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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교양공감] ‘나’ 만큼 소중한 ‘너’ -인간관계의 윤활유, 매너

[공감신문 교양공감] 사회적 분위기가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기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다 옮겨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의 가치보다 ‘나’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좋은 현상이냐 나쁜 현상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에 오늘의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다루진 않겠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가치가 중요한 만큼 ‘너’의 가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집단의 가치가 약해지고 개인의 가치가 갈수록 강해져가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존중받고, 배려받고, 대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정작 자신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대접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일이 많다. 당장 이렇게 말하고 있는 기자도 그리 당당하진 않다.

기자는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에서, 실수로 남의 발을 밟아 고개만 까딱여 사과했던 적이 있다. 부끄럽게도, 반대로 누군가 기자의 발을 밟았을 때 건성으로 사과하는 모습에 불쾌했던 적도 있다.

타인에게 바라는 행동을 '나' 스스로 타인에게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 정도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저질렀을 때 내가 한 행동과, 타인이 ‘내게’ 그것을 저질렀을 때 타인에게 바라는 행동이 차이가 난단 걸 깨달은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가 불쾌한 것은 타인도 불쾌하게 느낀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곤 한다.

 

■ 매너가 인간사회를 만든다

몇 년 전, 한 영화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가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큰 유행을 탄 적이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니, 어찌 보면 조금 과장처럼 들리는 것도 같지만 사실 매너는 사람간의 관계, 크게는 인류 자체를 유지시키는 여러 틀 중 하나다.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단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에는 종의 번영, 번식, 생존을 위해 집단을 이루지만, 인간은 그것보다 한 차원 더 깊은 교류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얘기겠다.

전 세계 인구는 대략 75억 명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그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75억에 가까운 인간은 대부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게 오늘날 우리 지구, 우리 인류의 모습이다.

쌍둥이도 서로 다른 존재인데, 완전한 타인 중 나와 모든 것이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수많은 인간들 중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아마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닮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전부 다 똑같을리야 만무하다. 인간은 저마다 각각이 다른 존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현대사회에서 ‘조화’는 이제 서로의 안녕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예절, 예의, 매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 매너는 남녀 관계에서만?

요즘은 좀 덜 하지만, 여전히 ‘매너(Manner)’가 연인사이에서만 중요한 개념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똑소리 나는 교양공감 포스트 독자 여러분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혹시 아직까지 매너를 연인/부부 관계에만 한정지어 생각하는 분들도 몇 분쯤 계실지 모른다.

매너는 성별의 구분 없이 모두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매너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태도, 행동방식 등에서 드러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다. 혹자는 매너가 타인을 향하는 ‘보여주기용’의 가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성이건, 동성이건, 누구건 간에 여러분에게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러분을 배려하고 존중해준다면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은 뻔하다.

이렇듯 매너는 비단 남녀관계에만 국한되는 사례가 아니다. 만약 “내 남자/여자 친구에게만 매너 좋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비 매너’인 분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시길 바란다. 여러분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삶을 원하시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는, 성별이나 직위고하를 막론한 모두에게 매너가 필요하다!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바른생활(도덕)’이라는 과목의 수업을 들었었다. 아마 이 과목에 대해 떠올려보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배웠던 기억이 날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배워온 저 세 마디의 기본적인 인사말을 요즘도 자주 하고 계신가?

감사하다는 말은 그나마 좀 낫다. 미안하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말은 저 세 마디일지 모른다. 하지만 저 말들을 의외로 쉽게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배워온 간단한 인사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많을 것이다. 바빠서, 피곤해서, 쑥쓰러워서, 상대가 안 하니까 등. 그렇게 우린 알게 모르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해져간다.

저 교과서로 배울 땐 쉽던 인삿말도 이젠 하기 쉽지 않다. [핫트랙스 웹사이트 캡쳐]

편의점에 들어설 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마주쳤을 때, 오가는 길목에서 살짝 부딪혔을 때 등.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타인의 배려에 감사하고, 자신의 실수에 사과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과를 어려워 말고 즉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기분을 한결 누그러뜨릴 수 있으며, 배려에 감사하는 것 만으로도 타인에게 기쁨과 보람을 줄 수 있다. 그저 한 마디 말일 뿐인데도.

아 미안하댔잖아, 됐냐? 라고 매너없이 사과하진 말자.

그런 인삿말을 한다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진 애를 쓰고 힘겨운 노력 끝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껴둘 필요 없다. 오늘부터는 자주, 더 자주 말해보자.

 

■ 좋은 매너는 나 자신을 위한 자양분

타인을 배려하거나 친절을 베풀면, 타인이 자신을 쉽게 볼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도한 배려와 친절이 반복될 경우 물론 그럴 수 있겠다.

호구…(저거 아님). 뭐든 양보하고 배려하란 소리가 아니다. 매너와 맹목적인 양보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여러분,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타인에게 매너있게 행동하고 배려하라”는 말이 결코 ‘호구’처럼 뭐든 다 해주란 말은 아니다.

매너에는 배려, 존중 등이 담겨있지만, 복종이나 굴복의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오해하는 것 같다.

타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건 결코 "내가 당신보다 아래"라는 의사표현이 아니다. 우리 모두 명심하자.

매너 있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상대에게 패배했다는 선언이 아니다. 매너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자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수양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매너는 타인과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윤활유이자, 스스로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우리의 매너는 타인을 감화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친절한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겠다. 매너 있는 세상을 만들자. 세상을 더욱 좋게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교양공감팀도 그 대열에 합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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