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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창호 칼럼] 무더운 여름날의 피서避暑 혹은 피서避書

[공감신문] 인간의 성정은 경박하고 간사하기도 해서 여름이 되면 겨울이 좋다하고, 겨울이 되면 여름이 더 낫다고 한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여름이 겨울보다 살기가 쉽고 이런저런 걱정이 덜하다. 겨울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늘 참혹한 처지를 더욱 일깨우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은 여름이다. 부채를 넘어서서 선풍기, 에어컨에다 시원한 팥빙수나 여름을 이긴다는 삼계탕 등 각종 복중伏中 보양식의 혜택까지 누리면서도 모두가 덥다고 아우성을 친다. 방송에서 일기예보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들은 시간마다 폭염과 더위를 강조하고 여름 휴가철 피서를 더욱 부추긴다.

쿨(cool)한 여름은 불가능하다고만 여길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더위를 피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북새통을 이루는 피서지를 찾는 것이나, 겨울 설산으로 떠나는 먼 여행을 하거나, 죽부인竹夫人을 만나는 것, 또는 독서삼매에 빠지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 되면 책을 수십 권 싸들고 피서를 떠난다는 일부 벗들의 경우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더위를 피한다는 피서避暑가 책으로 피하는 피서避書(?)가 되는 순간이다. 고요한 오지의 아름다운 산수를 책에서도 발견하고 그 정취를 더할 수는 없을 것인가. 특히 책을 읽으면 여름이 그리 덥지 않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많았다. 

이부자(1501~1570)의 학식과 언행을 전하는 《퇴계언행록》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이 글을 읽으면 가슴속에 문득 시원한 기분이 생기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저절로 더위를 잊게 되는데 무슨 병이 생길 수 있겠는가.”

비슷한 맥락의 글이다. 행실과 학문으로 18세기를 빛낸 돌올한 여성지식인 임윤지당(1721~1793)의 생애와 저술 등 업적을 기린 《임윤지당유고任允摯堂遺稿》에는 무더운 여름에 책을 읽으면서 부채질을 한다는 조카들에게 임윤지당이 말씀했다는 독서를 통한 수양의 높은 경지다.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으면 가슴속에서 자연히 서늘한 기운이 생기거늘 어찌 부채질할 필요가 있는가. 너희들이 아직도 헛된 독서를 면치 못했구나.”  

정암 조광조(1482~1519) / 사진출처=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우리는 책을 숭상하는 오랜 전통이 있는 문사의 나라였다. 중국이 재물과 실리를 밝히는 상인商人의 나라, 일본이 장인정신을 선호하고 충성과 반역의 무사武士의 나라, 영국 등의 유럽이 에티켓과 신사도紳士道를 강조했다면 우리는 산림에 있건 조정에 있건 독서하는 선비들이 많았고 존중을 받았다. 

고려 때 사절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송나라 문신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개성의 골목마다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는 대목이 나온다. 문인의 나라, 과거의 우리 지식인들은  집집마다 책을 가득 쌓아놓고 많은 글을 읽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여인네들도 책 읽는 소리를 좋아했다. 책 읽고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아 선비들의 공부방에 뛰어든 용감한 처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암 조광조(1482~1519)의 젊은 시절.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정암의 모습을 보고 상사병相思病이 생긴 동네 이웃의 어떤 처녀가 염치 불구하고 방에 들어왔다. 백학처럼 청아하고 품격이 높은 정암은 그 처녀의 회초리를 치고 타일러 보냈다지만, 그 정경과 일화는 예사롭지가 않다. 비슷한 일화들은 정승판서를 두루 역임한 정인지, 상진, 채제공 등에게서도 전해진다.

