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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신나게 날아봐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고 흐르는 전율을 느끼기 위해

누구에게든 인생은 짧아.
길다고 느낀 건 네가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 길어졌을 뿐이야.

고통이 길어진 이유는 뭘까.
아마도 방향이 틀렸을 거야.
아마도 방법이 서툴렀을 거야.
아니면 힘은 강한데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거지.
그래서 몰입에 서툴렀을 거야.

넌 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해봐.
방향을 제대로 맞춰.
조심조심 걸어봐.

타이밍을 정확히.
한 번에 몰입하도록.
용기를 내봐.
정확히 뛰어봐.

서툴지 않도록.
고통의 칼날에 베이지 않도록.
단단한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당당히 도전해봐.
크게 웃도록.
멀리 날아봐.
신나게 날아봐.


- 김정한, '신나게 날아봐'

 

[공감신문] 돌아보니 내 생도 굴곡진 날들이 참 많았다. 스무 살 되기 전에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직장의 회사원이 되었을 때에는 세상이 나를 위해 열린 것 같았고. 서른 중반, 진중하지 못한 선택으로 몇 년 동안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 춤을 추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살면 기적이 내게로 오는 줄 알았다. 바보처럼 시간이 흐르면 한 번의 기적이 찾아올 거라 믿으며 우연에 기대어 살기도 했다. 

지옥 같은 벼랑 끝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피투성이의 몸으로 탈출하고서야 깨달았다. 이 세상에 당연히,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노력해서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 세상에 믿을 것은 나뿐이라는 것을. 내가 반듯해야 가족도 보이고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을. 그토록 애타게 찾던 행복이라는 기적도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힘든 시간을 빠져나온 내게 떠오른 한마디는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에 나오는 말이었다.

"아무리 먼 길도 반드시 끝이 있고, 아무리 어두운 밤도 결국은 동이 트게 되어 있다.(The longest day must have its close - the gloomiest night will wear on to a morning.)"

지나온 나의 생은 무섭게,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말했다. 지나온 모든 길을 잊고 지우라고. 바람이 된 길이든, 별이 떨어진 길이든, 그래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그랬다. 과거를 기억하되 과거에 끌려다녀서는 안 되었다. 즐거웠던, 힘들었든 간에. 과거에 머물다간 앞으로 한걸음 내디딜 수가 없었다. 정말로 과감히 잊고 지우니까 기적처럼 새로운 길이 열렸다.

또 나의 길은 단 하나뿐이고 나만이 만들 수가 있었다. 괴테의 詩에 나오는 것처럼 '눈물과 함께 빵을 먹으며' 나의 길을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홀로 폭풍 같은 고통을 이겨내고 피가 흐르도록 벗겨진 상처를 치유하고 나니 그때 내 나이 마흔이었다.

행복을 찾아 수 년을 술래잡기를 하고 보니 행복은 대단하지가 않다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든, 내가 필요한 일이든, 반드시 일을 하며, 적당히 아프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여유 있게 누리는 것, 다시 말해 행복을 마주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그런 마주침이 아니었다. 

건강하게 아침에 눈을 떠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었다. 가족, 동료, 친구, 지인들과 소통하며 편안함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 편안함이 모아져 누구나 바라는 '평범한 일상'을 선물 받는 것이었다.

행복의 전부라고 외쳤던 그 '평범한 일상'을 무시하며 하늘의 별을 따러, 달을 만나러, 무지개를 쫓아, 뛰어다녔기에 '평범한 일상'과는 멀어졌던 것이었다.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벗어나 멀리서 높은 곳에서 대단한 것을 찾으려 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참회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밖의 '나'와 내 안의 '나'와의 진정한 해후였다. 내려놓고 비우니, 욕망을 줄이고 내 눈높이를 가늠할 정도가 되니 나를 포함한 주변의 것들이 자세히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나를 토닥이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 후 십 년이 흘렀다. 여전히 결핍 속에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책을 내고 글을 쓰며 받는 인세, 원고료로 당당히 원하는 것을 사는 기쁨.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여유. 그것이 성취감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작가로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 

물론 조금 더 사치를 해도 넉넉했던 교사생활의 그때도 나름 행복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나는 전업작가이다. 이제는 분수껏 살아야 한다. 내가 흔들리면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 가족은 모빌 같다. 하나가 흔들리면 곧 전체가 흔들린다.

모자라면 아껴가며 살면 된다. 소고기를 먹지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으면 된다. 생선회를 먹지 못하면 꽁치구이를 먹으면 된다. 최고의 맛은 그 음식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조금 힘들어도 남 탓, 세상 탓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끝가지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기대지 않기 위해서. 아니, 기댈 수 있는 벽이 없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선명해졌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이 시간이 철부지 어른 아이를 철이든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다.

더 큰 욕심은 없다. 희망이 있다면 꾸준히 글을 써서 세상과 소통하며 더 큰 결핍 없이 사는 거다. 좋아하는 글을 쓰며 그 대가로 누린다는 것, 그것이 내 몫의 행복이다. 앞으로 한 줌의 희망을 추가한다면 소녀를 위해 더 맛있는 것, 함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며 놓치거나 잃어버린 즐거움을 되찾아 누리는 거다. 현재의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환희, 만족을 발견해 나갈 거다. 앞으로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함'을 찾아 생을 노래할 것이다.

지옥 같은 어제를 잊지 않되 천국 같은 내일을 꿈꾸며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생은 없다. 결국,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조건은 현재의 나를 정확히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어디서 무엇을 하든 두렵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다시 말해 생의 최고의 가치인 행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공짜로 얻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말고 남에게 뺏지 말고. 발에 땀나도록 노력해서 가지는 거다. 

실체가 없는 행복이라는 추상명사를 실체가 있는 보통명사로 만들어야 행복의 주인공이 된다. 그때가 되면 저절로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진다. 누릴 수 있는 조건, 자격이 갖추어진 최고의 날이 된다. 곧 밀물 되어 만족감이 밀려든다. 순식간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고 흐르는 만족의 전율, 감동, 그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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