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 / 무어

 

[공감신문]자, 당신이 얼마나 문화생활을 활발히 하고 있는 지 알아보자. 최근 큐레이터를 본 게 언제인가? 일주일? 보름? 한 달? 반 년? 혹은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괜찮다. 그럼 그런 그렇다 치고 가장 최근 ‘큐레이션(curation)’을 받아 본 게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아니, 큐레이터를 본 것도 까마득한데 큐레이션을 언제 받았는지 생각해보라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래, 이건 마치 치과의사를(사석 빼고) 본 게 언제냐고 물으며, 그럼 치과에 마지막으로 간 건 또 언제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겠지. 하지만 큐레이션과 치과 치료는 좀 다르다. 치과 치료는 ‘당한다’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지지만, 큐레이션은 이미 입 속 침처럼 당연한 듯 삶을 매끄럽게 하고 있으니까.

큐레이션. 요즘 이 개념이 유행한 지 쫌 되었다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산업혁명’처럼 원래 있던 개념이 다시 한 번 대두된 것이다. 원래 독자 여러분이 알던 의미보다 확산적으로 쓰이니, 이왕이면 오픈사전의 개념을 발췌해보려 한다.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을 말함. 본래 미술 작품이나 예술 작품의 수집과 보존, 전시 하는 일을 지칭하였으나 최근 더 넓게 쓰임.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여기서 기억해야할 단어는 ‘선별’일 것이다. 왜 선별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대사회는 ‘여러 가지’를 너머 뭐든 게 투머치(too much)로 넘쳐나니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큐레이션’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이 가장 최근 큐레이션을 받아 본 적은 언제인가? 어떤 큐레이션이었나? 당신은 어젯밤 퇴근길에도 엄청난 큐레이션을 당했을 것이다. 퇴근시간 버스에서 음악 포털사이트에서 골라주는 추천 음악 역시 큐레이션이다. 집에 그냥 들어가기 적적해서 들른 집 앞 바(bar)에서, ‘좀 술맛 많이 안 나는 데 도수 센 칵테일 없나요?’ 그렇게 물어서 바텐더의 추천을 받았다면 그것 역시 큐레이션이다. 

자기 전 시청한 드라마에서 가을을 맞아 여주인공이 덧입힌 새로운 헤어 컬러와 립스틱이 눈길을 끈다. 검색을 하니 누구누구 립스틱이라며 올 가을 주목할 컬러란다. 이것 역시 큐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큐레이션이 가득한 세상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SNS는 당신이 팔로우한 것들을 기반으로 좋아할만한 게시물을 골라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좀 청개구리 같아서 ‘너 이거 좋아하지?’라는 것들은 기필코 삐딱하게 보려 드는 것 같다. ‘내가 네 생각처럼 그리 단순할 것 같아?’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이용하는 것 중 하나는 CGV아트하우스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데, 흥행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영화보다도 생각할 틈을 주거나 소재 및 장르, 서사구조에서 다양성을 가진 영화를 더 즐겨본다. 나에게도 영화는 오락이지만, 난 좀 다른 식의 재미를 더 느끼는 것 같다.

CGV아트하우스는 이런 면에서 나에게 취향 저격이다. 블록버스터들보다도 더 무수히 많이 쏟아지는 게 독립 영화나 다양성 영화들이다. 이 영화관은 그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골라준다.

내가 좋아하던 배우 故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작고했을 때에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전>을 했었다. 그가 명연기를 펼친 영화 4편을 고르고 골라 약 한 달간 개봉했던 기억이 있다. <히치콕 전>을 했을 때도 정말 좋았다. 명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중 몇 편을 선정하여 상영한 것이다. 1958년도에 나왔던 <현기증>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그 외에도 여기서 상영하는 재개봉작들은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은 제시한다. ‘이런 것들이 있는데 넌 이걸 사거나 해보지 않겠냐’면서. 대부분 요즘 말하는 ‘핫한’ 동네들은 그런 성격이 더욱 강하다. 강남 쪽을 제외하고 몇 년 전부터 떠오른다는 성수동, 연남동, 경리단길, 해방촌만 해도 그러하다. 가게마다 자기 개성이 강하여 사람들은 그걸 경험해보려 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가게가 그러한 건 아니지만, 이 동네- 이 가게엔 이런 문화가 있으니 시도해보라 하는 거다. 놀러 온 사람들은, 누가 뭘 좋아한다고, 그게 보편적이라고 해 놓는 가게들보다 새로운 걸 제시하는 가게들을 선호한다. 그런 서비스와 경험에 돈을 쓴다. 그리고 이걸 자기 SNS에 올리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제시한다.

