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

소크라테스

 

[공감신문] 16일, 영화 <김광석>의 시사회가 있었다. 이전에 영화 <다이빙 벨>을 제작했던 이상호 기자의 새 영화다. 비운의 싱어송 라이터 김광석과 이상호라... 도대체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감히 추측하건대 이상호는 꾸준히 김광석 곁에 머물던 사람 중 하나였다, 96년 1월 6일 이후부터. 그날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故김광석 1964년 1월 22일 - 1996년 1월 6일

이상호 기자는 자살이라 알려진 그의 죽음에,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제기하며 타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약 20년간 취재를 하였다고 했다. 그렇다, 공소시효는 지났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그를 진하게 추억하며, 또 궁금해 한다. 꼭 그렇게 가야만 했나? 아니면 정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간 게 맞나.

이 영화 시사회에 초대 연락을 받은 건 몇 주 전이었다. 스케줄러에 일정을 표시해놓고는 같이 가려는 동생에게 재차 물었다, 어떤 영화일까?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제대로 듣게 된 것은 20대 초반이 지나서였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이다. 우울하거나 슬픈 날엔 듣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한없이 씁쓸해지는 날이면, 가벼운 멜로디의 이 노래를 찾아 듣게 된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

외로움이 친구가 된 지금도 아름다운 노랜 남아 있잖아 /

그 노래로도 그리움이 씻겨지지 않으면 /

받을 사람 없는 편지로도 지워지지 않으면 /

나는 벌거벗은 여인의 사진을 보며 /

그대와 나누지 못했던 사랑 /

혹은 눈물 없이 돌아서던 그대 모습을 /

아주 쉽게 잊을 수 있어 /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가사 중. 작사/작곡 : 김창기 / 노래 : 김광석)

누군가는 어느 한 장면에 슬픔을 느낀다면, 그는 장면을 구성하는 프레임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나 부다. 그는 그런 마음들을 꾸욱 꾸욱 눌러 담아 가볍디가볍지않은 기타 선율에 실어 노래했다.

수년간 많은 곳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공간과 빈 술잔을 채우며 애틋한 기분을 만끽했었다. 애틋하다는 것은 겨우 지난 사랑에 대한 감흥이 아니다. 그건 삶에 대한 애틋함이다. 김광석의 노래들은 지난 삶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슬프고 잔혹하고 비참한 날에도, 그래, 그래도 노래는 남아 있잖아, 라며 노래하는 이가 김광석이다. 그런데 지금, 난 그런 나의 애틋한 감정들이 죄송스러워 지려고 한다. 그런 노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그의 재능들이, 아티스트가 아닌 인간 김광석에겐 너무도 가혹해서 랄까.

故김광석의 죽음에 대하여 약 20년간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 되어왔다. 큰 인기를 누리던 천재 싱어송 라이터의 갑작스러운 자살. 당시 그를 최초 발견한 누구의 말처럼 술에 취해 장난치다가,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았지만 경찰은 자살이라 결론 내린다.

아마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달랐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96년 1월 6일 그를 잃은 이후,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별로 알게 된 것이 없다. 단지 그의 노래를 읊조리고 흔적들을 되짚어보며, 누군가 그를 잘 알 것 같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약 20년 동안, 서른 세 살의 멈춰진 김광석과 그 주변의 삶을 뒤돌아 본 이상호 기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96년 1월 6일 그 자리에 있었던 그와 그의 부인만이 알 것이다. 단지 난 듣고 판단을 할 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부인 말은 납득이 가지 않기에, 나에게 진실이라 보이는 것을 토대로 믿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 김광석의 삶이 가혹하다 느껴졌던 것이다. 아, 왜 그렇게 반짝반짝 빛이 났던 겁니까.... 빛에 눈이 먼 누군가는 또 그런 빛을 찾더이다.

영화는 그의 타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친구, 부모님, 동료들의 인터뷰나 이전 영상들을 통하여 우리가 몰랐던 그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리숙하고 의젓한 듯 입도 많이 벌리지 않고 노래하지만, 그 안에 끓고 있는 심정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건, 매순간 진심으로 노래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겨우 서른셋에 생을 마감했던 김광석과 비슷한(?) 또래인 스물아홉의 내가 추측하건데, 그는 정말 뜨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뜨겁게 사랑할 줄 알고, 뜨겁게 사랑에 고통 받았으며, 뜨겁게 감사할 줄 알았고, 뜨겁게 아파했으며, 뜨겁게 죄책감을 느꼈고, 뜨겁게 미워할 줄 알았으며, 뜨겁게 용서해줄 줄 알았고, 뜨겁게, 정말 뜨겁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던 것 같다.

