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에 속하지 싶다. 봄도 물론 좋지만 요즘은 미세먼지가 워낙 심하다보니 아무래도 그 위상이 전만은 못한 것 같다. 여름이나 겨울은 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이에 비해 가을은 미세먼지 걱정도 좀 덜 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높고 맑은 계절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하늘’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게 바로 요즘, 9월이다. 거기에 딱히 춥지도, 덥지도 않게 적당한 가을의 온도는 무더위에 지쳤던 이들이나 한 겨울 오들오들 떠는 이들에게 계절 사이의 안식처가 돼 준다.
계절이 바뀌어감에 따라, 요즘 길거리에서는 푸릇푸릇 무성했던 나무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가는 걸 볼 수 있다. 으레 ‘나무들이(산이) 색동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말을 쓰는데, 굉장히 상투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요맘때의 풍경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이 계절, 가을을 닮아 알록달록한 색감을 뽐내는 ‘예쁜’ 영화들을 몇 편 꼽아봤다. 이른바 ‘색감이 예쁜 영화’들이다. 다만 기자도 사람인지라 색감이 아름다운 세상 모든 영화를 소개하긴 어렵고, 놓친 영화들도 있을지 모른다. 영화를 사랑하시는 교양공감 포스트 독자 여러분께서 댓글을 통해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 다홍색이 어여뻐라, 그녀 (2013)
교양공감 포스트의 애독자분들은 “또?”라며 지겨우실 수도 있겠다. 벌써 여러 건의 포스트에서 이 영화를 언급한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를 만큼 자주 거론됐으니까.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이 영화, ‘그녀’는 음악, 내러티브, 연기 측면에서도 뛰어나지만 미술적인 부분 역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주인공 테오도르가 입은 다홍색 셔츠가 강렬하면서도 따스한 색감을 자랑해, 이 영화를 상징하는 컬러로 등극했다. 이 영화의 2차 창작 이미지 등에는 반드시 해당 색상이 등장하는 것도 같다.
■ 신비한 바다의 푸른색,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바다는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일기에 따라 먹구름 같은 회색이 되기도 하고, 해가 저물어갈 때는 감귤주스처럼 샛노랗게 물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밤에 보는 바다는 어떤가? 밤 하늘과 마찬가지로, 밤 바다는 새카맣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안에 온갖 짙푸른 색색들을 숨기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다채롭게 변하는 바다의 색감을 아름답게 표현해 숱한 찬사를 받았다. 주인공 파이가 바다를 표류하면서 어떤 날은 하늘을 반사하는 거울 같은 바다를, 또 어떤 날은 생명의 신비가 느껴지는 청록색의 바다를 보게 된다. 그것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으면 자못 바다를 표류하는 주인공이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인지라.
■ 가녀린 연분홍색,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2014)
이 영화는 이번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다른 여느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여러 색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러나 이 영화 하면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색은 벚꽃을 닮은, 아니면 그보다 조금 연약한 느낌을 주는 연분홍색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연분홍색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색을 자주 등장시킨다. 영화 제목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풍경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케이크 상자까지 대부분이 그 색을 하고 있으니. 아니, 애초부터 카메라 앞에 연분홍색 필터를 끼워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 게으른 햇살의 주황색,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2003)
온갖 다양한 색이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이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기자는 이 영화 하면 게으른 햇빛을 닮은 노르스름한 색이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게 인상적인 장면에서 사용되는 컬러 대부분이 그런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줄리앙과 소피의 유년시절 첫 키스 장면, 철도 위에 눈을 가리고 서 있는 내기 장면, 관계가 틀어진 뒤의 감정선을 표현할 때마다 석양 같은 주황색을 사용했다. 심지어 영화의 결말에도 그런 노르스름한 색감을 능청스럽게 담아냈다.
■ 수선화처럼 해맑은 노란색, 빅피쉬 (2003)
기괴하면서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 영화는 상당한 명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이제는 ‘움짤’로 만들어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제법 많다. 이를 테면 ‘팝콘 장면’이라거나…
그중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장면은 주인공 에드워드가 산드라에게 청혼하는 부분이 아닐까? 수선화를 좋아한다는 산드라를 위해 잔디밭에 한가득 수선화를 심어놓고, 그 속에 서서 그윽하게 바라보는 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은 남자의 시선까지도 사로잡는다.
■ 알록달록한 풍경처럼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색감을 좋아라한다. 흰색, 회색, 검정색 등의 무채색은 칙칙하고 메말라 보일 수 있는데, 빨간색이나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등 원색계열은 생동감이 느껴지니까.
시각적으로 원색계통의 알록달록한 색상을 좋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색을 온도로 인식하기도, 맛, 감정 등으로 느끼기도 하니까. 그래서 추상적인 무언가를 표현할 때 색은 그 쓰임새가 상당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 알록달록한 영화에 쓰인 색들도 관객들의 뇌리에 감각적으로 와 박히는 것 같다. 검색 포털에 ‘색감이 예쁜 영화’를 찾아보면 나오는 결과가 한 둘이 아니니까. 오죽 색감이 예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쓰라고 만들어진 이미지도 있을까.
이처럼 다양한 색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은 이번에 교양공감팀이 소개한 게 다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란색과 하늘색의 색감이 돋보이는 영화 ‘문라이즈 킹덤’나 녹색, 붉은색이 강렬하게 표현되는 ‘아멜리에’도 추천의 물망에 자주 오르고, ‘라라랜드’ 역시 온갖 원색이 아름답게 표현되며 ‘색감 예쁜 영화’로 언급되니까.
거리의 가로수들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빨갛고 노란 색색들이 가로수, 길거리, 들, 산을 물들일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지금보다 한결 알록달록해지면 그 모습이 퍽 보기 좋을 것이다. 우리 뇌리에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영화 속의 색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