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딸 가진 죄인’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제는 정말 옛말이 되어버린 말. 꽤 오랜 세월 우리는 남존여비 사상 아래에 살았었다.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했고, 딸 가진 부모들은 늘 약자였고, 첫 아이로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나면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까지 표현했었다. 아주 옛날에는 마치 아들을 낳기 위해 번호표를 뽑듯 딸을 낳았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성함이 장 섭 자 섭 자셨다. 순번으로 ‘3번’이었던 그녀가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다고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거랬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마도 지금의 2-30대가 태어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 부모들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아이고 ‘손주’가 태어났구나! 기쁘셨을 것이다. 그 손주가 장가가기 얼마나 힘든 세상이 올 지 까맣게 모르셨겠지!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아들 가진 부모들이 죄인까진 아니더라도 조금 초조해지는 게 맞긴 한 것 같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

여성의 인권 신장은 물론이요 남녀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된 이 시점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결혼 생활과 사회생활을 겸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되어져 왔다. 그래서 여자들은 굳이 꼭 결혼을 해야 되나?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하며 남편의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빨래를 개키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꿈은, 정말 어린 시절의 기억인 냥 희미해지는 것 같다. 화목하고 아늑한 집안 일은 고되고 반복되는 일일 뿐, 밖에 나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싶어진 거다. 직장에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다지만, 아직까지 분명 예전과 같은 곳들이 더욱 많으며 육아나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 더욱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되니 피해보는 것은 남자들 쪽이다. 남자들은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일하길 원하니까, 아니 그런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 부모들 즉 기성세대들이다. 남자는 결혼을 해야 철이 든다고들 하지 않나. 대부분의 아들을 가진 기성세대들은 아들의 대학 입학/졸업, 군대,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해야 이제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구나, 하시더라.

우연히 TV에서 <며느리 모시기>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보다보니 흥미로워서 다시보기로 몇 편을 보았다. 프로그램 포맷은 이러하다. 시어머니 5명과 며느리 3명이 예전 <짝>처럼 단체미팅을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은 연예인 누굴 닮았고, 장점은 무엇이고, 자신은 이렇게 저렇게 좋은 시어머니다, 라고 어필한다.

며느리들 역시 자기는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성격의 며느리라 말한다. 그리고 나면 첫인상 어필에서 시어머니가 집에서 가지고 온 재료로 음식을 준비해서 마음에 드는 며느리에게 밥을 차려서 점심상을 내어가신다. 1박 2일로 진행이 되는데, 중간에 (예비)며느리들끼리 상의를 해서 한 분의 시어머니는 도중 탈락이 되어 댁으로 돌아가시게 된다. 둘째 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때쯤, 아들 사진이 공개되고 이후에 최종선택을 하게 된다.

예전에 난 <백지연의 끝장토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2030의 결혼관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 당시에 난 더욱 어렸었기 때문에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 본적도 없었을 뿐더러 결혼을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단지 좋은 사람이 생기면 고민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요즘 주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그다지 관대한 인상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 올 줄은 몰랐다. 정말 풍토가 많이 바뀐 것이다. 며느리를, 모셔간다니. 시어머니들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아마 아들들이 나와서 그 며느리들과 데이트 프로그램을 찍었더라면 그 정도로 투쟁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어머니’들이 아니신가! 아들을 위해서 그 어떤 체면도, 자존심도 내려놓으신다. 점심상을 차리고, 커피를 타고, 마사지를 해주고, 아침상을 준비하고, 담근 술을 가져오시고, 노래도 하신다. 그러면서 한마디씩들 하시지. 며느리 모시기 힘드네. 옛날엔 며느리들이 모시기 바빴는데.

어머니들 생각에도 이런 정말 불합리한 거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요즘 아가씨들이 결혼을 안 하겠다는데? 그러니 어머니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손주 낳으면 제가 다 키워줄 거예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新시어머니 십계명. <며느리 모시기> 중에서

이 프로그램에서 (예비)며느리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질문을 한다. 시댁과 아들 신혼 집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이런 질문에도 같은 지역 같은 동네, 같은 지역 다른 동네, 차로 2시간 거리 등 굉장히 구체적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연락 빈도수, 또 만일 며느리가 재산 명의를 바꿔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까지 묻는다. 어떤 시어머니들은 중도 탈락되어 집에 돌아가게 될까봐 며느리들의 눈치껏 입맛에 맞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선 말도 안된다고 하신다.

