를 이용해 윤기가 도는 붉은색 머릿결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의 기름과 재로 비누를 만든다. 특히 염소의 기름과 너도밤나무의 재가 비누 재료로 가장 좋다. 비누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액체 비누이고, 다른 하나는 고체 비누이다”라고 작성했다.

8세기에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올리브와 해초 기름을 사용, 비누를 생산했고 12세기에는 ‘천연 소다’를 이용해 새하얀 비누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됐다.

‘천연 소다’는 귀하고 비싸 대중화되지 못하자, 1775년 당시 프랑스 루이 16세는 ‘인공 소다’를 만드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는 공모를 내걸었다.

[Wikimedia]

그 후, 1789년. 과학자 르블랑이 ‘르블랑 공법’으로 ‘인공 소다’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만들어내는 만큼 많은 오염물질을 만들어 내 ‘인공 소다’를 만드는 노동자의 이가 부식되고 사망하기도 했다. 이에 사람에게 유해한 ‘염화수소 기체’를 밀봉해 수송하고, 공장의 굴뚝을 높이 세워 오염 문제가 조금 해소되자 비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르블랑 공법’은 당시 유일하게 ‘인공 소다’를 만드는 비법으로 당시 비누, 섬유, 유리, 제지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1863년 벨기에의 공업화학자가 오염물질을 생성하지 않고 소금과 석회석으로 소다를 개발하는 ‘암모니아 소다법’을 만들어 ‘르블랑 공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 수술실의 혁신, ‘마취제’의 발명

1세기 그리스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가 처음으로 마취를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환자에게 만드라고라의 뿌리로 만든 술을 마시게 한 후 수술을 했는데, 그때 환자가 통증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취제가 등장하기 전, 수술 시 환각이나 진통 효과를 지닌 약초를 사용하곤 했다. 대마, 아편, 히오시아민, 만드라고라 등이 쓰였는데 환자에 따라 효과가 달라 환자들의 죽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외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최대한 술을 많이 마시게 하거나, 최면을 걸어놓고 수술을 시도했다.

1772년, 영국의 기체학을 이끌었던 프리스틀리가 다양한 기체를 발견했는데 그중 아산화질소가 있었다. 1799년 과학자 데이비가 아산화질소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알아냈으며, 1818년 과학자 패러데이가 황화에테르도 아산화질소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발표했다.

아산화질소와 에테르는 ‘웃음 가스 파티’라는 유흥이나 오락을 위한 모임에 사용됐다. 현재의 마약처럼 환각 상태에 빠져 타박상을 입는 경우도 발생했다.

1844년, 치과의사 ‘웰스’가 웃음 가스 파티에 참석했다. 가스를 흡입하며 파티를 즐기던 웰스는 가스 효과가 사라지고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났으나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웰스는 자신의 사랑니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 성공했고 치과 수술에 아산화질소를 사용했다. 그 후 웰스의 제자 모턴은 에테르를 사용해 수술에 성공했다.

1847년 산부인과 의사 심슨은 환자에게 에테르를 사용해 마취했으나 기관지와 위장에 자극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클로로포름’ 마취제를 사용해 산부인과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 정확한 시간 확인을 위한 발명, ‘시계’

[Wikimedia]

해시계와 물시계가 시계의 첫 사용으로 예상되나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고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집트에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43년 해시계 '앙부일구'와 '자격루'가 만들어졌다.

[Wikimedia]

서양식 기계시계의 발명 시기도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탈리아 시인인 단테가 1320년 완성한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시계에 대해 얘기했으며 파도바 대학의 천문학 교수인 지오반니도 1364년 시계 관련 저술을 남겼다.

이런 자료를 보고 많은 역사가는 13세기 후반 기계식 시계의 첫 등장 후 14세기에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시계탑’이 설치되면서 유럽 전역에 확산됐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시계의 대중화는 회중시계, 손목시계가 크게 기여했다. 공장에 시계가 도입되면서 작업이 생체 리듬이 아닌 시계의 시간에 맞춰 진행됐고, 공장주가 시계를 독점해 시간을 속여 작업을 많이 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후 노동자들이 정확한 시간 확인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작업시간과 작업량을 체크하는 표를 도입해 추가 노동시간에 대해 수당을 요구하게 됐다.

