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답할 수 없었던 위대한 질문, 30년 간 연구했음에도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그 질문은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한두 달 전의 일이다. 아는 여동생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언니 소개팅 할래?’ 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야지,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아니, 지금 별로 누굴 소개받고 싶진 않네, 고맙지만 괜찮아. 근데 어떤 사람을 소개해주려던 건진 좀 궁금했다. 그냥 간단히만 물었다. ‘뭐하는 사람이야?’ 자기 친한 오빠인데 변호사라고 했다. 그렇구나. ……아……?! 변호사? 아, 다행이네. 만일 당시 새로운 누군가를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치더라도, ‘변호사’였으면 아마 소개를 안 받는다고 했을지도 몰라. 
이날 저녁, 동네 단골 bar에 들러 사장 오빠들과 평소처럼 쓸 데 없고 아무 영양가 없지만 세상 가장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 내가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데 오늘 좀 생겼어.”
오빠들은 어떤 직업에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자 변호사는 정말 안 섹시한 것 같아.”
그렇다. 정말 여자는 모르겠고 남자 변호사는, 진짜 안 섹시할 것만 같다.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중에서)

미리 밝혀두는데 이 글은 정말 편협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쓰였다. 다만, 지금 내가 써나갈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SNS에 올렸더니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더라는 것이다! ‘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정말 그럴 것도 같아’라고. 그래서 이 주제를 가지고 언제한번 글을 써볼까, 하다가 마침 얼마 전 제헌절이었기에 이야기를 꺼내본다. 
미리 남자 변호사 분들께 죄송하다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변호사가 왜 안 섹시할 것 같은지’ 소매를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말씀드려 보겠다. 

첫 번째 이유, 그들은 상당히 논리적일 것만 같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그 어떤 직업군보다도 그러할 것이다. 단순히 법전만 달달 외운다고 변호사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논리는 뼈대이자 축이다. 그 곳에 존재를 나타내며 서 있게 하는 힘이 바로 논리인 것이다. 
연인 사이에는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 보통 남녀 싸움에서 여자들이 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싸움을 회피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은 ‘내가 널 얼마나 이해했는데 넌 또 그러느냐’ 따위의 이야기를 (언제 이런 걸 머릿속으로 정리한 거지?) 논리정연하게 말한다. 근데 왠지, 남자 변호사는 나보다 이걸 더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싸울 생각부터 하는 내가 별로인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연인 관계에서 싸움은 불가피하며, 그렇게 에너지와 감정을 쏟아 부을 바엔 그 관계를 위해 얻어지는 게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더욱 잘 알게 되며 서로 타협점을 찾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근데 나의 상대방이 나와 싸움의 기술이 똑같다면 좀 별로일 것 같다. 
제일 싫은 건 사실 이거다. 난 나를 바꾸려고 하는 남자를 좀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면, 어련히 알아서 바뀐다. 아니,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좋다. 나도 내가 바꾸고 싶은 남자를 사랑한다기보다 그냥 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가 유익하게 변하는 모습을 즐기는 게 더 뿌듯한 기분이더라. 근데 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남자는, 왜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왜 더운 날씨에도 햇볕을 주기적으로 쬐어야 하는지, 왜 윌리엄 버로우즈 같은 글을 읽으면 안 되는지 상당히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것이지 않나! 실제로 남녀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모 정치인 오빠가 나에게 이런 식인데, 가끔 전화 와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지친다. 논리정연 하셔라, 그 말이 다- 맞다! 근데 난 그렇게 살기 싫은데? 아아, 너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야! 아아, 말싸움하기 싫어서 난 회피하고야 만다. 그렇구나. 남자들이 이런 기분이구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은 머리가 좋아서 사소한 일까지 다- 기억할 것 같다는 거다. 그게 좋지 않냐고? 아니, 정말 기억 안 해도 되는 것까지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달갑진 않다. 게다가 난 계속- 변화할 텐데, 마치 날 다 안다는 냥 대하는 건 싫어. 
“해수 너는 소맥보다, 소주 따로 맥주를 안주로 마시는 것 좋아하잖아. 맞지?”
응, 맞아. 근데 한번쯤은 지금처럼 물어봐줄래?

