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영화 <브이아이피>(V.I.P., 2017)에 대한 리뷰를 보게 됐었다. 누군가의 리뷰가 수많은 공유에 공유를 거쳐 내 앞에 까지 날아온 거였다. 다소 자극적이라는 말들이 많은 영화라 그런가, 리뷰도 처음부터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그 관객 분은 이 영화를 보다가 구토가 쏠렸다며 말을 시작했고 이 영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상평을 가진, 아니 괜찮다고 느낀 사람과도 아예 절연하겠다고 했다. 이 리뷰를 쓴 사람은 자신이 그런 성범죄를 당했던 피해자라고 했다.

영화 V.I.P 포스터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평? 글쎄. 나는 이 영화의 감독 전 작품인 <신세계>(2012)보다 좋았다. 아니 사실 전국민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신세계>가, 나에겐 별로 좋지 않았었다. 그냥 볼 때 좀 재밌었던 게 다였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극장에 별 기대 없이 갔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재나 설정도 신선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들은, 느슨해질랑말랑 하는 뇌와 꼬리뼈를 한 번 더 조이게 만든다. 적어도 <신세계>에 비해 <브이아이피>는 그런 측면이 훨씬 강했다. 배우 이종석에 대해서도 정말 놀랐다. 이전에 모델 출신 배우들이 가졌던 한계를 정말 빨리 넘어서는 것 같았다. 저 얼굴을 저런 식으로 캐릭터에 녹여 쓰는구나!, 싶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너무 전형적인 김명민의 캐릭터였다. 난 <하얀 거탑> ‘장준혁 과장’ 시절부터 그의 팬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매력이 없었다. 소주냄새 나는 말투에 습관적으로 물어버리는 담배 말고도, ‘김명민’이라면 좀 색다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영화 V.I.P 스틸 컷

나도 여자다. 내용을 스포일러 할 순 없지만, 성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성 인권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논란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거다. 나라고 왜 그런 게 안 무섭겠는가? 위의 리뷰를 쓰신 여자 분의 개인적인 그런 일도 정말 유감이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리뷰는 이해가 아예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 리뷰엔, 국정원 직원인 박재혁(장동건 분)과 채이도(김명민 분) 및 경찰들이 시체 사진을 들이미는데 눈 깜빡도 안한다고 되어있더라. 음, 근데 그 장면에서 눈을 깜빡이지 않은 건 비단 거기 나오는 박재혁 채이도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난 개봉 이틀 만에 극장에 찾아 다소 붐비는 상영관에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난 주변의 어떠한 탄식도 듣지 못했었다. 이미 시작부터 자극적인 장면들이 있었기에 그 시체 사진에 눈을 찌푸릴 리가 만무했다. 그 톤앤매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였으니까. 하물며 그런 사건을 맡고 있던,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들을 ‘실제로’ 보았을 수도 있는 직업 설정의 캐릭터들이, 그거에 ‘엄마야!’하고 놀라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영화에서 노출이 있는 여배우들이 많았다. 다른 범죄도 아닌 성범죄, 그것도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설정인데 그럴 수밖에. 그 리뷰에서는 그 감독이 여자 배우를 가지고 포르노를 찍었다, 배우를 그렇게 밖에 못 쓰냐고 하던데... 내가 만일 그 여자 배우의 입장이었더라면, 이 관객 분에게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영화판은 치열하다. 정말 작은 이미지 단역하나를 따내려고 오늘도 수 많은 배우들이 발품을 팔아 영화사 사무실에 프로필을 돌리러 다닌다. 거기에서 오디션이라도 볼 수 있게 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주변 신인 배우들은 10작품에 한 번이라도 오디션 전화가 오면 진짜 연락 자주 오는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얻은 오디션 기회를 허투루 할리 없다. 그들은 오디션에서 조감독의 말을 듣고 거기에 부합하는 연기를 펼친 것이며, 연출부들은 정말 단역 하나라도 영화 완성도에서 튀지 않게 하려고 고심 끝에 캐스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촬영장에 온 이들은 캐릭터와 그 상황 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독과 협의하고 치열하게 연기했을 것이다. 잔혹한 장면을 더욱 잔혹하고 끔찍하게, 그런 감정을 전달하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그 배우들은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옷을 벗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들의 열정을 무시한 채 ‘포르노’라는 말을 쓰다니, 난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생각하는 여자들이 더욱 안타깝다.