시계의 발전은 계속 되어 1918년 미국의 웨런이 교류 전기를 이용해 최초의 전기 시계를 만들었다. 1927년에는 미국 벨연구소의 매리슨이 수정에 전압을 걸어주면 발진한다는 원리를 이용해 하루 1/1000 오차밖에 나지 않는 시계를 제작했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후 수정 발진자를 탑재한 세계 최초 손목시계를 일본 '세이코'가 내놓으면서 손목시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 극장 장치로 시작된 ‘승강기’

[Wikimedia]

기원전 236년 아르키메데스는 도르래에 줄을 매달아 잡아당기는 나름의 화물, 승객용 승강기를 만들었다. 로마 시대 극장에서는 관객을 놀라게 할 목적으로 연기자를 무대 위로 들어 올리기 위해 일종의 체어리프트(chair lift)를 사용했다.

1405년에는 군사 기술자 콘라트 키저가 밧줄과 바퀴를 활용, 사람을 이동시키는 승강기를 설계했다. 그 후 18세기 프랑스 루이 15세가 ‘flying chair’을 사용했는데 하인들이 줄을 잡아당기면 자신이 반대쪽 줄에 매달린 의자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당시 부유층의 저택에는 지하실에 위치한 부엌에서 식사 장소인 홀까지 음식을 전송하는 승강기가 있기도 했다.

1834년 독일 광산 감독관인 알베르트가 와이어 로프를 발견해 승강기가 급 발전했다. 덕분에 무거운 광석을 운반하는 바구니를 깊은 곳에서부터 들어 올릴 수 있었다.

1845년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톰슨은 수압을 이용한 승강기를 발명했다. 긴 원통 아래에 물을 채운 후 펌프로 물을 밀어 넣으면 그 압력으로 원통에 윗부분에 설치된 승강기가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물을 빼는 방식이었다.

당시엔 승강기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어 주로 화물에만 이용했다. 승객용 승강기는 1853년 오티스가 낙하방지를 고안하며 대중화가 시작됐다.

침대 회사에서 일하던 오티스는 승강기의 상업적 의미를 간파해 1853년 직장을 그만두고 오티스 엘리베이터 회사를 설립했다. 과거 철도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던 오티스는 안전 브레이크를 만든 경험을 살려 안전 승강기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이에 1853년 새로운 승강기를 만든 후, 안전성을 입증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직접 승강기에 올랐다. 그 후 안전함이 증명돼 3년 뒤 승강기가 실제로 보급됐다.

이어 1880년 독일의 베르너 지멘스가 독일의 베르너 지맨스가 전기모터 승강기를 개발, 1889년에는 최초의 전동식 승강기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 양 한 마리에서 나무로, ‘종이’의 발전

종이의 영어명인 paper는 papyrus가 어원이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나일 강 변에서 자생하던 수초로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사람들이 껍질을 벗겨내 속을 찢은 후 엮여서 말려 매끄럽게 해 원시적 기록 매체를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이래 9세기경까지 기록용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이집트 왕이 파피루스의 유출을 금해 유럽에서는 사용하지 못했다.

유럽인들은 양이나 송아지 가죽을 깨끗이 씻은 후 완전히 털을 깎아서 만들었다. 파피루스보다 만들기 편했으나 양피지 한 장을 만드는데 새끼 양 한 마리가 필요해 값이 많이 비쌌다.

종이는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나 그 기록이 확실하지 않다. 후한의 채륜이 105년에 종이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미 기원전 50년경 마를 주성분으로 하는 종이인 마지가 이미 사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Wikimedia]

채륜은 종이를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닌 기존의 마에 여러 식물섬유를 섞어 종이를 새롭게 개량한 인물로 보고 있다. 채륜의 종이 개량 이후 목판 인쇄술도 등장해 중국은 15세기까지 세계 어떤 나라보다 많은 인쇄 서적을 보유했다.

유럽에서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마 조각이나 면 넝마와 같은 원료를 두들겨 풀어 종이를 만드는 기계 ‘홀랜더’를 발명해 종이 생산의 기계화가 가능해졌다. 19세기에는 동양에도 서양식 제지소가 설립됐다.

아이디어에 아이디어를 붙여가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 완성됐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도 발전 중이다.

많은 이들의 생활을 편리해 주게 만드는 발견 혹은 발명. 지금도 머리를 싸매고 있을 여러 발명가, 과학자들 덕에 우리의 내일은 더 편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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