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꿈을 꾸었어. 난 플랫폼에 서있고 넌 기차를 타고, 내 곁을 스치고 또 스치고 지나가. 그러다 다시 꿈을 꾸지. 임신한 네가 내 옆에 누워있어. 그 부드러움 때문에 눈물이 날 거 같은데.” ( 영화 <비포 선셋> 중에서)

[공감신문] 우리에겐 누구나 ‘잊지 못할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 진즉에 떠나는 그 사람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사계절도 무색하게 그토록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있다. 어떠한 추억들은 대부분 아프고, 어떠한 추억들은 대부분 온화하다. 내가 독자 여러분들의 연애사를 감히 알 순 없으나, 보편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에게 잊히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보통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중 한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일생에 잊지 못할 온화하고 아름답고 충성하고 풍성한 사랑을 주었던 사람,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사람. 대부분 이러하지 않은가? 음, 적어도 나는 그래.

제목에 ‘잊지 못할 그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고 썼는데, 그러면 우리가 누군가의 가슴에 남으려면 딱 저 부류 중 한 사람이 되면 된다.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이’의 가슴에 남고 싶냐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가 갖지 못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의 호감은 감사한 일이지만, 난 그 이의 사랑이 별로 기쁘지 않아야하는 것이다! 감사하고도 미안한 일이다. 그런 이의 가슴 속에 남고 싶은가?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난 알지도 못할 테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숨 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 나의 웃음과 시답지 않은 말투로 던지 농담들이 몽땅 저장되어서 말이다. 나와 연애했던 누군가에게보다, 나와 이루어지기 강렬히 원했던-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았던 누군가의 가슴에 나는 더욱 선명할 지도.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이라면 나를 계속 되 내이고 되 내이고 있을 테니까. 

또 하나의 다른 방법은 온화하고 아름답고 충성스럽고 풍성한 사랑을 주는 것이다. ‘연애’도 어렵지만, ‘연애’만큼 정말 충실하게 사랑을 가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연애의 횟수를 떠나, 정말 나의 모든 것을 다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일생에 몇 명이나 만나게 될까? 심지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럴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옆에 이미 누군가가 있거나 멀리 떨어져있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그에게 해줄 수 없게 된다. 사랑은 주고 싶다고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은 받는 것뿐만 아니라 주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풍성하고 온화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충실한 사랑을 주었던 이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인간은 모든 것에 ‘적응’이 굉장히 빠르다. 어느 순간, 상대방이 주는 사랑과 배려가 고마워지다가도 익숙해져 버리면, 그것을 당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게 어떻게 당연한 일인가? 상대가 나에게 하는 행동들은 상당히 ‘비이성적’이지만- 그 모든 게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우린 그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너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마치 부모님 밑에서 이쁘다, 이쁘다, 고슴도치라도 제자식이라서 넌 이쁘다 소릴 듣고 커왔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남들이 나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거랑 똑같다. 그 배신감이란!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잊히지 않을지 모른다. 그가 이전에 어떠한 상대와 연애를 했을지 몰라도, 그 충실함보다 더욱 충실하게 그를 사랑해주면 된다는 거다. 심지어 이렇게 되면 헤어진 후에라도 나는 큰 미련이 남지 않을 확률이 커진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와의 만남이 여기까지라면, ‘하얗게 불태운’ 후에도 이게 나의 결과라면 난 더 이상 뒤돌아 후회할 게 남아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사랑도 개운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 이 전날 마신 술의 숙취 때문에 해장술을 마시는 기분으로 새 연애를 시작하면 안 된다. 그 이후엔 도대체 무엇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속을 달랠 것인가. 

나에게도 이러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전에 헤어진 누군가가 보고 싶었다. 사실 그와 헤어진 후에도 ‘후 폭풍’이랄 게 별로 없었다. 나 역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느 누군가에게 더욱 잘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다.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난 미련이 없었다. 근데 그가 보고 싶어진 거다! 그는 나에게 정말로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그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나에게 진실 되고 충실했던 사람은 없었다. 난 갑자기 그가 왜 보고 싶었던 걸까.

왜냐하면 내 마음 속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그 새로운 누군가는 날 설레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들더라. 
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심지어 그 새로운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보일수록 나의 상상들은 구체화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나의 것보다 크기가 작은 듯 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기대했던 것? 내가 느꼈던 따뜻한 사랑의 감정들, 그러니까 나에게 충실했던 누군가가 주던 그러한 따스함 같은 것...! 사랑이 그리운 나, 사랑받던 것이 그리운 나. 그 사랑의 주체는... 새로운 그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 사랑의 따스함을, 새로운 누군가가 주길 원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그리워하던 것은 날 사랑해주던 충실한 이가 아니요, 새로운 누군가이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날 사랑해주던 충실한 이가 아니요, 새로운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행하는 모습이며,내가 열망하던 것은 날 사랑해주던 충실한 이의 사랑이 아니요, 새로운 누군가의 날 향한 사랑이었다!

더 쉽게 말해볼까?
내가 지금 원하는 기분이 ‘취기’라고 치자. 나는 이전에 소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었더랬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소주가 아니라 ‘샴페인’이다. 나는 소주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정확히 ‘취한 기분’이 그리운 거다. 샴페인이 취할 만큼 준비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에 취할 만큼, 그가 날 사랑해줬음 한다는 거지. 

결국 안타깝고도 냉정한 현실이다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던 이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아온 이들 일수록, 이런 열망이 강해질 수 있다. 
혹은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다. 누군가는 조심스러운 편이라 천천히 마음을 열려는 것인데, 상대방은 이전에 자신이 받았던 사랑과 비교하며 ‘아, 이이는 날 많이 좋아하지 않는 구나’라며 성급히 판단하고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는 것! 바보 같은 짓이지. 

비포 선라이즈, 미드나잇, 선셋... 사람들은 왜 비포 시리즈에 가슴이 아련해지는 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그들이 떨어져있던 그 시간만큼 서로를 기억하고 그려내서다. 

“늘 꿈을 꾸었어. 난 플랫폼에 서있고 넌 기차를 타고, 내 곁을 스치고 또 스치고 지나가. 그러다 다시 꿈을 꾸지. 임신한 네가 내 옆에 누워있어. 그 부드러움 때문에 눈물이 날 거 같은데.”
그 부드러움이 느껴보지 못한, 느껴볼 수 없는 것이기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 중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남을지, 이건 사실 우리 선택 영역 밖에 일이다.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시절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아니, 우리는 훗날 내가 어떠한 추억일지 감히 예상하는 이러한 건방진 짓도 하지말자. 그냥 너무 많은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사랑할 시간이 부족한 이 시간에 어서 사랑을 하자. 인생은 너무도 짧고, 사랑할 시간은 마른 수건을 짜내듯 몇 방울 남아있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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