마치 마녀사냥을 당하는 느낌이다. 아니, <군함도>도 그러더니 이 영화도 그렇게 욕을 먹는다. 잔인하다고?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꼭 그래야할 필요가 있었냐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감독이 그렇게 표현하고 싶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썼으면, 그렇게 찍는 거다.

갑자기 내용이 이렇게 바뀌었다, 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들, 주연 배우부터 이미지 단역, 모든 스텝들이 이전에 약속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찍는 것이다. 감독이 그렇게 찍겠다는 것에 동의한 거고, 그런 연출 의도를 납득하겠다는 얘기다.

해외의 작품도 이 정도는 아니다, 라는 리뷰를 보았는데 이건 진짜 아닌 말이다. 외국 영화들 중에 도대체 무슨 영화들을 보신 건진 모르겠으나 잔혹한 것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욱 많을뿐더러,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화를 가지고만 성범죄를 일으키는 실화 기반의 영화도 있다.

전화 한 통이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실화를 다룬 영화 <컴플라이언스>

여자로 살면서 아마 죽을 때까지 성범죄를 조심하여 살아가야할 것이다. 성범죄를 겪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왜 당한 사람이 상당한 수치심과 더불어, 정신적인 트라우마, 게다가 자책감 같은 것까지 느껴야하는 가? 평생을 고통의 나날 속에 머물게 하며 심지어는 자기 스스로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조용히, 몰래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건 영화를 떠나서 국가와 지역 사회가 철저하게 노력하고 감시해야하는 측면이다.

영화를 뭐라 할 게 아니다. 그런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한들, 그 리뷰만 보고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난 더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아니, 그러면 전쟁 영화는 어떻게 본담? 5.18 민주항쟁 영화는? 유태인들이 대학살 당했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을 보는 전 세계의 관객들은? 일제 강점기 영화는? 자기 목숨보다 끔찍이 아끼던 자식을 잃은 분들에게 안타깝게도, 유괴는 흔한 영화의 소재이다.

영화는 거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생은 비극의 순간이 많다. 아니, 영화의 기본적인 서사구조 자체가 주인공을 어떤 위기에 빠뜨려서 이걸 극복해내는 것이다. 우린 이걸 구경하러 가는 거고. 거기에 각자 다른 이야기와 스타일이 있는 거니, 우린 꾸준히 극장을 찾는 거고. 영화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비단 저 분의 리뷰뿐만 아니라, 보기 전 포털 사이트에 ‘여자들이 싫어할 영화’ ‘여자로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이런 류의 댓글을 너무 많이 봐서 난 뭔가 대단히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인 줄 알았었다.

음, 그게 싫으면 (나도 자극적으로 말해보련다)... 그냥 월트 디즈니를 보시길 권한다. 웬만하면 19금 영화는 어떤 식으로라도 피하시길. 아니 그리고 심지어 이 영화는 ‘성범죄’가 주된 주제가 아니다. 잊지 마라. 이 영화의 제목이 브이아이피(V.I.P.)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브이아이피가 누구들인가? 정말 보기 불편한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누리는 굳건한 혜택들과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영화 자체에 좋다 싫다 말할 수 있는 건 본인의 자유다. 나도 싫은 영화에 대해서는 그냥 대놓고 말하는 편이다. ‘왜 싫어?’ 갑자기 허무하게 해결해, 연기가 이상해, 억지스러워, 혹은 그냥 다 ‘짜쳐!’.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지. ‘그래도 네가 보고 판단하던가. 아무튼 난 그랬어.’

영화는 다양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 때문에 마녀사냥 당할 이유도 없다. 이전보다 한국 영화들은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또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아, 괜찮아지고 있는데! 점점 좋아지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찬물을 끼얹나 이 프로 불편러들아!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여론이 이러네 저러네 하며 남 눈치 보며 영화를 감상할 필요는 없다. 온전히 내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시라. 감상평까지 떠먹여 줘야해?

그리고 영화인분들은 더욱 눈치 없이 제 멋대로 영화를 만드셨으면 좋겠다. 나도 정말 아무 선입견 없이, 비록 전작이 별로였다 할지라도 극장을 찾아 새롭고 또 치열하게 느끼고 올 테니까.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