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그리 준수한 외모인 건 아니다. 학업이나 직업에서 특출나게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성격이 좋냐고? 그것도 아니다. 말은 어눌하지, 뭣만 하면 일단은 사고가 터지는 사고뭉치에다가, 소심하고 소극적인 탓에 짝사랑은 늘 다른 누군가와 연애 중이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나 홀로 ‘벽치기’만 할 뿐. 주변에서 나를 부르는 별명은 ‘답답이’, 그리고 ‘찌질이’다.

위 소개 글을 보고 많은 독자들이 ‘못나기도 참 못났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조금 가혹하게 평가하는 분들은 “왜 그러고 사냐?”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겠다.

찌질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Loser'쯤 되는 이들이 각종 창작물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묘사한 인물은 인기 있는 한 창작물 속의 남자주인공이다. 도대체 어떤 창작물이 저런 화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냐고? 한 1분만 고민해보자. 아니, 1분도 길다. 30초만 생각해 보자. 아마 여러분이 그동안 살면서 본 창작물 속에 저런 주인공 한 둘 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분명히.

먼 과거에는 완벽에 가깝고 결점 없는 남자가 주로 주인공을 차지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부터 영화, 소설 등 주인공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물은 물론이다.

이 형들이 진짜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면 우리나라 평균 기준은 진짜 높은 거다. [MBC 무한도전 방송 장면]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소위 ‘찌질함’을 지닌 주인공들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애초에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을 표방했던 MBC 무한도전의 여섯 남자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무엇이든 척척 완벽하게 해내는 ‘알파 메일’들을 앞세운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찌질’은 싫증이 날 만큼 지루하다는 ‘지질하다’에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다. ‘지지리도 못났다’는 표현에서 나온 신조어라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어원도, 의미도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마 대부분이 다 알 것이다. 못나도 참 못난 찌질이들, 그런데 어떻게 그 못난이들이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된 걸까?

※ 일반적으로 ‘찌질하다’거나 ‘찌질이’라는 표현은 비하적으로 쓰나, 이번 포스트에서는 매력의 한 종류로 상정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했다.

 

■ ‘남자다움’을 강조하던 분위기의 희석

먼 과거에는 성 역할에 대해 명확히 구분짓길 좋아했나보다. 여자에게 순종적이길 바랐듯, 남자에게는 ‘울면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등 전통적 가치관을 강요해왔으니까.

남성성에 대한 구세대적 가치관을 비꼬는 일종의 미국식 '짤'.

따라서 각종 이야기 속의 남자 주인공들도 그런 기대치에 맞춰 그려졌다. 주로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원해주거나,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 사이의 문제도 해결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창작자들이 남자 주인공들을 그렇게 결점 없이 완벽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내다보니, 남녀를 불문하고 강하고, 적극적이고,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남자를 동경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고, 물리적‧신체적 능력보다는 지적 능력이 각광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성격에서부터 취향이나 성향 까지도 ‘이건 남자 꺼, 이건 여자 꺼’라 무의미한 구분을 해왔던 것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성을 떠나, 각자가 지닌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남자가 좀 허약해도 괜찮다. 다른 걸 잘 하면 문제될 거 하나 없다!

성역할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짐과 함께 ‘스스로의 나약함을 어느 정도까지 드러내는 것’도 더 이상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닌 시대가 됐다. 아직 완벽하게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변하려는 사회의 모습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자 창작물에서도 어느 정도의 결점이 있는 남자들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주인공보다는 오히려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도 지닌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 왜? 공감할 수 있으니까

매사 완벽하고 무엇이든 잘 하는 캐릭터는 보기 좋다. 또 닮고 싶고,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이입하기는 힘들다.

'우리 형' 호날두는 동경의 대상일 뿐, 공감가는 인물이라 보긴 힘들다.

우리 조금 솔직해져보자. 외모든, 성격이든, 아니면 학교성적이나 경제력이든 간에 모든 면에서 따져봤을 때 스스로를 상위 5%안에 꼽을 수 있겠나? 정말 모든 면에서? 어떤 분야에서건 스스로를 되짚어봤을 때 다소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만약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축하한다. 여러분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엄친아’, ‘완벽남’이다. 부럽다.)

고등학교를 예로 들어 보자. 학창시절, 소위 공부 잘 하는 그룹이라 부를 친구가 반에 몇 명이나 됐는가? 편차는 있겠지만, 그 ‘모범생’으로 분류할 학생은 대략 5~10%고, 나머지가 대다수였을 터다. 그런가하면 외모가 빼어난 학생들은 얼마나 됐는가? 마찬가지로 그들이 소수, 나머지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저걸 보면서 F4에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했다고? 거짓말좀 하지 마thㅔ요! [KBS 꽃보다 남자 드라마 스틸 이미지]

자, 그렇다면 특별히 성적이 ‘매우 우수’한 것도 아니고, 외모가 엄청나게 잘난 것도 아닌 대다수의 학생들 90%는 창작물 등에 나오는 어떤 주인공에 공감하게 될까?

