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영화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이 점차 다각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함께 본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수준에 그쳤다면 지금은 모두가 온라인을 통해 영화 리뷰어가 돼 볼 수 있을 만큼 활발한 의견교환이 가능하다.

영화는 이제 관람하는 것 외에도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도 소비된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단순히 감상평이나 리뷰 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영화를 ‘덕질’해볼 수도 있다. 마음에 쏙 드는, 취향에 맞는 영화를 감상한 뒤에 그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에서 샅샅이 뒤져볼 수도 있고,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들 속의 공통점을 찾아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엮어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내용이나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2차 창작을 하는 열성팬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열성팬들 중에는 자신만의 감상, 감각으로 영화 포스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다.

'코스프레'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최애캐' 그 자체가 되어보는 팬들도 많다. [위키미디어 캡쳐]

과연, 세상은 넓고 온갖 능력자들은 넘쳐난다. 팬메이드 영화 포스터 중에는 배급사 또는 영화 제작사가 직접 만든 포스터의 퀄리티를 훌쩍 뛰어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그 영화를 본 사람들만이 무릎을 ‘탁’ 칠 수 있게끔 절묘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포스터도 나오고 있다.

물론 ‘공식 포스터가 너무 처참’하다며 팬들이 직접 나서서 포스터를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터 제작을 맡은 디자이너들도 말 못할 사연이 있을 테고, 높으신 분들의 입맛에 맞추려 ‘디자인’의 완성도 보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만 치중해야 했던 눈물겨운 이야기도 숨어있겠다.

솔직히 그런 금손들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 공감포스트에서는 굳이 그런 사례들을 되짚으며 포스터 제작자들을 아프게 할퀴진 않으려 한다. 오늘의 공감포스트는, 넘치는 '금손'들이 넘치는 팬심으로 만든 '팬메이드 포스터'들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 미니멀리스트들의 팬메이드 포스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Ryan Luckoo / Devian Art]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 마지막 작품,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팬메이드 포스터다. 극중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베인의 얼굴과 그 안에 담긴 고담 시의 전경이 돋보이며, 베인의 가스마스크를 까만 밤하늘로 보면 배트맨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절묘하다.

 

맨 오브 스틸(2013)

영화 맨 오브 스틸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Patrick Connan / Yemista]

‘슈퍼맨’을 표현하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 포스터는 강철의 사나이라는 그의 수식어와 함께 그의 가슴팍에 믿음직스럽게 달려있는 ‘S’ 마크 뿐이다. 그것만 있으면 누구에 관한 영화인지, 심지어 영화 제목인 ‘맨 오브 스틸’ 앞에 ‘슈퍼맨’이란 단어가 붙을 필요도 없겠다.

 

쥬라기 공원(1993)

영화 쥬라기공원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Adam Rabalis / imgur]

쥬라기 공원의 첫 번째 작품 포스터는 애초부터 상당히 미니멀했다. 당시 유행했던 방식인 주연 배우들의 소위 ‘대갈치기’도 없었다. 하지만 이 팬메이드 포스터는 공룡 뼈나 작중 쥬라기 공원의 로고가 아니라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자 원흉)이랄 수 있는, ‘호박’ 속에 갇힌 곤충을 표현해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1977)

영화 스타워즈:새로운 희망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Adam Rabalais / imgur]

스타워즈 시리즈의 포스터는 전통적으로 영화 속 모든 내용을 요약해 보여준다는 특징을 지녔다. 이 팬메이드 포스터 역시 그런 특징을 닮아있지만, 이제는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해당 시리즈 포스터의 전통적 구도(온갖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하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 나만의 감상으로 만든 팬메이드 포스터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punmagneto / Devian Art]

고전적 스타일의 영화 포스터 속 구도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매드맥스의 디자인. 주요 장면과 주연배우들을 정중앙에 삽입하되 전체적인 컬러감을 영화 속 주요 테마 두 개의 톤으로 나누면서 강렬한 인상을 전하고 있다.

 

죠스(1975)

영화 죠스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rTommye / Devian Art]

끔찍한 식인 상어를 조금 만화스럽게 표현한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포스터 속 상어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다면 착각일까? 만약 이 포스터대로 영화가 개봉했다면, 극장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겠거니’ 하고 착각했다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객석을 빠져나오는 관객들도 있지 않았을까?

 

에일리언(1979)

영화 에일리언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Adam Rabalais / imgur]

‘에일리언’이라는 극중 핵심적인 외계 생명체를 배제하고 세 줄기의 액체 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표현해낸 것이 독특하다. 포스터 속의 액체는, 극중 등장하는 각 존재들이 흘리는 것을 상징한다. 맨 왼쪽의 붉은색은 당연히 인간의 피, 가운데 노란색은 에일리언의 강산성 타액이다. 흰색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캡틴아메리카: 시빌워(2016)

영화 캡틴아메리카:시빌워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punmagneto / Devian Art]

초인(슈퍼히어로)들의 팀 어벤져스는 본작에서 갈등과 함께 분열의 위기를 겪는다. 포스터 속 이미지에는 유리가 이들을 상징하는 ‘A’ 모양으로 깨져있는 것을 보여주며, 그 가운데에는 피도 묻어있다. 어벤져스 팀이 가혹하게 분열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 개봉도 안 한 영화의 팬메이드 포스터

언차티드(미정)

인기 게임 프랜차이즈 '언차티드' 시리즈의 영화화 소식에 포스터부터 만들어버린 팬들도 많다. [themadbutcher / Devian Art]

게임 ‘언차티드’ 시리즈는 아직 영화화 소식만 전해졌을 뿐, 성인이 된 ‘네이선 드레이크’ 역할을 누가 맡게 될 지는 모른다. 그런데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 하나(이름도 같다)만으로 배우 ‘네이선 필리언’을 강제 캐스팅해버리는 팬의 대범함이 돋보인다. 닮긴 닮았다 정말.

