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추억 속의 기억을 더듬으며

[공감신문] 청춘을 떠나보내는 날, 서해바다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전과 모험 그리고 실패의 추억이 담긴 청춘과 이별하기 위해. 사무치게 아픈 청춘이라 마지막 이별은 시리도록 슬펐다. 

누군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분명히 나이는 굴레이다. 함부로 꿈꿀 수 없는 중년의 열차에 탑승해야 하니까.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춘의 웃음. 눈물. 기쁨. 슬픔을 고스란히 서해바다에 흘려보냈다. 갈피를 못 잡아 그래서 더 흔들리고 방황하던 아픈 청춘이 흘러갔다. 더 이상의 모험도, 오기도 용납이 안 되고 굴욕도 참아내야 하는 미래의 세목들이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생이라는 것이 가까이서 보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선명하다. 생의 이정표가 정확한 자리에 올바르게 세워졌는지.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이 되었는지. 정확히 보인다. 선명하게. 타인들의 생의 세목과 함께. 비교가 되어 채찍하고 또 칭찬하며 응원한다. 스물과 서른의 경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던 소녀가 다시 찾아와 여전히 금을 긋고 있다. 스물, 서른의 포로가 되어 청춘 앓이를 하고 있다. 어른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서성이는 어른 아이. 수십 년 전의 소녀로 돌아가 망설이며 서있다. 

출처=한국관광공사

이럴까, 저럴까 하는 사이 석양이 깔린다. 생의 모래시계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잘 살 수 있을 텐데. 후회와 미련이 비처럼 내리며 모여드는 강물 속에서 흔들리며 반짝인다. 맞은편 밭에서는 잘 자란 푸릇한 배추가 해풍에 나풀거리며 춤을 춘다. 수확을 앞둔 배추밭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수고에 대한 보상, 너무나도 정확하다. 농부와 배추의 아름다운 합의. '그래, 치열하게 정성을 다해 살아야 끝도 좋은 법." 푸른 이파리를 바람에 나부끼며 춤을 추는 배추가 말을 해준다.  

간절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확신, 정성, 그리고 든든한 밭이 하나가 되어야 하겠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을까. 확신이 생겼을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두 손으로 놓아주고 있었다. 무언가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떠나기 싫은 듯 아픈 청춘의 잔해들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상처를 안으면서도 강렬하게 비상을 꿈꿨던 청춘이 서서히 떠나갔다.  

그렇게 반성과 성찰, 뭉클한 위로 한 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서른 즈음에 자주 찾았던 남해안 작은 섬에 도착했다. 환한 불빛에 맞춰 은빛 멸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춤을 췄다. 환한 불빛을 향해 모여드는 멸치 떼가 군락을 이뤘다. 그물망에 갇히기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어부의 기다림이 간절했다. 아내를 잃고 세 아이와 먹고살기 위해 멸치잡이를 시작했다는 어부에게 어떤 멸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어부는 바다를 품고 고기떼와 오랫동안 호흡해서 그런지 행동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어망에 고기가 가득하면 가득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일을 기약했다. 어부는 하늘이 허락한 시간에 따라 목숨을 바다에 맡기며 욕심내지 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고기를 잡았다. 허황된 욕망도 두려움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믿으며 멸치 잡는 일에만 몰입했다. 오래도록 바다를 지키며 살아온 어부의 행동은 바다낚시하러 온 강태공처럼 편안해 보였다. 

가끔 외로움이 깊으면 뭍으로 외출을 한다고 했다. 섬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사기 위해 아니, 꼭 필요한 것이 없더라도 뭍으로 나간다고. 외롭기 때문에. 사람이 그리워서. 어부들은 물이 부족해 빗물을 받아쓰고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지만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뭍에서 찾아온 낯선 여행자를 보고서도 이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생선 말린 것, 해초를 내어주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먹고 대화하며 여행자도 어부도 위로하며 위로받으며 술익듯 익어간다. 외로움도 나누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걸까. 불안해서 중심 잡지 못하던 마음이 위로를 받은 듯 평온해졌다.

모든 것은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하면서 흘러간다. 강물처럼.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누구나 후회는 하는 법. 언뜻언뜻 외로운 섬이 되거나 고독한 별이 된다. 아니면 길 위에 선 여행자가 된다. '일 년이면 삼백일을 운다'는 바다의 거친 바람을 안고 살아가는 어부. 그 치열한 일상에서 지혜를 줍는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은 소녀든, 소년이든, 철든, 어른이든, 철이 들지 않은 어른이든, 깨우침은 깊다. 내밀한 생의 모습은 달라도 어디에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욕심내지 않고 꼿꼿한 신념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며 사는 사람에겐 좋은 향기가 난다. 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와 정직한 어부에게서 따뜻하고 넉넉함을 읽는다. 멸치잡이를 마친 어부의 고달픈 하루가 느릿느릿 저물 때에 바다는 하루의 고단함을 물에 수장하듯 힘껏 끌어안는다. 어부는 바다의 배경이 되고 바다는 어부의 배경이 되어 먹을 것을 주고 외로움을 줄이며 서로에게 기댄다.      

어부와 바다를 뒤로 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어둠이 깊다. 지친 발걸음들이 하나 둘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아파트 창가에는 퇴근을 기다리는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전등처럼 밝혀진다. 시간이 비껴가는 곳, 빌딩 숲 속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 자리 잡은 지 40년. 포장마차 안에는 빈자리가 없다. 손님이 많아도 손님이 뜸해도 웃음을 주는 것은 거친 세월이 안겨준 지혜 이리라. 

10년째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보고 마음을 읽은 듯 뜨거운 가락국수를 내놓는다. 진한 육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더디 가는 시간도 포장마차 안에서는 빠르게 움직인다. 부딪치는 술잔 따라 숱한 사연이 외로운 듯 튕겨져 나온다. 시간을 헤집고 서러운 듯 튕겨져 나온 아픈 기억들이 어린애 마냥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그래, 경쟁도, 다툼도, 희망도, 절망도 다 내려놓는 거야. 겨울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고 외로운 것들과 함께 취하도록 마셔보자. 취해서 비틀거리면 어떻고, 취하지 않으면 어때? 이래도 저래도 한 번뿐인 생인데. 그저 홀로 튕겨져 나온 설운 것들을 힘껏 껴안아 보자. 

취하고 싶은데 마셔도 취하지 않는 듯 세상이 똑바로 보인다. 술잔에 베인 생의 독한 향기 때문인지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메케한 가스를 맡으며 연탄을 갈던 30년 전의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법의 손을 가진 그분, 자식들이 찹쌀유과가 먹고 싶다고 하면 자고 나면 유과가 있었고, 남편이 막걸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또 막걸리가 있었다. 연탄불에 밤새도록 반죽을 해서 기름에 튀기고 튀밥을 씌우면서 유과를 만들었고, 고드밥을 쪄서 누룩과 함께 며칠을 항아리에 삭히며 남편을 위해 술을 만드셨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늘 그분의 손은 젖어 있었다.   

희생과 헌신을 하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이신 그분의 얼굴이 또렷해지니 시간이 멈춘다. 반가운 사람을 곁에 두고서도 흘러가는 강물처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인연 이리라. 빌딩 숲 불빛이 하나 둘 꺼져 가자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 포장마차에서 일어나 뿔뿔이 흩어진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술, 마지막 한 모금의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데 주름진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식 목소리 들릴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그분 생각에 울컥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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