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곳에 에너지와 마음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지예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예 칼럼니스트] 한 남자 분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고민 상담을 요청해온 적이 있었다. 그의 사연을 짧게 요약하자면, 직장에서 만나 잠시 사귀었던 여자가 있는데 그녀가 직장을 옮기면서 태도가 변했다는 것. (물론 한쪽 이야기만 들은 것이지만) 사연에서 본 여자 분은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여자 눈에는) 훤히 보이는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 떨어뜨리기. 그녀는 그에게, ‘나는 과거가 많다 (이런 건 걸리지 않는 이상(?) 사귀기 전에 말했어야지!), 아니 사실 원래 남자가 많다, 지금도 만나고 다닌다....’고 말했다. 사실인지 진실인지, 혹은 둘 다 아닐 지도 모르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건 그에게 단 한 가지를 묻고 싶어서다.

"이래도 내가 좋아?"

그녀는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며 헤어지자고 했다. 남자가 그녀에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녀는 말할 것이다.

“아니야. 나 같은 애를 만나기에 넌 너무 좋은 사람이야. 넌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

심지어 그녀는 그의 친구에게 부탁을 한다. 본인이 심하게 해서 그가 상처 받았을 테니, 그를 잘 돌보아 주라고.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가끔 먼저 연락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이건 그녀가 저에게 미련이 남은 게 아닐까요?

그는 나에게 보낸 메시지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난 답장 첫줄에 이렇게 적었다.

-마지막 행동은 그저 그녀의 죄책감이자, '어장관리'일 뿐이에요.

 

아, 어장관리!

주변에 사귈 듯 말 듯 한 애매한 상태의 이성들을 관리하는 짜증나는 태도. 정말 한 대 패주고 싶은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어장 속 물고기 중 한 마리가 되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장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어장에는 물고기가 세 마리, 네 마리, 여덟 마리까지도 있다. 대부분 어장관리 당하는 물고기들은 자신이 그의 어항 속 ‘유일한 물고기’인줄로만 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상대방은 여전히 애매한 태도를 취할 뿐. 친구들은 말한다.

‘너 어장관리 당하고 있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장관리를 하는 어장의 주인 격 되는 사람을 굉장한 매력남, 혹은 매력녀, 아니면 위너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자식, 능력 있는 기집애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반대다. 난 어장관리 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루저(Loser)로 본다. 굳이 나에게 어장의 주인이 될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될래? 하고 묻는다면, 차라리 어장의 물고기가 되겠다.

나는 알고 있다. 어장관리를 한다는 것은,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싱글의 기분을 만끽하려고 한다던가, 혹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둘 정도가 있는데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려 한다던가, 뭐 이런 경우는 제외하겠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의 어장관리는 그 어장 유지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장들은 그 사람 성격이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낸, 그저 꽃샘추위처럼 잠깐 지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어장들은 얘기가 다르다. 그런 어장들은 처음부터 ‘선별’을 위한 어장이 아닌, 여러 마리를 꾸준히 데리고 갈 어장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런 어장 주인들은 애정결핍자들이다.

 

사실 나 역시도 한 때 어장관리를 해본 적이 있다. 한 4명쯤? 난 간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 중에 분명, 1등 물고기가 존재한다는 것. ​사실 이 1등은 어장에 있어도 물고기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에 1등이다. 그럼 나머지 3마리의 물고기는 왜 필요했느냐고? 간단하다. 1등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놓기 위해서.

두 마리의 물고기는 잘생긴 외모에 나에게 아주 충실했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는 주변에서 보기에 아주 훌륭했다. 1등은? 내가 많이 좋아했다. ​​조건? 외적인 조건이나 스펙? 아니, 내가 좋아한다니까. 그러므로 그는 포르쉐를 타는 고기, 잘생긴 고기를 다 제치고 1등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1등과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나의 어장 안에서 2등 물고기가 드디어 억겁의 시간을 견뎌내고! 1등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2등은 평생 2등이다.

1등은?

당분간 공석이다.

나의 어장은 무기한 지속된다.

....!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에겐 운명처럼 나의 마음을 빼앗은 새로운 뉴페이스가 등장했고, 그는 어장 진입 즉시 1등이 되었다. 회사 인턴부터 열심히 올라온 신입사원과 달리 아빠가 임원이라 한 번에 어느 자리하나 꿰찬 격이다. 아, 물론 다른 물고기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뉴페이스와 이루어졌다. 당연했다, 그는 1등이었으니까. 난 더 이상 어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고 곧 폐쇄했다. 사실 어장관리는 무지하게 피곤하다. 단지, 나머지 3마리가 어디로 가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 뿐이다.

‘그래요! 당신은 정말 훌륭한 물고기였어요, 귀찮게 굴지도 않고. 꼭 착하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1등이 되길 빌어요!’

