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매년 이때쯤 8월의 끝자락이 오면 더위도 한풀 꺾이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창덕궁 8월 마지막 주 입궐 해설을 위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고 영속적으로 통치하고자 시도했던 각종 술수와 음모의 현장, 궁궐을 무차별적으로 훼손하였던 야만스러운 행동들로 가득 찬 현장들이 곳곳에 보인다.

해방이후 그려진 창덕궁역 평면도 / 사진=국가기록원 자료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탄한 후 식민지배 통치를 하고자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였다. 궁궐에는 왕실을 철저히 감시하고 탄압할 목적으로 아래 평면도와 같이 지금의 금호문 궁장을 헐고 문밖 주차장에 창덕궁 경찰서를, 금천교 북쪽 내각입구 쪽과 승화루(소주합루)에는 경찰지서를 설치 및 운영하였다.

승화루(소주합루)-궁궐내의 동궁 전용도서관

일제강점기하에서 수난을 많이 겪은 곳 중 하나가 인정전이다. 1907년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 당하고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후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게 된다. 1908년 인정전은 일본인 건축가들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개축된다. 현대화도 좋지만 한옥 본래의 전통적인 정전 내부모습과 인정전의 당가가 사라지고 서양식 가구와 실내장식, 전기시설이 설치되어있다.

인정전 내부봉황도 용상을 들어내고 고급의자가 놓여 있다. / 사진=2006 창덕궁 사진첩 사진

인정전 사진 속의 월대는 남아 있지만 조정(朝庭)에는 품계석과 박석은 훼손되어 아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황제가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정전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한옥은 앞마당에 굵은 모래나 박석을 깔고 건물 뒤편에는 정원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햇빛을 받은 조정의 박석은 정전 깊숙이 빛과 열을 들여보내 건물내부가 습기로 인하여 쉽게 썩지 않게 하고 건물 앞뒤의 공기밀도 차로 인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제는 정전 앞마당에 흙을 돋우어 모란을 심어버렸다. 일제가 이처럼 의도적으로 훼손한 조정을 현재는 사라져버린 박석을 다시 찾아 원상 복구하여 인정전의 장엄함을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인정전 조정에 심어진 모란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자료

꽃 색이 붉기 때문에 모란이라고 하는 목단은 중국에서는 ”꽃의 왕, 꽃의 신, 부귀화”라고도 부른다. 신라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중국 당나라 왕이 보낸 모란 그림을 보고 그림에 벌과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아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하니 그 지혜로움에 놀라울 뿐이다.

근대사의 한줄기 흐름 속에서 경술(1910)년 대한제국은 국권 강탈을 당해야 했던 아주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인 ‘경술국치’의 장소를 만나게 되는데 창덕궁 대조전 옆의 익각인 흥복헌이다. 興福(흥복)이란 복을 일으킨다는 뜻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매국노 이완용 총리대신 주도하의 마지막 한 시간 짧은 어전회의로 제국의 운명을 결정한 곳으로 주권을 강탈당한 통한의 장소가 되어버린 곳이 바로 흥복헌이다.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의 영토와 주권을 강제적으로 빼앗는 야만적 행위는 결코 동등한 힘을 가진 두 국가 사이의 ’합방‘이 아니다. 때문에 ’한일합방’이 아니고 강압에 의한 야만적 행위인 ‘한일병탄’이나 ‘국치‘라는 용어 사용이 올바르다.

1917년 대조전과 희정당 일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화재를 입게 된다. 이곳은 순종이 기거하고 있는 대조전이기에 일제가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고의적인 방화를 하지 않았을까? 라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하 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 내에 복구를 해야 했던 탓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 강령전과 부속 건물들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지었다.

현재의 선원전은 일제가 대보단 터에 신선원전을 지어 어진을 옮겨버리는 바람에 내부는 비어있다. 아름다운 후원은 임금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금원이었으나 1912년 일제가 누구나 구경할 수 있도록 일반에게 공개해 버려 훼손이 가속화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지금의 서궐내각사 규장각 일원은 기존의 건물을 헐고 보각과 봉모당 운한문을 지었다. 이외에도 일제의 궁궐 훼손의 만행을 일일이 열거하기 쉽지 않다.

국가의 힘이 없으면 외세의 침략을 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이 나의소원에서 하느님이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첫째, 둘째, 세 번 모두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라고 대답한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국가의 힘은 국가의 주인이자 구성원인 국민들이 함께 더불어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때 나온다. 

이 땅에 일제 만행에 의하여 자행되었던 통한의 침략 역사가 다시는 우리와 국가이익을 달리하는 강대국들에 의하여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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