 

더 라스트 오브 어스(미정)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같았던 이 게임이 영화화된다니? [Conor Smyth / Alternative Movie Posters]

이 게임 역시 영화화 소식만 전해졌지 진척사항이 따로 알려진 바는 없다. 사실 암울하고 고독한 느낌의 본작(게임)과 이 포스터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지만, 이런 느낌으로 ‘조엘’과 ‘엘리’의 모험을 다루는 것도 팬들 입장에서는 신선할지 모르겠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포스터는 슈퍼히어로와 빌런들의 떼샷이 될 가능성이 크다. [Chedsorr / Reddit]

마블이 그동안 차곡차곡 슈퍼히어로들을 쌓아올리며 야심차게 준비 하는 이벤트, ‘인피니티 워’를 다루는 영화 포스터는 어떻게 나올까? 등장 히어로가 워낙 많다보니 이런 ‘슈퍼히어로 다 모여라’ 타입으로 나올 가능성도 적지만은 않을 듯 싶다.

 

■ 번외 – 이런 식의 팬메이드 포스터도 있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

영화 로그원:스타워즈 스토리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DarthDestruktor / Devian Art]

다스 베이더가 가면 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시각화한 작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의 상징적인 가면 ‘안’을 조명했다는 점 만으로도 참신하고 독특해 보인다. 심지어 입에 있는 ‘하모니카’도 보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James Gunn / Cinemablend]

보면 알수 있듯, 대놓고 스타워즈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다른 영화라면 몰라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니까 가능하고, 또 어울린다. 스타워즈 개봉 당시에는 나름 진지하고 멋져보였겠지만, 어째 저 포즈와 구도는 코믹한 패러디로 자주 활용된다. B급을 빙자하는 작품 특유의 개그감각이 돋보이는 포스터다.

 

데어데블 리부트(예정 없음)

사실은 노란색도 데어데블의 상징 컬러기 때문에 썩 잘 어울린다. [PencilAndNougats / Devian Art]

대차게 말아먹은 영화 ‘데어데블’이 드라마 버전의 특급 흥행에 힘입어 리부트될 수 있을까? 데어데블 리부트를 바라는 한 팬이 만든 이 포스터는 주인공이 맹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듯, 영화 제목을 점자로 표기했다. 실제론 이렇게 출시되기 어렵겠지만, 맹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와 점자 제목이라니. 참신한 시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드라이브(2011)

영화 드라이브 포스터(좌)와 팬메이드 포스터(우). [James White / Signalnoise]

원판의 온갖 미사여구는 싹 다 배제하고, 주연배우 라이언 고슬링을 만화풍으로 그려내 상당히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네온 톤의 컬러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풍경을 잘 캐치해낸 듯 싶다. 한편, 유사한 컬러감과 유사한 폭력성을 지닌 게임 ‘핫라인 마이애미’와도 닮은 듯해 보인다. 하긴 애초에 이 영화가 영향을 줬다고 하니 닮은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다.

 

핫라인 마이애미(예정 없음)

만약 이 게임이 영화화된다면 '드라이브'와 상당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mani-co / Devian Art]

두 작품의 유사성 탓인지, 영화 ‘드라이브’의 스틸컷과 핫라인 마이애미를 어레인지한 작품도 나왔다. 라이언 고슬링을 픽셀로 그려낸 이미지가 게임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 게임의 영화화 소식은 아직 들은 바가 없다. 이 게임에 영향을 준 ‘드라이브’의 감독과 게임 개발자는 SNS를 통해 협업에 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단다. 그 결과물이 심히 기대된다.

 

■ 미려한 디자인의 영화 포스터들

이번에 공감포스팅팀이 소개한 팬메이드 포스터 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 팬들은 팬심을 듬뿍 담은 자체 제작 포스터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출처를 알 수 없는 작품들 중에도 꼭 소개해드리고 싶을 만큼 빼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포스터들이 있으니 찾아보시길 추천한다.

이런 포스터들을 집대성해놓은 '금손 창고' 사이트들도 있다. [Alternative Movie Posters 웹사이트 캡쳐]

이런 ‘팬메이드’ 영화 포스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도 있으며,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도 종종 뛰어난 퀄리티의 팬메이드 포스터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있다면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한편, 최근에는 국내의 영화 포스터들도 집에 붙여두고 싶을 만큼 예쁘고 ‘때깔 나게’ 나오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갑자기 ‘열일’하는 거냐고? 아마 그건 아닐 거다.

크… 진짜 사랑스럽게 뽑힌 포스터다.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최근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일까? 디자이너들도 클라이언트들의 입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한때 천편일률적이라 평가됐던 그 영화 포스터들이 이제는 세계에서도 인정받으며, 한국판 포스터 디자인 콘셉트를 해외 디자이너들이 차용해가기까지 하고 있다.

영화 마일스의 해외판 포스터(좌)와 국내판 포스터(우). 저는 오른쪽에 한 표!

요즘 국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들이 뽑아내는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들이 지금에 와서 갑자기 ‘열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 동안 모종의 이유로 인해 디자인 감각을 억눌러 왔다는 것이 가슴 깊이 와 닿기까지 한다.

잔잔한 영화 속 이야기처럼 잔잔하면서 환상적인 포스터도 있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포스터]

아무튼 영화 팬 입장에선 보기 좋은 영화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니 분명 기뻐할 일이다. 이참에 영화 포스터 수집을 시작해 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떤가? 여러분의 방 곳곳에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붙여두는 건? 극장을 갈 때마다 그 조그만 팸플릿을 들고 와 보는 것도 쉬운 첫 걸음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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