이덕무(1741~1793) 선생은 《이목구심서》에서 말한다. “군자가 한가롭게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작게는 잠만 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女色에 힘 쏟게 된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뜻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고 나이가 젊고 기운이 센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무릇 나의 동지들은 힘쓰고 힘쓸지어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다.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 본래는 철에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아 무용지물을 뜻한다고는 하나, 역설적으로 이열치열의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 여름의 뜨거운 화로는 소낙비에 젖은 옷을 말려주기도 하고, 겨울의 부채는 꺼진 불씨를 다시 일으키는 도구로 유용하다. 특히 겨울에 주는 부채는 상사병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소탕하고 개결했던 문장가였던 백호 임제(1549~1587)는 읊는다. “한겨울에 부채 준다고 괴이하게 여기지마라. 너는 나이어려 아직은 모르리라만 임이 그리워 한밤중에 가슴에서 불이 일어날 때면 유월 염천의 무더위가 비길 바가 아니니라.” 작자 미상의 시 또한 부채의 깊은 의미를 더한다. “부채 보낸 뜻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냈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고 어이 끄랴.”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독서 역시 계절과 날씨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로동선은 오히려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 물건이나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는 가르침까지 새삼 일깨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지혜이기도 하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낳지 아니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키우지 않는다(天不生無綠之人, 地不生無名之草).’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는 1인당 1년에 1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처참한 독서빈국이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이런 부끄러운 나라에서, 더구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의 나날에 느닷없이 책을 읽자고 주장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긴 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웬만한 책들이 수십만~수백만부가 쉽게 팔린다. 특히 영어권의 인기 있는 작가의 경우 저작권 등 인세 수입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콘텐츠의 우수성에 대한 감탄과 함께 두터운 독자층과 견실한 독서풍토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링컨(1809~1865) 대통령은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독서에 관한 각종 일화들이 유명한 링컨 대통령은 매년 자기 키(193cm) 만큼의 책은 읽었다고 한다. 책 한권의 두께를 약 3cm 정도로 잡으면 매년 60권 이상이다. 오거서五車書. 독서만권讀書萬卷이 회자되지만, 인간이 만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고 보인다. 

3일에 1권의 책을 읽는다면 1년에 겨우 100여권을 읽는 셈이 된다. 산술적으로는 3일에 한 권씩 100년을 읽어야 겨우 만권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독서에 열정을 갖고 책읽기가 오랜 습관이 된 작가들이나 교수, 지식인들은 하루 100권 이상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고 한다. 독서는 참으로 소중한 지적인 훈련이자 기본적인 노력이다. 어떤 분야에서 5백 권 이상의 계통적이고 깊이 있는 독서(deep reading)를 한 독자는 좋은 저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배경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Outlier)》(김영사. 2009년)로 널리 알려진 영국 출신의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1963~)은 ‘1만 시간의 연습’을 강조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로서 성공적인 업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이상의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은 하루에 10시간을 꾸준히 공부한다면 3년이 소요되는 긴 시간이다. 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비틀즈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1만 시간 이상의 연습과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특히 저명한 학자나 작가, 뛰어난 연주자들은 모두 독서광讀書狂이었거나 연습벌레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세계 정상급의 음악 연주자들의 경우 하루 10~15시간 이상의 연습을 수십 년에 이르도록 한다고 한다. 하루 15시간 이상 집중적인 공부나 계통적인 책읽기를 10년 이상 한다면, 해당 분야에서 정상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허버트 사이먼(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인지과학자)교수는 예술, 스포츠, 학문 등의 각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타고난 재능보다도 최소 10년 이상의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학습경험이 탁월한 성취에 중요했다는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A.에릭슨 교수(미국 플로리다 주립대)가 여러 분야의 영재와 전문가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의 결론 역시 ‘신중하고 계획된 수련(deliberate practice)’이 성공의 비법이라는 것이었다. 

에이브러험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

부국강병, 일류국가의 길은 결국 독서에 있다. 독서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진정한 국가경쟁력이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를 누구나 크게 부르짖고 있지만 깊고 넓게 독서를 하는 현명한 국민이 없으면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재탕, 삼탕의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매우 크다. 

지금은 좋은 책이 좋은 인간을 만든다는 구호가 무색해졌다. 논문 표절, 문자폭탄이라는 악문惡文은 차고 넘쳐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으나 왜 좋은 책들은 그만큼 팔리지 않고 있나.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하고 편리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인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영·정조대의 문장가 성대중(1732~1809) 선생이 《청성잡기》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척박한 독서풍토는 많이 발전했다는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나는 하루도 독서를 안 한 날이 없지만 일처리는 이치에 합당하지 못하고 마음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평생토록 글 한자 읽지 않았는데 스스로 하는 일마다 이치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저 자들은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였기에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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