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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어른이들의 추억 속 ‘셀렙’들

[공감신문] 80년대, 90년대 초반쯤 태어난 이들은 지금쯤 20대를 지나 빠른 속도로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터다.

다른 모든 이들을 대변할 수는 없기에 기자의 개인적인 감상부터 말해보겠다. 우선, 1988년생인 기자는 올해로 30살, 만으로 29살이 됐다. 혹자는 나이 앞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것이 싫고 두렵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자는 철이 덜 들어서일까 29살이건 30살이건 그리 다른 뭔가가 와 닿거나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철딱서니 없는 기자도 어느덧 계란 한 판 나이가 됐다. 실감은 안 나지만 말이다.

30세. 생각해보면 기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도 10년이 뭐야, 20년은 훌쩍 지나버렸다. 기자보다 한참 인생 선배들이 보면 ‘애걔’ 할지 모르지만, 20년가량의 시간은 기자에게 ‘살아온 시간의 절반’을 넘는 셈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우리 세대에게 유년 시절 어느 날은 이제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남은 과거가 돼 버렸다.

우리도 어느덧 맥주 한잔 하면서 90년대 유년시절을 추억하는 나이가 됐다. 오늘은 그랬던 그때의 추억을 끄집어내보는 시간이다.

 

■ 그때 그 시절, 우리만의 셀렙들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우리는, 부모님 말씀만 잘 들으면 저절로 훌륭한 어른이 되는 줄로 알았다. “웃어른을 공경하자”, “부모님 말씀을 잘 듣자”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지침이었던 시절이다.

당시 동네 놀이터는 우리에게 사교의 장이었다. 물론 주택가 골목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우리는 아무리 무릎 밑에 때가 낄 때까지 ‘얼음땡’이며, ‘술래잡기’를 재밌게 하다가도 창문 밖으로 “저녁 먹으러 와라”는 엄마의 불호령 하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왔던 ‘착한 어린이’였다.

90년대 TV는 대부분 저렇게 투박하게 생겼었다.

그리고 손 씻으라는 잔소리에 비누칠도 안 하고 물만 쓱 묻힌 채 식탁 앞에 앉아, 우리는 TV를 켰다. 보통 4시 반쯤부터 7시 전까지는 TV 어디를 틀어도 우리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때 TV속에 나왔던 이들은, 당시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말이지만 우리에게 ‘셀렙’이었다. 신기한 손재주로 뭔가를 ‘짜잔’하고 만들어내는 아저씨, 어린이 프로에서 알록달록한 분장으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줬던 ‘형아’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연예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능욕의 달인, 밥 로스

어때요, 참 쉽죠? 라고 말하는 듯한 저 표정...

1995년부터 EBS에서 방영한 ‘그림을 그립시다’의 밥 로스 아저씨는 명대사 ‘어때요, 참 쉽죠?’라는 말로 우리를 숱하게 능욕해왔다. 유화 붓을 몇 번인가 슥슥 긋고, 덧칠하다보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되는데, 그 과정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다는 점이 바로 능욕 포인트 되겠다.

밥 로스 아저씨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탓인지 최근해는 ASMR 영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 캡쳐]

사실 그의 사후, 후일담에 의하면 밥 로스는 이런 대사를 시청자들이 그림에 재미를 느끼고, ‘어려워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쉽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게 만들려면, 우선 재미를 느끼게끔 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돋보인다.

밥 로스 아저씨의 아들도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쉽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소개했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 캡쳐]

우리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어렵고 복잡한 일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유지하면서 일을 하려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나 성공하기 위해서 이상의 동기가 필요하다. 기자는 그 동기 중 하나가 밥 로스 아저씨의 의도처럼 ‘재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웃음의 힘, 신바람 황수관 박사

'신바람 박사'라는 애칭으로 알려져있는 황수관 박사. [MBN 황금알 방송 장면 캡쳐]

지난 2012년 우리에게 ‘신바람 박사’로 알려진 황수관 이학박사(의학박사가 아니다)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황수관 박사는 90년대 후반, 우리의 어린 시절 일요일 오후를 책임지던 ‘호기심 천국’의 그 분이시다.

황수관 박사는 ‘신바람’이라는 별칭대로 웃음의 힘을 강조해왔다. 특히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 특유의 독특한 억양으로 우리에게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고, 건강과 관련된 많은 지식을 전해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자료조사 과정에서 다소 의외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바람'이라는 애칭과는 다르게, 그리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MBC 세바퀴 캡쳐]

황수관 박사의 성장 과정은 그리 유복하지만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4km 떨어진 중학교를 걸어서 등하교했다고 한다. 또한 의학에 뜻을 두고 청강생 신분으로 오랜 기간 졸업장도 나오지 않는 의대 수업을 청강한 끝에 연세대 의대 교수로 채용되기에 이른다.

황 박사가 성장해온 과정만을 보면 결코 신바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생전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자신의 별명을 그리 붙이고, 웃음을 전도하고 다녔던 것이다.