내가 놀랐던 것은 몇몇 며느리들의 말하는 태도였다. 그 중에는 내가 아들 가진 시어머니라면 저 며느리 진짜 괜찮다, 싶은 분들도 정말 많이 보였다. 하지만 몇몇은 첫 만남에서 자신을 어필하며, ‘어떠어떠한 어머님은 저를 모시러 와주세요!’라고 말하더라. 그래, 프로그램 이름대로라면 모시러 가는 게 맞지만 난 그래도 어른들인데 저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아주 단순한 건데, 어머니들이 점심상을 준비할 때에도 ‘왜 안 오지?’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왜 안 오시지?’라고 해야 되는 게 아닌 가. 난 그런 작은 것들이 꽤나 거슬리더라. 언어는 평소 생각과 습관들을 보여주지 않나.

아마도 내가 시어머니였다면 말을 예쁘게 할 줄 알고, 배려심 많으며,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을 것 같은 며느리를 골랐을 것 같다.

내가 저기에 나간다면?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난 시어머니보다는 며느리가 될 확률이 더 크므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저기에 못 나갈 것 같다. 물론 시댁을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연애가 아니라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연을 맺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함께할 남자의 뿌리를 아는 것,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친가가 될 테니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선 그 집안보다 남자를 먼저 알고 싶은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로 나는 저기에 가서 어른들의 대접을 받고 앉아있을 자신이 없다.

20대 후반이 되니 주변에서 슬슬 남자친구는 있냐, 결혼 생각은 있냐는 얘기가 나온다. 난 나의 만족스러운 삶을 위하여 요리를 해먹는 건데, 자꾸만 ‘시집 가야겠네’라고 한다. 태어날 아이를 위하여 일찍 시집을 가야 한단다. 글쎄,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나의 젊은 날을 결혼할 남자 찾는데 쏟고 싶진 않은데. 난 일을 더 하고 싶다.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뭐, 인연이 나타나면 하게 되겠지?

우리 아빠도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자유롭고 싶다면 안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사진작가인 아버지는 내가 나의 일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 박수를 쳐주시고 더 많은 세상을 보길 원하신다. 여자 지해수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작가 지해수로서 더 넓은 역량을 끼치는 것을 응원해주신다. 내가 만일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이었더라도 아빠가 지금처럼 말했을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남자에게 꼭 여자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빠 세대의 여성들은 가사에 갇히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난 결혼 생활에도 살짝은 어울리는 사람 같기도 하다. 재택 근무가 가능하며, 평생 일할 수 있고, 집안일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런 조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을 테지. 나는 밥을 느리게 먹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이것은 결혼을 떠나 연애를 할 때에도 내가 원하는 조건 중 하나다. 봐, 이렇게 다들 원하는 게 다른데 집안끼리 서로 성격을 다 어떻게 맞춘담?

그 프로그램에서 어떤 시어머니가 최종선택 때 며느리에게 주려고 직접 염색한 옷을 갖고 나오셨더라. 그 분은 이렇게 색이 천에 베어들 듯, 우리 집안에 서서히 물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정답이다. 그렇게 서서히 베어 들어가야 맞는 거겠지. 처음부터 죽이 잘 맞는 친구도 좋지만 오래오래 보며 서로의 모습이 스며드는 친구가 제일이듯 말이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결혼을 떠나, 나이가 먹으니 남자나 여자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해지게 되더라. 그게 그 사람의 인성과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보아왔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분위기일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정말 사랑을 잘 줄줄 아는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선입견일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 그러니 나 역시 밖에 나가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아빠의 모습을 비추는 아주 작은 거울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세상에 더욱 좋은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들 하더라. 아직 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 뭐 어때? 천천히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 나도 결혼하고 싶어질까? 거기까진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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