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도전했는데 실패했는가!
그렇다면 방황도 하고 일탈도 해라.
한순간 나를 패배자로 만들더라도 웃어라.
힘든 순간은 지나가게 되어 있다.
방황도 일탈도 생의 과정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권리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꿈을 포기하거나 생의 끈을 놓지 마라.
실패를 교훈 삼아 기회를 잡아라.
기회도 생의 과정이고 반드시 누려야 할 최고의 권리이다.
당당히 거머쥔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이다.


[공감신문] 내게 가치 있는 것은 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듯 '툭'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새싹 돋듯 '불쑥' 솟는 것도 아니다. 문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방향을 제대로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보살피며 소유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음악가 베토벤을 보라. 그는 한평생을 가난과 실연, 병에 시달리며 살았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테너 가수였지만 4살 때부터 음악공부를 강요하며 어린 베토벤을 밥벌이의 도구로 삼았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 베토벤은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지냈다. 그러다가 17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28세에 청각을 잃는 비참한 운명을 맞는다. 서른 초반에 죽을 결심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악착같이 생을 붙잡는다.

그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작곡에 몰두한다. 그 결과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교향곡 제 3번 '영웅' ,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운명'을 탄생시킨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교향곡 제 9번 '합창'을 빈에서 지휘했을 때 관중들은 일어나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원 중 한 사람이 베토벤의 몸을 돌려 관중석을 향하게 하였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베토벤은 암흑 같은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냈기에 가치 있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괴테가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 고 했듯이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고난과 장애물이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면서 장애물을 스스로 걷어내며 가야 한다. 

대나무를 보라! 높이 오르기 위해, 가벼워지기 위해 속을 비우지 않는가! 사과나무를 보라! 생육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하얗게 꽃향기를 피우며 주렁주렁 사과를 가득 안아도 겨울이 오면 다 내어주고 혹독한 추위를 견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따뜻함도 누리고 혹독한 추위도 견뎌야 한다. 그것이 생의 섭리이고 합의다. 혹독한 고통은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정성을 다하라. 간절히 원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한 번에 영광을 안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정말 열심히 했고 일하면서도 즐거웠다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마음은 뿌듯하다. 다음에 도전할 때는 더 신중하고 더 몰입하여 더 나은 결과를 안게 된다. 원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정성을 다할 때 '가치 있는 것'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어릴 적에 난 책 읽기를 좋아했다. 부모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면서 사고 싶은 책을 맘대로 사지 못했다. 주말이면 자주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았다. 책꽂이 모퉁이에 기대앉아 반나절을 읽다가 또 메모해 두고는 주말이면 다시 가서 일다만 그 책을 끝까지 읽곤 했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책이 읽고 싶어 교수 연구실 조교로 들어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읽었다.

한 번은 두툼한 셰익스피어 전집이 갖고 싶어 서점에서 수십 번을 만지작 거리다가 포기하고 결국은 교수님 책을 빌려 여름방학 내내 읽은 적도 있다. 작가로 살고 있는 지금도 갖고 싶거나 읽고 싶은 책은 중고서점을 뒤적여서라도 찾아내어 구입한다.

작가로 살고 있는 내게 가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거다. 나이가 들고 보니 문학책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종교, 철학, 예술분야에까지 손이 간다. 이유는 내게 가치 있는 일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사명이고 현재 내가 간절히 원하는 생의 가치이다.

나에게 온 책은 나를 만나는 순간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며 내 호흡기, 내 시야를 기쁘게 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방바닥에 너부러져있는 학창 시절 지도 교수님이 선물한 책, 연구실 교수님이 빌려준 책,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책, 지인이 준 책, 제자가 선물한 책 등이 눈앞에 있다. 

책을 펼치면 여백마다 교수님의 강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깨알같이 써놓은 스무 살의 내 필체와 교수님 얼굴이 오버랩된다.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반듯이 누워있는 책 모두가 행복했던 그때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비록 서툴고 가난했지만 행복의 무게를 저울로는 달 수 없을 만큼 만족을 느꼈던 꿈 많은 학창 시절이 강물에 떠오른 붉은 꽃잎이 되어 나를 아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그 책들이 현재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갖고 싶은 것을 사게 한다. 때문에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그 책들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보물이다.

언젠가 홍대입구 프리마켓에서 단 돈 천 원을 주고 구입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쉬지 않고 읽는 책이다. 아픈 청춘시절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을 뚝뚝 흘렸던 흔적이 책 곳곳에 번짐으로 남아 있다. 아프고 방황했던 이십 대에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준 것도 사람이라기보다는 책이었다.

스스로를 감동시킬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본 사람은 안다. 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진다는 것을.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추상명사처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안다. 정말로 최선을 다 했는지는...... 그러면 눈물이 난다. 저절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고민하다가 방황하고 흔들리고 일탈하는 것이 반드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찾아가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행복한 모험이 된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 즉 힘은 책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책을 펼친다.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책을 통해 꿋꿋이 견뎌낸 그 시절을 추억하며 현재를 견디기 위해서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는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책 속에 책을 쓴 작가의 값진 고통이 녹아있기에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그래서 책은 그들의 삶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나에게는 새로운 나의 여정이 기록될 나의 생이고 나의 역사박물관이 된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런 말을 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누구도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대신 안겨줄 수는 없다. 그리고 '일상'과 '일탈'은 타원형으로 이어져 돌고 돈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일상'과 '일탈'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을 얻는 시작이고 끝이다.

'일상'과 '일탈'은 쌍둥이다.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하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나의 행동이 끝나야 움직인다. 휴식이 달콤한 것은 그것이 '일상'이 아닌 '일탈'이기 때문이다. 휴식이 '일상'이 된다면 더 이상 달콤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바쁜 '일상'을 그리워하게 될 거다.

그러니 앞으로의 짜릿한 '일탈'을 만들기 위해 오늘의 바쁜 일상을 즐겨라.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는 가장 올바른 길이다. 가치 있는 것을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끝까지 가야 한다. 이 순간 가장 바쁜 사람이 오래지 않아 가치 있는 것을 많이 얻게 되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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