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내가 호주에서 장을 볼 때 자주 이용하는 곳은 Coles와 Woolworth였다. 이 두 곳은 호주의 대표 대형마트인데, 싱싱하고 다양한 식재료들이 있어 장보는 맛이 쏠쏠하다.

한국에 있을 땐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외식을 주로 했다. ‘요리’는 첫 독립 생활에서 배운 첫 생존 기술이다. 필요하다면 한인마트에서 웬만한 식재료도 구할 수 있으니 한식도 거뜬하다. 차차 요리에 눈을 뜨고 재미를 붙일 때쯤 생각난 곳이 있었다. 바로 퀸 빅토리아 마켓.

퀸 빅토리아 마켓은 엘리자베스 거리와 빅토리아 거리의 교차점 모퉁이에 위치해 있다.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데, 영업시간과 내가 일하는 시간이 매번 겹쳐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었다. 간만의 휴일.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향했다.

매번 입구만 지나쳐서 몰랐는데 안쪽으로 뚫린 내부가 굉장히 크다. 의류, 식료품, 기념품, 길거리 음식 등 없는 게 없다. 줄줄이 걸린 소세지들,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먹음직스러운 치즈들, 비비드한 색감의 과일들. 여행으로 왔더라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창 시장을 구경하는데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발견했다. 도넛 버스! 줄을 서면서까지 먹는다.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는 손바닥만한 도넛. 이게 뭐길래 줄까지 서는 거야?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도넛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호기심에 도넛 여섯개를 6달러에 구입했다. 따끈따끈한 도넛을 한입 베어 물자 푹신한 빵의 식감과 분명 집에서 만들었을 달콤한 딸기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경솔했던 나를 반성한다. 엄청난 맛이다. 도대체 맛의 정체가 뭘까. 빵? 쨈? 설탕? 분명 평범한 것 같은데 먹을수록 계속 먹고 싶어진다. 알고보니 이 도넛 버스는 이곳의 명물이란다. 마켓 안엔 도넛 말고도 주전부리가 많은데, 그 정점을 찍는 특별한 마켓이 열린다.

‘THE NIGHT MARKET’!

일정 기간에 매주 수요일 오후 다섯시부터 열리는 나이트 마켓에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각 매대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한다. 남미식 고기요리, 스페인 음식 빠에야, 거대한 크기의 팬케이크, 코코넛 음료수, 심지어 명동에서나 볼법한 회오리 감자도 있다! 한국인 몇 분께서 분주하게 회오리 감자를 튀기고 계셨다. 언뜻보니 회오리 감자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건 빠에야와 사워크림을 얹은 밀전병(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그리고 남미식 고기요리다.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뭐 페스티벌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지갑을 탈탈 털었다. 테이블들이 비치되어 있지만 수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아무렴 어때, 사람들은 바닥에 털썩 앉아 음식을 즐겼다.

호주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민국가에 BEST 3 안에 든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는데도 다른 나라보다 까다롭지 않아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이 모인다. 내가 일하던 곳엔 무려 여섯개국의 친구들이 있었다. 각국의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 그 나라의 음식을 즐겼고, 나 또한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음식을 소개했다(막걸리도 한사발 했다지).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다는건 그 나라를 경험하는 일과 같다. 마켓 안은 갖가지 음식냄새로 가득했다. 수많은 음식들이 조리되고 있는데, 냄새들이 섞여서 도리어 이상한 냄새가 날 수도 있는데, 각각의 개성들이 살아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냄새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삶. 내 앞에는 세 나라의 요리가 있다. 나는 이들의 삶을 한입씩 담아 넣어 꼭꼭 씹어먹었다. 향이 입안 가득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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