영화 = 카페 소사이어티

약 10년 전 트위터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 누군가 했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누구를 팔로우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그렇다. 그것 역시 큐레이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큐레이션의 개념은 단지 쇼핑뿐만이 아니라 이렇듯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도 적용된다. 사실 우린 어린 시절 엄마가, ‘쟤랑 놀지마. 쟤는 공부를 못하잖아.’라고 하면 따랐었다. 엄마의 교우관계 큐레이션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던 것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 가라는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인생을 더 살아보니, (그 때는 더욱) 공부를 잘하면 미래 직업을 택할 때 선택의 폭이 넓으니까 그런 게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내가 검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어른이 되면 이게 성적에서 주머니 사정으로 이어진다. 확실히 돈이 많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그만큼 다양한 큐레이션의 네트(net) 속에 놓이게 된다.

어느 충격적인 영상이 기억난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떤 사람이 토마토를 들고 아이들에게 이게 무언지 아냐고 물었다. 그걸 왜 묻냐고? 그러게, 나도 왜 묻는 지 싶었는데 아이들이 그게 뭔지 모르더라고. 충격적이었다. 아니 토매이토스잖아. 이름부터 영어잖아! 근데 그 동네 초등학교, 그 반 아이들은 모르더라. 그래서 피실험자가 한 번 더 묻는다.

‘여기서 토마토케찹 아는 사람?’

‘저요! 저요!’

모두들 손을 든다.

‘오늘도 아침에 먹었는걸요?’

‘토마토케찹이 이걸로 만든 거야.’

‘오우 마이 갓!’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학생. <food revolution>중에서

심지어 ‘케찹’은 중국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쨌든 그 아이들은 토마토를 몰랐다. 왜? 빈부격차 때문이다. 그 아이들에게 신선한 토마토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엄청나다. 음식사막(food desert)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네에서는 신선한 토마토나 채소, 과일은 선택의 영역에서 제외된다. 대신 똑같은 1달러로 고를 수 있는 것은 99센트짜리 패스트푸드, 혹은 공산품의 제국다운 통조림 같은 음식들이다. 큐레이션의 폭이 한정되어 지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큐레이션은 상당히 중요하다. 누군가 이렇게 1차 혹은 2차로 걸러 주지라도 않는다면 우리는 고르는 게 너무 피곤해서 그냥 구매를 포기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 적어도 덜 피곤하고 덜 후회스러워야 한다.

그래서 어떤 큐레이터를 옆에 두느냐가 관건이지 않나 싶다. 이젠 누구를 팔로우 하느냐, 의 시대는 지났다. 누구에게 큐레이션을 당하느냐, 이게 중요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큐레이션은 너무도 교묘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얘길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사는 것도 아닌데 구경이나 하지 뭐, 라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구매를 할 수 있을까? 사실 재화를 사는 것에는 큰 걱정이 없다. 돈이야, 또 벌면 되니까. 우린 앞으로도 몇 십 년은 죽어라 벌어야할 테니까. 그러나 서비스나 경험을 사는 건 좀 다르다. 시간은 다시 벌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서비스나 경험을 사는 것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큐레이션을 직접 해보는 거다. 혹은 그런 입장으로 생각해보는 것. 왜 이것을 추천할 만한지, 내가 ‘나’라는 사람이 있다면 왜 이걸 살 것 같다고 느꼈는지. 진짜 ‘나’라는 사람이 경험하고 싶은 감정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시간을 가치 있게 쓴다는 것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더욱이 무언가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질 미래에, 큐레이터적인 센스를 가진다는 건 엄청 바쁘고 가진 게 많은 사람 옆에 좋은 친구가 될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인생을 즐기고 싶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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