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그땐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경중에 상관없이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항상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니.
시간을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사건 대부분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들이다. 물론 좋은 일이나 추억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고 지나간 걸 되돌릴 수 없는 게 바로 ‘시간’이다. 아무리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두고 ‘엎질러진 물’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모든 영화가 그런 건 아니지만 흔히 영화를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중 하나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소재로 ‘시간 이동’이 종종 등장한다. 과거나 미래를 바꾸고 싶다는 우리의 본능을 잘 표현한 것들이다.
시간 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영화마다 다르지만, 주 내용은 불행했거나 혹은 그렇게 될 예정인 사건들을 주인공이 바꿔나가는 유형이 많다.
이번 공감신문 교양공감 콘텐츠는 과거의 일을 바꾸고 싶은 이들을 위해 ‘시간이동’을 주제로 한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 해당 콘텐츠에는 일부 영화 줄거리나 결말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성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프리퀀시, 하루, 시월애, 너의 이름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누군가를 ‘죽음’에서 구하고 싶어”
우리는 정해진 시간의 길을 따라 살아간다. 그 종착역이 결국은 ‘죽음’이란 걸 알지만 유한한 그 길 속에서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면서, 그 누가 자신이나 상대방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갈까. 결코, 그런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항상 예고치 않게 찾아오고 우리를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의 굴레에 빠트린다.
굴레 안에서 우리는 떠나버린 이를 ‘그리움’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한번쯤은 “그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면”과 같은 생각을 품는다.
이같은 생각을 영화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바로 2000년 개봉한 프리퀀시(Frequency)와 최근 개봉한 ‘하루’가 대표적이겠다.
두 영화는 모두 시공을 초월한 방법을 통해 가족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리퀀시는 30년 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하루는 본인의 딸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결말만 두고 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막는다는 별 볼 일 없는 내용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처절하게 누군가를 구해내고 싶다는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몰입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되는 그런 영화들이다.
■ “만나지 않았으면 분명 후회했을 거야”
후회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될 수도 있고, 불행했던 과거가 될 수도 있으며, 좀 더 잘하지 못했던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현실과 가상에서 여러 사람과 인연은 맺고 사는 시대지만, 정말 본인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꼽을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기에.
시간을 넘어서라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잘 표현한 영화로는 ‘시월애’와 ‘너의 이름은’을 추천한다.
사실 두 영화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주는 감동이 주는 것도 아니거니, 두 영화가 개봉한 시기적 터울이 길기 때문에 함께 추천하고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이다. 물론 그들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알게 된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남녀는 우연한 매개체로 인해 점점 서로 가까워진다. ‘시월애’에서는 ‘편지’로 ‘너의 이름은’에서는 스마트폰이 매개체 역할을 한다.
매개체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중 불행한 사고가 일어남을 한 명이 눈치채고, 이를 시공을 초월해 막는다. 그리고서 그들은 비로소 재회한다는 내용의 영화들이다.
만약 그들이 서로를 구하지 않고 만남을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미래에 분명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 “‘목적’을 이룰 때까지 반복할 수 있다면”
자의든 타의든 무언가 목표가 생기면 그에 따른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결과에 만족한다면 다행이지만,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때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재도전 하고 싶지 않을까. 마치 게임 속에서 ‘세이브-로드’ 신공을 펼치듯 말이다.
그런 고민을 시간 이동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가 있다. 바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다. 반강제적인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목적에 다가서는 주인공 이야기다.
주인공 ‘빌 케이지’ 장교 계급에 속하는 소령이지만, 전장으로 나가라는 명령에 불복종해 이등병으로 전락한다. 병사로 전락한 그는 첫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죽으면 전투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갇히고 만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체득한 그는 같은 상황을 겪었던 여주인공 ‘리타 브라타’와 함께 인류를 구한다는 목적을 완수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인류를 구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는 점과 외계인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흥미 위주 영화니 가벼운 마음으로 보길 추천한다.
■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시간은 평등하다. 시간은 그 누구도 살 수 없고, 종착역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동등하다..
이런 점을 영화 속에 잘 녹여낸 작품이 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다. 직접적으로 ‘시간 이동’을 하는 소재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나이를 거꾸로 먹는 일종의 ‘시간 역행’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겠다.
이 영화는 ‘벤자민 버튼’이란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장장 3시간이라는 상영시간에 담아냈다. 긴 상영시간으로 인해 자칫 지루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바로 특이한 소재 때문이다.
주인공의 ‘거꾸로’ 나이를 먹는 인생이 바로 소재다. 벤자민은 늙은 채 태어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성장함에 따라 젊어진다. 아이러니하게 이 점 때문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의 삶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간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기는 바로 사랑하던 연인과 같은 겉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년이다. 그 후로는 부인은 늙어가고 자신은 젊어감에 따라 고뇌에 빠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그가 갓난아이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고, 한정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 후회는 자연스러운 것,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항상 올바른 선택만 고르는 사람도 없다. 고로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 본능이며, 선택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하다는 세상의 순리여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후회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시간 이동’에 관한 영화들이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시간 이동에 관련된 영화들이 등장할 것이고, 우리는 그 영화들을 보며 “나도 과거나 미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 분명하다.
지금 기자가 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여러분이 이번 포스트를 구독하고 있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번 포스트를 준비한 시간이,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위해 여러분이 투자한 시간이 결코 후회되는 행동이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