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생물이 살아간다. 이 중 많은 종의 동물들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멸종당했다. 아니, 지금도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멸종 중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동물을 그거 고기와 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 미란도가(家) 사람들 / 영화 ‘옥자’ 스틸컷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옥자’는 왜 동물들이 인간의 손에 멸종당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옥자 속에 등장하는 기업 '미란도'의 행위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동물을 그저 음식·돈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굶주리는 인구가 상당히 줄어든 현재도 미란도가(家)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판을 치는데,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예전에는 어땠을까.

지금이야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일상적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이야기는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가축화된 동물을 제외하고, 인간에게 호의적으로 보였다가 멸종당한 동물들이 적지 않다.

자주 섭취하기 힘든 육류가 눈앞에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인간이 어디 있었을까. 더군다나 인간에게 호의를 가진 동물이라면?

아니나 다를까.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 가까이 다가오는 동물, 경제적 수입에 보탬이 되는 동물들이 멸종된 사례는 적지 않다.

요즘에는 이를 반성하고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거나,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려는 활동들이 눈에 띄게 활발히 늘었지만, 반대로 최근에 멸종한 동물들도 상당수다.

우리의 본성은 이 짤 하나면 모든 게 표현되지 않나 싶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유명한 인터넷 문장을 아는가. 딱 이 상황에 어울리는 듯하다.

각설하고, 이번 포스트를 통해 공감포스팅 팀과 함께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한 동물’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 일본인의 손에 무자비하게 도륙당한 ‘독도 강치’(=바다사자, 가지(可支))

주황빛 강치 넥타이를 착용한 문재인 대통령 / 연합뉴스=공감신문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주황빛 넥타이를 착용해 세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넥타이 속에는 물개를 닮은 동물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이게 바로 ‘독도 강치’다.

일본 시네마현에서 보관 중인 독도 강치 박제 모형. 일본은 독도 강치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근거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 연합뉴스=공감신문

독도 강치는 바다사자의 한 종으로, 일본이 독도를 무단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독도에 살았던 강치는 약 4~5만 마리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 독도는 강치가 많이 산다고 해서 ‘가지도’(可支島)라고 불렸다. ‘가지(可支)’는 강치의 과거 말로 한자식 표현이다.

독도가 일본의 손에 불법으로 넘어간 후, 일본의 ‘나카이 요자부로’가 독도 강치를 사냥하는 데 앞장섰다.

독도 강치를 포획하고 있는 일본인 어부들의 모습.

독도 강치는 일본인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사냥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약 8년 동안 1만 4000여 마리가 죽임당했다.

독도 강치를 기리기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설치한 비석

독도 강치의 가죽은 일본군 피복을 위해 사용됐고, 어린 강치는 서커스단에 팔려 나갔다. 이후 약 반세기가 지난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강치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재 남은 강치의 흔적은 독도에 세워진 기념비가 유일하다.  

 

■ 맛있다고 소문나서 멸종된 ‘스텔라바다소’

전 세계에는 인어에 대한 전설이 널리 퍼져있다.

현재는 인어가 상상의 동물이라고 알려졌지만, 과거에는 인어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전 세계에 걸쳐 인어에 대한 전설이 많은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인어 전설을 만들어낸 장본동물 듀공의 모습. 헤엄치는 모습을 위에서 보면 사람과 흡사(?)하다고 한다.

사실 인어의 정체는 바다소의 종류인 ‘듀공’이나 ‘매너티’고, 옛사람들이 이를 보고 인어라는 가상의 생물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스텔라바다소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에 멸종한 동물로, 인어의 모티브가 된 듀공이나 매너티와 친척뻘 되는 사이다.

스텔라바다소가 멸종하게 된 이유로는 지구 환경이 변했다는 설, 원주민이 스텔라바다소의 먹이를 모조리 먹어치웠다는 설, 등의 여러 가설이 있지만, 인간의 사냥으로 멸종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Georg Wilhelm Steller). 우리말로 잘못 표기한 게 아니라 독일 사람이라 그렇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스텔라바다소는 탐험가 베링 탐험대의 일원이던 ‘게오르크 슈텔러’의 기록을 기반으로 한 것이 전부다. ‘스텔라 바다소’라는 이름도 ‘슈텔러’에서 딴 이름이다

슈텔러는 탐험 도중 현재의 ‘베링섬’에 표류했는데, 당시에는 아무도 살지 않던 무인도였다. 박물학자였던 그는 그곳에서 스텔라 바다소를 발견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스텔라바다소는 온순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료애가 깊어 누군가 상처를 입으면 서로 도우려 했다.