 

결국 어장관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절 당할까봐, 그 때 너무 힘이 들텐데 내 옆에 아무도 없을까봐, 자괴감에 빠질까봐,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1등이 나를 바라봐주지 않으면 어장에 물고기가 4마리가 있든, 10마리가 있든, 외로운 건 마찬가지이다. 그 외로움은 1등 이외에는 아무도 채워주지 못한다. 나머지는 대체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위 사연의 여자 분은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장관리를 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당연히 어장을 없애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사실 1등 물고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1등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1등을 잡는 것에 실패한 그녀는 결국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2등, 3등, 4등 대체품 물고기하고만 연애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2등과 연애하면서도 어장관리를 놓지 못한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그 사람은 나에겐 겨우 2등이기 때문에 마음 한 켠의 공허함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싱글일 때의 외로움과 커플일 때의 외로움은 정말 다르다. 커플일 때의 외로움이 더욱 크다. 그녀는 결국 ‘이 사람도 아니네’싶어 연애에 실망하고, 더욱 공허해지고 외로워지며 물고기들을 찾아 심해를 찾아 헤맬 뿐이다.

2,3,4등은 절대로 1등이 될 수 없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고, 안타깝게도 어장관리계에서 한번 2등은 영원한 2등이다. 2등의 변하지 않는 마음에, 그녀가 마음을 열수도 있다. 그가 색다른 매력과 편안함을 안겨준다면 더나할위 없이 좋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동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에 미안해서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정결의 만년 어장관리녀를 만난 경우라면, 그저 뉴페이스 1등이 나타나는 순간, 남자친구로 불리던 ‘2등’은 뻥- 차이고 말 것이다. 아무 잘 못 없이.

 

어장관리가 길어지다보면, 어느새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장관리, 의미 없는 만남들에 질려가며 결국 아늑하고 포근한 연애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하기 쉬운 실수가 ‘연애를 위한 연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연애’를 하는 것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데이트 메이트나 섹스 파트너를 만드는 게 낫다. 영화를 보러가고 싶거나, 섹스가 하고 싶을 때 만나는 게 훨씬 낫다는 거다. 그들에겐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외에 서로에 대한 의무감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랑 없는 연애를 하게 되면 좋은 건 그저 1-2주일 정도? 나머지는 만남 자체가 숙제가 된다. 연애하는 척, 남친 여친 역할놀이만 하다 끝나는 거다. 연인이니까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 질색이다. 어색하고 건조한 섹스, 여자의 오르가슴 연기, 여자는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낮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서로의 눈치 살피며 영화나 음식메뉴 고르기, 의무적인 질문, 그리고 꾸역꾸역 대화 이끌어가기. 진짜 연인이라면, 침묵이야말로 때론 가장 사랑스런 순간일 때가 많다.

 

나는 어장의 고기가 된 적도 많다. 그러나 나는 어장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난 좋으면 고백한다. 아마 이 대목에서 아마 많은 여자 분들이 '아- 난 그런 거 못해!' 혹은 '남자의 고백을 유도하는 게 연애고수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 나도 그런 거 못했었다. 그런 내가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 애매한 것이 싫었다. 애매한 관계는 날 희망 고문시키고, 그것이 나의 마음을 얼마나 갉아먹는 지 무수히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창피함, 쑥스러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었다.

나는 당신이 좋아. 날 어떻게 생각해?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여자는 남자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고백을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연애 고수, 여우의 비법이죠.’ 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난 연애 고수가 아니다. 내가 이런 류의 글을 쓰는 이유는 같이 고민해보자고 쓰는 것이다. 사실 난 연애 고수라는 사람들을 보면 좀 웃긴다. 본인이 신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움직인다는 말인가?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다 단순하지가 않단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친구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장에 물고기가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건, 당신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썸남, 썸녀가 많은 것이 인기의 척도가 아니다.

 

예전 잠깐 만났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태연스레 그런 자랑을 했었다.

'나 너 만나기 전에 썸녀가 7명이나 있었어. 근데 다 정리하고 너한테 간 거야.'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나는 뿌듯하거나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전혀. 그가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이구나, 느꼈다. 그리고 그간 그가 굉장히 외로웠구나 싶었다. 그에게 2등,3등, 4등...이 7명이었단 뜻이다. 나보다도 못한 여자 7명? Oh, No!!!!!!! 정말 피곤하고 영양가없는 짓이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왜 나보다 못하냐고? 그가 선택한 건 어쨌든 뉴페이스 1등이었던 나였으니까. 난 그리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7명이든 10명이든 인기의 척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한 거라고!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센 신호라도, 안테나가 여러 곳을 향해 있으면 그것을 감지할 수 없다고.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안테나가 쓸데없이 여러 곳에 향해있어서 정말 받아야할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선택과 집중은 여기에서도 중요하다. 실패하면 어떠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곳에 당신의 에너지와 마음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사람이 결핍된 사람보다 훨씬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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