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고 싶어서가 아니야,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거야. 
난 빼앗긴 것은 꼭 돌려받는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거야.“ 
(영화<영웅본색> 중에서)

 

[공감신문] 며칠 째 잠을 못 잤는데도 여전히 잠들기가 어렵다. 만성 불면증을 가지고 있지만 수면제 근처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이렇게 고통 받지만 또 그 덕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어 한편으론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어젯밤엔 그 짧은 사이에 악몽을 꾸었다. 한 편의 악몽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출연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나에게 뭔가 잘못한 일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그들의 언어 습관대로 나에게 이러저러한 핑계를 늘어뜨려 놓았다. 꿈에서 깬 나는 찝찝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평소 소심하긴 하지만 그때그때 담아두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넘어 가자’라고 마음먹었는데도 그 상처들이 마음에 맺혀 있었나보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힘들었다.

‘역시 잠은 나랑 안 맞아.’

영화 셰임

그런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따뜻한 차를 마시려고 식탁에 앉았다. 그리곤 마음먹었다. 내 머릿속에서, 내 마음대로 나온 그들의 핑계거리겠지만, 그들을 용서해주자고. 그저 내 마음 편하기 위하여 그들을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을 알기 전부터 잠과 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단잠에 그들이 나와서 사과할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냈는데 때 마침 오늘 영화 <V.I.P.>(2017)을 보았다. 아직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내용을 말할 순 없는데,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대하여 남북한을 배경으로 한 액션물 정도로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내가 이런 꿈을 꾼 날이라 그런가? 난 이 영화가 복수극이라고 느꼈다. 굵직한 이야기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몇몇 대사에서도 그게 느껴졌다. 함께 영화를 본 동생에게도 이게 복수극 같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복수극 맞지, 라고 하더라.

우린 왜 복수하고자 할까. 복수심은 당연한 걸까? 왜 에너지를 들여서 굳이 그런 것을 행동에 옮기는가? 심리학적으로 복수심은 사실 자존감 회복을 위하여 나오는 심리 상태라고 한다. 누군가에 의하여 어떤 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 괴로운 마음이 된다. 그래서 ‘난 너에게 이렇게 당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거다. 복수를 당하는 것은 상대방이다. 하지만 복수를 통해 얻는 자존감의 회복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결국 복수심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감정이 된다.

복수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의 자존감 회복을 위하여 상대방에게 똑같이 해를 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라면, 그는 상대방과의 관계에 별 관심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나. 상대방과 앞으로도 계속 볼 마음이 있으면 자기 자존감 회복을 위하여 상대방에게 그럴 순 없을 것이다. 

보통 이런 복수는 ‘받은 만큼 되갚아준다’는 식이며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상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트리플(<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처럼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원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영화 올드보이

심지어 누군가는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마음먹기도 한다. 이 경우는 굉장히 위험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들은 복수의 대상과 맺게 될 앞으로의 관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즉, 그들은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얘기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목숨을 내걸고 복수하고자 한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들은,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돈 만 이천 원 더 벌려고 그 생사를 넘나드는 작업에 뛰어든 거지만, 우리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그렇게 한강에 있는 다리 하나를 폭파시키고는 죄 없는 시민들을 인질로 잡아다놓고 온 나라를 장악하려 든 것이다. 영화에서 그 아들의 마지막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무런 미련이 없는 그는 허무하게 땅 속으로 멀어져 간다.

물론 이렇게 위험한 복수만 있는 건 아니다. 좀 진부한 복수 같지 않은 복수들도 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다. 너도 비슷하게 느껴보고 나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공감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달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듣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몸소 느끼게 해주려 한다. 

하지만 그런 집요하고 소극적인 복수를 벌이는 당사자와는 달리, 상대방이 관계 개선의 마음이 없다면? 이를 테면 매일 늦는 여자 친구에게 똑같이 느껴보라며 약속에 늦었는데도 이 여자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상대방이 당사자와의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두 사람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자꾸만 부딪혀서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연인뿐만 아니라, 형제, 부부 등 가까운 사이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 생길 수 있다.