아, 차라리 김광석이 게을렀다면...! 정말 천천히, 반짝반짝 빛나지 말고, 그 빛을 조금만 숨기고 주변에서 차근차근 기대하게, 슬금슬금 보여주지. 음악 작업하지 말고 게임도 하고 다른 취미도 즐기며 게으르게 음악 했더라면!

이 영화를 보고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다가 30초도 안되어서 도로 집어넣었다. 그래 그건 아니지, 아티스트에게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계획적인 삶을 이야기한담?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예술은 ‘here and now’인 것을. 나라를 잃은 민족이 뛰쳐나가 독립 만세를 부르듯, 김광석은 그 자리, 거기에서 그 노래를 꼭 부르고 싶었던 거다. 지나간 시간들, 어느 동네 가로수 나무 한 그루마저도 열렬히 기억하던 사람이다. 그렇게 삶을 뜨겁게 여기는 그에게, 매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아쉽고 아까웠을까? 그는 그 자리에서 노래해야만 했던 거다.

누군가 사랑은, 상대방에게서 상처받을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음악보다 자기의 삶이 중요하다던 그에게 아마도 사랑은, 그 삶을 쥐락펴락하는 것이었나 보다. 마치 나약한 짐승처럼, 그렇게 김광석은 사랑 앞에서 자신의 흰 목덜미를 내놓았다. 상처를 준들 어쩔 수 없다고, 그게 사랑의 이름이라면.

아, 에라이 개뿔 사랑!

난 그의 엄청난 팬은 아니었다. 단지 주기적으로 그의 노래를 찾아들었을 뿐. 때론 누군가와 그의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아 친해지기도 했었다. 어느 동네나 술집에서 그의 노래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지 않나.

“김광석 좋아하세요? 저도요.”

그의 이름 세 글자로 대화의 물고를 트곤 했었는데. 이젠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린 당신의 이야기를, 왜 나 좋고 나 편한 대로 나 궁금한 것만 들었었나.

그렇게 오랫동안 이기적인 팬 아닌 팬이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누군가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더라. 왜 그랬던 걸까? 거기서 누가 말하더라. 김광석이 생전 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자기가 대신 부르는 거라고. 그는 감히 그렇게 말했다. 나도 감히, 그렇게 느꼈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김광석은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며 곡을 쓰거나 기타를 갖고 나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상영 전에 앞서 이상호 기자는 관객에게 인사하며 몇 마디 이야기를 꺼냈었다. 김광석이 유명해서 그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곳곳에서 알 수 없는 죽음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기에 같이 생각해 봤으면 했다고. 본인은 또 다른 소송을 준비해야하지만 관객 분들은 음악도 들으시고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고.

나는 알지 못하는 죽음을 맞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보다- 좀 더 알고, 좀 더 좋아한 김광석을 통하여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바이다. 알지 못하는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수많은 분들의 마음을, 영화<김광석>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개봉 전인 영화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개봉 후에 수많은 분들이 느끼게 되실 거다, 아니 꼭 그랬으면 한다. 적어도 나처럼 ‘김광석 노래 좋아하세요?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노래 뭐예요?’라며 누군가와 함께 그의 노랠 불러보았다면!

옛 어른들 말씀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라. 난 앞으로 어느 술집에서 그의 영상들을 찾아 신청하며 그의 표정들을 읽을 것이다. 저 때는 그랬겠구나, 또 그런 감정이었겠구나. 그래서 저런 표정이었구나.

그런 것도 차마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그날들이 너무도 죄송스러웠던 날이었다. 감히 그의 노래를 겨우 내일이나 들어야지 했는데, 비가 오니 어김없이 듣게 되고 이전보다 더욱 치민다.

앞으로 비가 오면 김광석의 노래들을 더욱 많이 찾아 들을 것이다. 또 이렇게, 그의 목소리에 기대어 텅 빈 가슴을 채우는 여느 날 중 하나다.

(추신 : 이 영화를 보시려는 분들은 꼭, 크레딧 마지막까지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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