황수관 박사는 우리에게 '그래도 웃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구글 이미지 검색]

‘웃으면 복이 온다’고들 하지만, 웃을 일이 그리 많지만은 않은 팍팍한 요즘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웃어보는 건 어떨까. ‘신바람’ 까지는 못 되더라도, 행복한 기운을 주변에 전하면서 말이다. 황수관 박사처럼.

 

■ 색종이 아저씨, 김영만

몇 년 전 김영만 아저씨가 반가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화제가 됐었다.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방송 장면 캡쳐]

네티즌들 사이에 ‘금손’이라는 말이 있다.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척척 잘 만들어내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그리고 몇 년 전, 우리들에게는 ‘원조’격인 금손 아저씨가 오랜만에 TV에 등장했다. 바로 ‘색종이 아저씨’로 알려진, 김영만 아저씨다.

당시 김영만 아저씨의 인기는 지금으로 말하면 '초통령' 수준일 정도였다. [유튜브 영상 캡쳐]

십 수 년, 내지 20여 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아저씨는 여전히 금손이었다. 그리고 김영만 아저씨는 친근하게 우리를 ‘코딱지들’이라 칭하면서, 그때의 색종이 장난감들을 만드는 방법을 다시 가르쳐줬다. 물론 과거처럼 시간이 걸리는 단순 반복 작업 부분에서 “저는 미리 준비해왔어요”라는 함정 카드 같은 말도 빼먹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진심 어린 칭찬을 들어본 것이 얼마나 오래 됐는지 모르겠다. 일을 잘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까.

지난 시간 성장한 우리가 대견해서였을까, 김영만 아저씨는 결국 그날 방송에서 눈물을 보였다.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방송 장면 캡쳐]

그렇게 한참을 살아온 우리에게 김영만 아저씨는 “착한 친구들”, “예쁜 친구들”이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제활동 인구로 자라난 우리에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위로가 담긴 메시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 위로는 우리의 가슴을 찌르르 울리며 어리광을 부리게 만들기도 했다.

 

■ 뚝딱이 아빠 김종석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진 얼굴,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 [인스티즈 웹사이트 캡쳐]

지금은 ‘모여라 딩동댕’의 상징적 인물로 ‘번개맨’이 손꼽히고 있다지만, 그보다 전인 ‘딩동댕 유치원’ 당시에는 꼬마 도깨비 캐릭터 ‘뚝딱이’와 그의 아빠라는 설정의 개그맨 김종석이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준비됐나요~?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BS 모여라 딩동댕 방송장면 캡쳐]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고유의 리듬감을 붙여 “준비 됐나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뭐라 대답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이 당연하다는 듯 “준비 됐어요~”라 답할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된 이 대사는 ‘딩동댕 유치원’의 그 아저씨,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와 ‘어린이 친구들’이 주고받는 질답이다.

우리의 부모세대 많은 분들이 IMF로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었다. [MBC 뉴스 방송 장면]

기자 또래의 우리들은 부모세대가 크나큰 풍랑에 휩쓸리고 고통받는 과정을 직접 목도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다. 그동안 밝고 명랑하게, 건강하고 슬기롭게 자라면 충분했던 우리는 그때부터 무너진 부모세대와 그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둘러 어른이 돼야 했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은 채 우리는 억지로 철이 들어야 했다.

번개맨, 뚝딱이아빠, 뚝딱이의 한 컷.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EBS 모여라 딩동댕]

우리가 사회로 속속 진출할 당시에는 뚝딱이 아빠처럼 누군가가 준비 됐냐고 친절하게 물어봐주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고난과 역경의 내음이 짙게 깔렸던 그 시절, 일부 어른들은 마치 그간 있었던 경제적 손실을 메우기라도 하려 듯 젊은이들을 쥐어짜고 착취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 여러분’이나 ‘꼬마 친구들’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겨났다.

 

■ 여러분의 추억 속에는 누가 있나요?

어린 시절보다 조금은 머리가 굵어진 탓일까, 그분들의 행동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에 무언가의 의미를 담게 된다. 아무 걱정 없었던 유년기와는 달라진 요즘, 위로나 격려가 부쩍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우리를 모여들게 한 TV 속 그분들의 근황이 몹시 궁금해진다.

이번에 공감포스팅 팀이 소개한 분들 외에도 우리의 어린 시절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셀렙’들은 많다.

본 포스트를 읽은 분들도 저마다 추억 저편의 누군가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부터, 아직도 다시 보고 싶은 그리운 연예인들까지.

시간을 거슬러 여러분의 추억 속 셀렙들은 누가 있는지를 되짚어보자.

만약 그렇게 떠오른 분들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추억을 공유해주시길 바란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분들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진다.

    공감포스팅팀 | pjs@gokorea.kr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공감신문이 되겠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__^
    궁금하신 주제를 보내주시면 포스트 주제로 반드시 고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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