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아버지'

나의 작고 차가운 손이 
당신에게 닿으면 
당신의 마음을 다 덮고도 남을 
그런 손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세찬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은 
외길 인생의 고집스러운 마음도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내겐 어울리지 않은 사치처럼 
한낱 보잘것없이 허물어진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정작 그리워하는 마음이 뼛속 깊이 사무쳐 
하루하루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고 
당신의 가식 없는 내리사랑 앞에 
이기적이고 경솔했던 내 사랑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드러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나의 엷은 웃음과 
조금 덜 익은 듯한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한평생의 기쁨을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뻐하던 당신
살아가는 내내 받기만 했던 당신의 내리사랑이 
내 삶의 생명수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공감신문] 오래전 방송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시골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에게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이 전보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래, 굶어 죽어라.' 화가 난 아들은 연락을 두절한 채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아들은 아버지의 전보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고향집을 찾았으나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유서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아들아, 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  

출처=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컷

위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모는 무조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무조건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속이 깊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애틋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놓고 걱정하거나 슬퍼하지도 않는다.

자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없이 '품어주는'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라 한다면 적당한 나이가 되면 스스로를 독립할 수 있도록 치열한 세상 속으로 '던지는'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내 경우를 보아도 어머니는 늘 주의 깊은 행동을 강조하셨다. '차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그러나 아버지는 늘 도전하는 삶을 원하셨다. '자, 한 번 해봐라. 실패하더라도 네 가 결정한 것에는 후회하지 마라."   

나에게 아버지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늘 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세상과 멀어진다"며 돈 걱정하지 않을 만큼 용돈을 넉넉하게 주셨고, 여자이기 때문에 예쁘게 살아야 된다며 비싼 옷도 자주 사 주셨다. 평범한 월급쟁이 공무원의 딸이었지만 분에 넘칠 만큼 많은 것을 누리며 자랐다. 그때만 해도 세상 모든 아버지는 딸을 위해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언젠가 만취한 아버지가 객지 생활을 시작하는 내 손을 꼭 잡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라" 어릴 적 기억의 내 아버지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묵묵히 참아내다보니 늘 상처를 안고 사셨다. 때로는 스스로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며 가족을 위해 버티셨고 감당하기 버거운 날이 오면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해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분이셨다.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열다섯 살에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로 형과 동생을 돌봐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애틋하게 애정 표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그렇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늘 숨 어울 곳을 찾아 아무도 몰래 울었던 것이다. 내 아버지처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부자 아버지, 잘난 아버지는 못되어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30대 평범한 아버지의 인터뷰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아침, 저녁을 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오순도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것이 가장 평범하면서도 최고의 행복인데 그 평범한 일상을 갖는 것이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녁이 기다려지는 삶, 가족과 오손도손 보글보글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먹으며 아버지의 미소를 어머니의 토닥임을 마주하는 그런 따뜻한 날을 누구나 꿈꿀 것이다.   

자식의 미래는 부모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이고 어머니는 딸의 미래를 보는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 때문에 내가 세상을 알아가게 되고 늦었지만 철든 어른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가장 무거운 숙제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멈추게 되니까. 매일같이 들렸던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늘 보였던 모든 것들이 삭제 버튼 누른 듯 한꺼번에 사라졌다. 

마음속 깊은 곳의 아림 그리고 진하게 번지는 눈물 다시 볼 수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격은 크다. 아쉬움, 미련, 후회가 모두 내게로 밀물 되어 오는 것처럼.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이렇게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는 여전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그리고 응원할 거라고. 하여, 반듯하게 나의 길을 묵묵히 갈 거라고. 나에게 다짐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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