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산이 나무를 품었나
나무가 산을 품었나
풍경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은
내 자리를 정확히 깨닫고 있다는 것을

때론 고단하고
때론 환희에 찬 삶의 무늬도
흐르면서 성숙해가는 법

눈앞을 막아서는 욕망에서 벗어나면
하얗게 높이 멀리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김정한, 욕망에서 벗어나면’

여름 비치곤 사납다. 하늘이 구멍 뚫린 듯 물통으로 들이붓는 듯 매섭게 쏟아진다.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새벽에 느끼는 자연의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다림이 길어서인가 문득문득 다가서는 헛헛함이 두렵다. 얼마를 더 견뎌야 할까?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오래전에 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대사가 생각난다.

"당신이 누군가를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지울 순 있지만 사랑은 지워지지 않아요.
You can erase someone from our mind, Getting them out of your heart is another story.“

사진출처=영화 이터널선샤인 포토 스틸컷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눈이 늘 젖어 있어 울지 않는 낙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 새, 하루를 살기 위해 물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 백 년에 단 한번 꽃을 피우는 용설란, 그게 그들의 운명이라면, 나의 운명은 또 무엇일까. 늘 눈이 젖어있는 낙타일까,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 새일까, 하루를 살기 위해 물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일까, 백 년을 기다려 단 한 번 꽃으로 피어나는 용설란일까.

애정이 아니라 믿었던 것들이 샘물처럼 솟아나 생채기를 낸다. 뇌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심장까지 비틀거린다. 어느 날 저녁은 당신을 데리고 갔다. 그 후 당신의 슬픈 눈물이 내 살 속에 박혔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내가 먼저 당신을 찾고 있다. 당신 때문에 울고 나니 한 계절만 있었다. 당신 때문에 울고 나니 한 밤만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덩그렇게 울고 있는 내가 있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영혼과 육신을 번갈아가며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나도 휘청거리고 당신도 휘청거리고 세상이 흔들렸다. 놀랍게도 곧 별빛이 내렸고 난 습관처럼 연어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내 곁에는 한 계절만 있고 기나긴 밤만 찾아왔다. 그리고 당신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너무 익숙한 탓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당신은 지금 없다. 그리고 무수히 해가 뜨고 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익숙하다 못해 습관이 되어버린 단 한 번의 '띵똥'소리를 기다리며 1%의 희망에 기대어 주문을 걸고 있다. "내 마음이 놓아줄 때까지만 유효한 거라고" 그때까지 난 매일 연어샐러드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내 그리움은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산을 넘었다. 내 기다림은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강을 건너버렸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그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그리움이 줄어들까?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외로움이 줄어들까?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모든 것에 담담해질까? 글썽이는 눈동자, 침묵에도 저 혼자 흔들린다. 

시인 프레벨은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세 개의 성냥 하나씩 긋는다 어둠 속에서/처음 것은 네 얼굴을 빠짐없이 보기 위해 /다음은 네 눈을 보기 위해/마지막 것은 너의 입술을 보기 위해 남은 어둠은 지금의 모든 것을 추억하기 위해서/너를 꼭 안으면서."

그러하다. 사랑은 거룩한 축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그 한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또 하나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최고의 행동을 이끌어 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순수한 천사가 되어. 서로의 날개 반쪽으로 온 힘을 다해 날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랑에 몰입하고 미쳐야 가능하다.

에디슨이 전기에 미치고, 샤넬이 향수에 미쳤듯이 온전한 내 것을 발견하려면 사랑에 미쳐야 한다는 거다. 과연 모든 걸 걸만큼 사랑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또 어디에 속할까? 하늘에도 지상에도 꽃이 만발하다. 정작 나는 몇 번의 꽃을 피웠고 앞으로 얼마큼 피울까. 노란 꽃일까, 빨간 꽃일까, 아니면 검은 꽃일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그때는 언제일까? 그 비밀의 문을 여는 마스터 키는 누가 쥐고 있을까? 

사진출처=네이버 코리아 맥블로그

애정에 허우적거리며 주절대다 또 이렇게 하루를 일기장에 올려놓는다. 세상을 배회하다 돌아온 먼지 가득한 영혼을 털고 햇볕에 말린다. 묵은 것들, 억지로 들러붙은 것들을 끄집어내어도 끝이 없다. 까맣게 얼룩진 것들, 찌그러진 것들, 깨져버린 것들을 다 불러 모으니 반듯한 것 하나 없어 마음이 아릿하다.

메타쉐콰이아 숲길을 혼자 걷던 날을 생각하니 물안개로 젖듯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숲이 뿜어대는 들숨 날숨을 있는 그대로 빨아들이는 내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나이 탓인지 모든 것에 너그럽다. 사는 것이 순례 같아 죄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숲 속의 나무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히 늙어갔으면. 버거울 만큼 사무치도록 붉게 물들지 않았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나부끼는 그리움도 멈추었으면.

추상의 외로움도 이제는 멈추었으면 좋겠다. 내가 갈망하는 그곳에 닿지 않는다면, 당신이 갈망하는 이곳에도 닿지 않을 테니까. 하여, 욕망에 눈멀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윤리적인 순례자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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