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이 화제다(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공감신문] 임채령 기자= 나혜석이 화제인 가운데 나혜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6일 방송된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된 나혜석은 시험 결혼’을 주장하던 나혜석은 “시험 결혼이란 남녀가 3~4년 동안 일단 살아보고 싫으면 갈라서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후대의 동거와 비슷하다. 결혼이 행복한 것이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 현재 유럽에서도 이 시험 결혼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을 뒷받침했다.

시험 결혼의 장점으론 “결과에 대해 누구도 절대적인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혼한다고 해서 위자료, 정조 유린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나혜석은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 유행하던 1920년대에 남성들의 축첩은 허용되고, 공창제 역시 합법화된 시대에 남성에게 전혀 문제 되지 않던 연애와 만남이, 여성에게는 사회적 비난의 수단이 되는데. ‘정조가 더럽혀진 여성’, ‘문란한 여성’… 이러한 차별적인 정조관에 맞서 나혜석은 신정조론을 말했다.

당시 파격적인 주장으로 나혜석은 또 한 번 사회적 뭇매를 맞았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였다. 먼저 일본에 유학한 오빠의 주선으로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다.

유학시절 약혼자였던 시인 최승구가 죽은 후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하여 만주 안동 부영사가 된 남편을 따라 안동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이 조선 여성 전체의 진보라고 하는 점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신여성의 대표 인물로서, 조선미술전람회에 계속 입선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자의식적인 여성적 글쓰기를 펼친 작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혜석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아이는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라고 규정한 "어머니 된 감상기"는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것으로 사회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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