한 인격체에게 자존감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자존감이 어느 정도 있어야 우리는 스스로를 잘 파악할 수도 있을뿐더러 타인을 오해하지 않고, 바람직한 관계들을 맺을 수 있다. 자존감은 나 자신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사랑, 우정, 가족관계, 사회생활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상처받은 자존감의 회복 역시 중요할 것이다. 하긴, 살면서 어떻게 자존감 상할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어쩌면 매일매일 우리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그런 환경에 놓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뜨거운 물이 조금씩 부어지는 비커에 들은 개구리처럼, 조금씩 상처받다가 나중에는 엄청 괴로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하지만 때로는 복수하지 않고 용서할 순 없을까. 어젯밤 내 꿈에 나왔던 이들은 나에게 엄청 큰 해를 끼친 건 아니지만, 자존감에 대단한 스크래치를 낸 건 맞다. 그래도 난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복수처럼, 나 자신의 마음을 위하여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어쩌면 내 계획대로라면 그들(특히 그)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평생 볼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 

용서를 한다고 해서 잊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일 때문에 덜 괴로울 확률이 크니까. 그래서 용서는 미래지향적이다. 난 앞으로의 날들에서 나와 더 친하고 싶기에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래지향적인 용서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영화<악마를 보았다> 에서 경철에게 복수를 마친 수현의 표정은, 어느 영화에서 본 등장인물들보다도 슬펐다. 푸르고 차가운 새벽 길가에서 수현은 누구보다 공허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애인을 잃었을 때보다 더욱 괴롭고 슬피 울었다. 누구를 위한 복수였던가. 대신, 갚아준다고? 그것도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들 너무 불쌍하고 또 불쌍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뭐 복수? 죽은 곽철용이가 니네 아버지냐 복수한다고 지랄들을 하게. 복수 같은 그런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으로다가 접근하면 안 되지.’ / 영화 <타짜>중에서
그래, 복수는 인간적이지.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라기엔 때론 너무나 어렵지. 그래도 좋은 거니까, 또 더불어 살기에 필요한 거니까 자꾸들 신(神)께서 그리하라 하셨다며 종교들마다 강조하는 건 아닐까.

나에겐 아직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그래?’라고 말한다면 난 정말 그에게 실망할 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 마음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쥐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릴 하냐고!

난 사실 지금 복수 중이다. 내가 큰 상처를 받게 된 아주 오래전 그날,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복수하는 길이다.’ 그래서 지금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천천히 한발 한발 가고 있잖아. 훌륭한 사람이 한 번에 될 수 없으니 점진적으로 나아가야지. 

그리 오랜 시간 복수를 할 필요 없이 이미 나는 꽤 많이 자존감을 회복한 상태다. 주변에서 날 격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긴 하다만, 복수로 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내가 열심히 살고자하는 태도는 스스로 마음에 드니까. 그리고 나중에 그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나 보란 듯이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헛소리만 안 꺼냈으면 한다. 난 내 주변에 머물러 준 사람들의 사랑을 야금야금 먹으며 성장해온 거니까.

복수란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이라 사랑만큼 수많은 이야기의 재료가 되어왔다. 복수의 방법도 다들 참 여러 가지다. 좀 더 스마트한 복수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몇 작품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선 박찬욱의 복수 트리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올드보이>.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톰 포드가 연출한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 2016) 역시 엄청난 수작이다! 비슷한 분위기로는 데이빗 핀쳐 감독의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 그리고 <엘르>(Elle, 2016) 등이 있다.

반면 좀 색다른 용서에 대한 시각을 다룬 영화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과 소설 원작의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를 추천한다. 아니, <향수>가 어떻게 용서에 대한 이야기냐고? 저건 용서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왜 인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리라, 이렇게 물러나는 저를 ‘용서’해 주시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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