세 번째 이유는 난 남자가 사무적인 스타일로 옷 입는 게 싫다.
네 번째 이유는 난 내 남자가 남의 일에 끼는 게 싫다. 헌데 변호사가 어떤 직업인가? 의뢰인의 입장을 대신 피력하여 그의 권익을 보호받게 하는 일을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보호하고 그의 입장을 최대한 충분히 증명해내기 위하여, 의뢰인이 처한 ‘그 상황’에 상당히 깊숙이 관여한다. 심지어 의뢰인 당사자 본인보다 훨씬 더 심층적으로 고민하고 알아낸다. 난 이게 싫다는 거다!
내 남자가 다른 사람 사는 데에 완전 무관심한 사람이길 원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지만, 타인의 인생에 깊게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정도면, 그 일은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절대 작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내 남자가 그런 일에 힘을 보탠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알게 된다? 별로 달갑진 않다. 아, 이렇게 보면 그들은 정말 피곤한 직업인 것 같다.

다섯 번째 이유는 난 내 남자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게 싫다. 평화롭게 살았으면 한다. 그런데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대신 싸워야한다. 그게 변호사잖아!

며칠 전 아는 영화감독님이 밥을 먹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사실 ‘변호사’ 그 자체가 엄청 부조리한 거라고. 대부분 그들은 변호사가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한다. 머리가 정말 좋은 사람,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거의 사회와는 동떨어져서 공부에 매진한다. 누구는 절에 들어가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오늘날 어떤 고민들을 가지고 어떤 유행을 따르며, 어떤 것의 가치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지 관심을 둘 시간이 없다. 이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만 막상 그 삶을 적극적으로 잘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법전에 끼워 맞추려고도 한다, 그것을 이해하기도 전에. 하긴! 경청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텐데. 
법조계 사람들의 응집력이 대단한 것은 어쩌면 다른 사회의 모습들보다 그들에게만 익숙했던 풍경들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색안경이자 내 취향에 대한 고백들이었다. 실제로 변호사분들이 이런 나의 생각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가실 수도 있고, 아니 그런 분들이 엄청 많을 것 같다. 
내가 변호사를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그냥 저런 성향의 남자가 싫다는 얘기다. 단지 변호사들은 좀 더 저렇지 않을까? 했던 거고. 선입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잖아! 
나도 사실, 남들이 생각하는 ‘작가’이미지랑은 좀 동떨어져 있긴 하지.

이 글을 읽고 변호사분들이 기분은 나쁘시겠지만 또 별로 안 나쁘셨으면 좋겠다. 겨우 ‘나’라는 인간 한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걸? 어쨌든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가장 사랑받는 사위 직업 1순위가 아니셨던가! 아직도 그 위엄은 엄청나며 견고하다. 겨우 나 하나 따위가 ‘싫다’는 것도 아니고, ‘섹시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것이니 그냥 쿨-하게 넘겨주시길. 아니면 한번 증명해보시던가, 응? 억울하면 섹시하다고 변호해보시오.
나도 나중에 내 권익을 보호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그땐 섹시하진 않아도 유능한 분을 만나 뵈면 좋겠는데…….

20대 후반의 지금, 연인과 친구, 조금 알아가던 사이, 좋은 감정, 미워진 사이, 애증의 관계, 배신감이 드는 사람……. 많은 관계들을 거치며, 진정으로 누군가를 알기 전에 판단하거나 기대한다. 어쩌겠는가, 누구나 그런 프로세스를 가지는 것을!
프랑스 남자는 달콤한 말을 잘할 것 같고요,
스페인 남자는 키스를 잘할 것 같고요,
터키 남자는 너무 잦은 연락이 나랑 안 맞을 것 같고요,
웃는 게 이쁜 남자는 아기를 좋아할 것 같고요,
그리고 변호사는 안 섹시할 것 같아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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