완벽에 가까운 인물은 동경할 순 있지만 시청자(혹은 독자 등)가 감정을 이입하기 쉽진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소 어설픈 면모도 있고, 사고도 치고, 부족한 모습도 있는 주인공은 일부분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이 가야 흥하는 요즘, 우리는 완벽한 캐릭터보다는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매력적인 이들에게 열광하게 된다.

 

■ 매력적인 ‘찌질이’ 캐릭터들

앞서도 소개했듯 최근 대중매체를 비롯한 여러 창작물이나 방송 속에는 찌질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완벽한 주인공을 찾아보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주인공의 절대 다수가 크건 작건 ‘찌질함’을 갖고 있는 요즘이기에 몇 캐릭터를 꼽기는 힘들다. 따라서 기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세 캐릭터만을 소개해보겠다.

 

유병재, 그의 모습 속 너, 나, 우리

어째선지 '찌질'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예인은 유병재다(죄송). [tvN SNL 방송 장면]

각종 콩트 등에서 늘 ‘안습’한 상황에 휘말리는 역할을 도맡는 방송인 ‘유병재’는 우리 같은 평범한 남자들과 비슷하다는 점을 가장 대표적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는 큰 키나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루저’를 자처하는 듯한 연기를 보이면서 동세대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을의 설움’을 표현해내고 있다. 그를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순간은, 그의 ‘찌질함’이 폭발하는 장면들이다.

 

찌질한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

저 양반이 바로 거미남자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스파이더맨 영화 장면]

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 워낙 잘생겨서 애매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속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는 상당히 찌질하고 인기도 없는 궁상 캐릭터처럼 묘사된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기까지 시간도 한참 걸린다. 심지어 ‘웹슈터’를 직접 만들어내는 ‘어메이징’ 시리즈나 ‘홈커밍’ 속의 피터와 달리 샘 레이미의 삼부작 속 피터는 그런 지적 능력도 그리 부각되지 않는다.

 

대놓고 찌질이, 노진구

어린이 만화 주인공 중 아마 이렇게 인기 없는 캐릭터가 있을까? [도라에몽 만화 장면]

많은 이들이 ‘발암’이라 할 만큼 대표적인 찌질이 캐릭터인 ‘노진구’는 어린이 만화 ‘도라에몽’의 주인공이다. 가장 대표적이면서 그를 상징하는 대사는 “도라에몽~ 어떻게 좀 해줘~”다. 주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거나 대책 없는 실수를 저질러버렸을 때 도라에몽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또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비열한 모습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팬도 있지만 안티 팬도 상당히 많다.

이런 얼굴로 '찌질이' 피터 파커를 연기한다면, 우리는 도대체....[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영화 장면]

물론 이 캐릭터들에게 찌질함 외 다른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찌질함 속에도 두드러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 찌질이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방송인 유병재나 스파이더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매력남’들이고, 심지어 안티 팬카페까지 있었다는 노진구도 매력은 있다. 심성이 착하고 상냥하며, 기본적으로는 남을 배려하는 아이라는 점이다.

 

■ 너도 나도 찌질하니까 괜찮아

찌질한 남자캐릭터가 뜨는 것과 반대로, 거의 완전무결에 가까운 여자캐릭터가 주목받고 있다. [원더우먼 영화 장면]

이처럼 매력적인 찌질남 캐릭터가 ‘흥’하다 보니, 곳곳에서 그간 강요받아왔던 ‘남자답게’라는 굴레를 내려놓는 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반면에 찌질남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완벽녀’에 가까운 여성캐릭터를 함께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쨌거나, 남자도 여자도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찌질함은 가지고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난 전혀 찌질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 완벽남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런 흑역사 한둘 쯤은 있어도 천벌받을 죄인인 건 아니다. [네이버 웹툰 찌질의 역사 장면]

우리는 살면서 자잘하고도 ‘지질한’ 실수를 한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를 만한 흑역사도 참 많이 만들어낸다. 실수가 아니라 본성 자체에도 찌질한 구석이 있어서, 그것을 감추느라 애먹는 경우도 많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한때 ‘슈퍼 초’ 찌질이였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다방면으로 찌질한 모습을 들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가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기자의 찌질함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혹 누군가 그렇게 말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어떤 사람이건, 어떤 실수를 저질렀건간에 여러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세상에 전혀 매력 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스스로를 비하해도, 그런 사람들도 자신만 몰라보는 숨겨진 매력포인트가 존재한다. 그래서 괜찮다. 좀 찌질해도. 그게 대수인가? 우린 누군가 정해준 틀에 맞추려고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해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우린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찌질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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