기타 기록은 배제하고,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가 남긴 기록 중 ‘스텔라바다소’가 맛있다고 남긴 사실이 중요하다.

'스텔라 바다소' 사냥 후 해체하는 모습을 담은 삽화

그는 스텔라바다소의 고기 맛이 뛰어나고 지방이 많아 쓸데가 많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 소문이 선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본격적인 스텔라바다소 사냥이 시작됐다.

박제돼 있는 ‘스텔라 바다소’의 모습

정확히 소문이 퍼진지 27년 후 스텔라 바다소는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아 멸종한 ‘큰바다쇠오리’
너무너무 쉬운 질문을 하나 해보고자 한다. “북극에는 펭귄이 살까 살지 않을까?” 정답은 “살지 않는다” 이다.

‘큰바다쇠오리’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 중 하나

하지만 과거에는 북대서양과 북극해 일대에 원조 펭귄이라 불리는 ‘큰바다쇠오리’가 서식했다. 현재 남극에 살고 있는 ‘펭귄’은 ‘큰바다쇠오리’가 멸종된 후 비슷하게 생긴 생김새 덕분에 물려받은 이름이다.

현생 펭귄과 생김새가 아주 유사하다. 다만 생물학적 연관성은 없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거대한 새는 생김새가 펭귄과 많이 유사하다.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날개는 작게 퇴화해서 날지 못했고, 수영을 위한 용도로 사용됐다. 다만, 펭귄과 생물학적 연관성은 없다. 외견만 닮았을 뿐.

육지에서 인간을 만난 큰바다쇠오리의 운명은(...). 손쉬운 사냥감 중 하나일 뿐.

현생 펭귄처럼 물속에서는 상당히 재빨랐지만, 육지 위에서는 아주 느렸다. 더군다나 이 새는 인간을 보면 도망가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이 새의 운명이 불 보듯 뻔했다.

큰바다쇠오리는 말 그대로 인간에게 손쉬운 사냥감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새였기 때문에 아무런 경각심 없이 무분별하게 사냥됐다. 고기는 먹거나 어업을 위한 미끼로 쓰였고, 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이용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식지에 화산 분화까지 일어난 비운의 새(...)

큰바다쇠오리는 결국 아이슬란드의 한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냥이 끊이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새의 마지막 서식지의 화산이 분화해 개체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큰바다쇠오리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844년 선원들이 암수 한 쌍을 죽이고 알을 깨버렸다는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 인간의 침략으로 멸종해버린 ‘도도새’

도도란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 바보같다’라는 뜻이다.

멸종된 동물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 있으니 바로 ‘도도새’다. 도도새는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 바보같다’ 등을 칭하는 말로 인간에게 자기 발로 다가와 잡아먹힌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도도새 생전 모습을 복원한 모습. 박제로 남아있는 개체는 없다.

도도새는 인도양에 위치한 모리셔스 섬에서 큰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인간이 이 섬에 도달함에 따라 그들만의 평화는 곧바로 깨져버렸다.

모리셔스 섬에는 맹수가 없었던 터라 도도새는 본능적으로 외부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행동을 보였다.

치킨이 눈앞에서 걸어다닌다고 상상해보자(......). 실제로 도도새가 맛이 좋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거나 알을 맨땅에 그대로 놓는다던가 등의 행동을 보였다고 하니, 당시 선원들의 눈에는 걸어 다니는 고기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이 상당수 도도새를 잡아먹은 까닭도 있지만, 인간과 함께 들어온 외래종들이 도도새를 멸종시키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

도도새는 한 번 산란을 할 때 한 개의 알을 낳는데, 맨땅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알은 외래종들에게 좋은 한 끼 식사였다.

모리셔스 섬에 사람이 터를 잡은지 100여 년 만에 도도새는 멸종했다.

천적 없이 모리셔스 섬 안에서 평화를 누려왔던 도도새의 멸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인간이 섬 안에 상륙한지 약 100여 년 만에 도도새는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1681년 마지막 도도새가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 새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멸종의 시계는 아직도 흐르고 있다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들의 시계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아직도 많은 동물이 인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냥당하거나, 이익 창출의 도구로 고통 받고 있다.

코끼리나 코뿔소 등과 같은 동물은 뿔의 희소성 때문에, 사향고양이는 일명 루왁커피라고 불리는 ‘똥커피’를 만들기 위해 그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아직은 개체수가 많아서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물 한 종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편, 아이러니하도, 누군가는 동물을 멸종시키고 누군가는 돈을 들여 멸종동물을 복원하고 있다.

실제로 멸종한 동물들을 복원하는 연구에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종이 멸종하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동물의 보존을 위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더는 지구촌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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