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을 기쁘게 해주는 것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라

나는 꽃이기를 바랐다.
그대가 조용히 걸어와
그대 손으로 나를 붙잡아
그대의 것으로 만들기를.      

연가, 헤르만 헤세(1877 – 1962)
 

[공감신문] 그렇다. 헤르만 헤세도 말했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꽃이 되는 것이다. 한톨의 씨앗을 뿌려 나무가 되어 또 그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유래를 찾아보면 '유혹, 매혹'이다. '유혹하다'는 영어로 'seduce'인데 이 단어는 라틴어 'seducere'에서 유래되었다. 'se'는 'away' 떨어져 임을 의미하고 'ducere'는 'lead' 이끌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떨어져 있는 것을 이끈다는 말이 되는데. 떨어져 있다가 자발적으로 끌어당김의 중력에 의해 다가간다는 말이다. 이는 자발적 끌림을 말한다.

유혹이든 매혹이든 '끌림'이나' 당김'은 사랑에 대한 행동의 표현방식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끌림과 당김의 법칙에 따라 소리 없이 은밀하게 움직여 하나로 융합되는 거다. 어쩌면 나름의 로드맵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그의 안내에 따라 서로를 더듬으며 입을 맞추고 감싸 안으며 지문을 찍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혼란, 미세한 떨림, 내장까지 흔들어 놓는 광기의 시간, 모든 것의 처음이고 끝인 사랑은 느닷없이 온다. 유일하다. 모든 존재의 지위를 뛰어넘어 유일한 사람. 외롭고 적막한 세상에 나를 휘감은 한 사람을 향한 치열한 몰입, 그러면서도 바란다. 천천히 깊게 함께 물들며 동화되기를, 그러면서도 기다린다. 거룩한 수락이 이루어지길, 내가 하는 사랑은 영원하길 바라는 그 무엇, 서로에게 불멸로 남고 싶은 욕망의 팻말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느낌, 즉 마음의 겹침이다. 마음의 겹침이 오가면 조금의 오해도 이해로, 배려로, 용서가 된다. 또 커다란 희생까지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 그게 사랑의 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행성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없는 어린 왕자는 장미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왕자는 장미가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며 그가 살고 있는 행성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구에 도착해보니 정원에 똑같이 생긴 장미가 오천 송이가 피어있었다. 그것을 본 어린 왕자는 그의 장미도 그저 평범한 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 왕자는 기분이 울적했다. 그러나 곧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그의 행성에 있는 장미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장미에게 정성을 쏟는다.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고깔을 씌워주고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도 장미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길들여졌고,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다. 그것을 지켜본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정성을 들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야." 또 길들여진 장미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 어린 왕자는 오천 송이의 장미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무 아름답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난 너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도 없어." 

그렇다. 사랑은 시작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처음 그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기가 힘들다. 선택 후의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집중하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도 둘이서 함께. 함께 노력해야 권태감 내지는 사랑하지만 공허감을 적게 느끼게 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소유라고 착각하며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반드시 그 사람을 정복하고 소유해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려는 일회성의 욕망일 뿐이다. 일회성의 욕망이 강할수록 상실감, 공허감은 깊다.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이 느껴지도록, 미안함을 가지도록, 그런 상태가 되면 행복의 단계에 이르러 마음과 마음이 겹쳐지게 된다. 스스로 사랑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아니,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린다. " 너 무슨 좋은 일이 있니? 점점 예뻐지는 거 같아? 혹시 사랑에 빠진 거 아니니?."

사랑은 엄중하고도 내밀하며 단단한 결속력을 가진 둘만의 신성한 약속이다. 세상 어떤 약속보다도 평화로운 위안을 선물한다. 상대에게 '사랑'을 주문한다는 것은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하는 모든 질문은 결국 자기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전등이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빛을 품는 샹들리에처럼 사랑도 그렇다. 주고받는 말 사이에 헐렁하게 걸쳐있는 침묵의 순간이 지나고, 물풀처럼 하늘거리는 기다란 속눈썹이 예뻐 보이고, 부풀어 오른 입술에 또 한 번 키스를 하고 싶고, 간간이 서로의 반짝이는 동공을 지그시 바라보며, 무언을 대화를 나눠도 웃음이 나오는 그 순간에 행복감을 느끼는 거다. 최고의 카타르시스, 그 하나로 새로운 세상을 살게 한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들었다 놨다, 밀었다 당겼다, 하며 몰입하고 집착하고 구속하게 되는 거다. 

행복한 사랑은 그렇다. 보이는 세상이 무지갯빛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아플 때 기댈 수 있고, 힘들다고 손 내밀어도 기꺼이 잡아준다면 그게 바로 든든한 사랑이다. 애인이기에 행복하고 때로는 가족처럼 힘이 되어 주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 위로가 되어야 사랑의 완성단계에 이른다. 대부분 애인이기에 행복한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나도 골치 아픈 게 많은데 그 사람 몫까지 껴안기 힘들어서 사랑하지만 포기하게 된다. 사랑하지만 놓아준다는 말의 뜻에는 그런 의미도 많이 안고 있다. 

사랑의 완성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간이역(익숙한, 권태기)에서 이별을 맞게 된다. 대분분의 연인들이. 조금만 더 가면 종착역인데도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해 포기해버린다. 권태기가 오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낯선 '다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단점들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어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행동도 싫어 보이고, 저런 행동도 싫다."며 혼자 중얼거린다. 시간의 거리까지 두 사람의 영역을 침범해 일주일에 한 번 만나던 것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면 이별이 시작된 거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 말은 이별하고 있는 중임을 말하는 거다.

진정으로 놓치기 싫은 사람,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름’을 인정하고 더 좋아지도록 함께 노력하는 거다. 둘이서 같이. 기쁨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고통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그 과정을 수시로 즐기며 함께 견뎌내는 것이 아름다운 사랑이고, 행복한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 행복한 사랑의 만족감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쏟은 시간과 정성에 비례한다. 사랑의 만족감이 높으면 더 풍요롭고, 찬연한 생을 누리게 된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사랑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선물이다. 왜? 사랑하는 동안 고통보다, 슬픔보다, 기쁨, 행복감을 더 많이 안겨주기에. 사랑은 일에 지쳐 불쑥불쑥 찾아드는 생의 허무감, 그래서 수시로 우두커니가 되거나, 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대들에게 단 하나의 구원의 밧줄이다.

사랑은 하루하루 커가며 깨끗한 영혼을 흐리게 하는 검은 욕망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 조금 힘이 든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지 마라. 내가 선택한 사람이 행복을 안겨주는 사랑이라 믿고 사랑의 완성 단계에 이를 때까지 정성을 다하라. 장점에는 아낌없이 칭찬하고 나쁜 점은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포용하라. 포용도 행복한 사랑의 과정이다. 생은 길지 않다. 내일을 기대하지 마라. 내일은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현재의 사랑에 아낌없이 몰입하고 후회 없이 충실하라.

생은 짧다.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수백 명을 기쁘게 해주는 것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라. 그것이 멋지고 든든한 사랑이다. 다시 찾아온 이 가을,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인연에 정성을 다하며 감사하라. 현재의 사랑에 아낌없이 몰입하고 후회 없이 충실하라.

행여, 사랑이 지나갔거나,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더라도 고민하지 마라. 일상에 충실하며 마음을 열어두고 기다려라. 늦지 않게 오도록 기다림에 간절함을 담아 정성을 쏟아라. 간절함이 기적을 부를 테니. 드디어, 사랑이 오고 있다. 나직이 두드릴 것이다. 딱딱한 그대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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