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나는 스콘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맛본 스콘은 퍽퍽하기만 했다. 아무리 버터와 잼을 발라 먹어도 소생이 불가능한 맛이었다. 지금은 맛이 개선 됐는진 모르겠지만, 그 이후 스콘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스콘을 잊어갈 때쯤, 친구들이 스콘 맛집이 있다며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스콘 맛집은 단데농에 위치해 있었다. 단데농은 퍼핑빌리에서 증기기관차를 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무려 100년이나 된 증기기관차를 타고 짙푸른 숲속을 달릴 수 있다. 창문 밖으로 다리를 내놓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걸 안 하면 퍼핑빌리에 온 게 아니라는 듯 너도나도 다리를 쭉 내민다. 사실 사진만큼 엄청난 감흥이 있진 않았지만, 퍼핑빌리를 다녀온 후엔 굳이 단데농에 다시 올 일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온 이유가 스콘 때문이라니! 퍽퍽한 스콘 때문이라니! 친구는 꼭 여기서 스콘을 먹어야 한다며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Pie in the Sky’. 파이로 그렇게 많은 메달을 땄단다. 괜찮은 자리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았다. 좋은 이웃의 별장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하다. 투박한 인테리어에 무심함이 느껴지지만 자리에 앉아 있으면 도리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자 이제 스콘을 먹어볼 차례. 메뉴판을 보니 스콘 말고도 많은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콘, 미트 파이, 레몬 머랭 파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파이 인 더 스카이의 미트파이

호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미트파이’이다. 파이페이스라는 프랜차이즈 파이집은 멜버른 시내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저녁이 되면 거의 모든 파이가 팔린다. 바쁜 아침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사먹는 것처럼, 호주 사람들은 미트 파이를 먹는다.

나는 호주에 오기 전까지 미트 파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파이페이스에서 일하는 룸메이트 덕에 하나를 먹어보았다. 파이 하나만 먹어도 배가 금방 찬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 안에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있어 육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쇠고기를 넣으면 쇠고기 미트 파이, 양고기를 넣으면 양고기 미트 파이, 닭을 넣으면 닭고기 미트 파이가 된다. 재료에 구애 받지 않는다. 

만드는 방법 또한 간단하기에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미트 파이를 사랑하는 호주 사람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는데, 스콘은 달랐다. 스콘은 열렬한 관심을 받지 않았다.

레몬 머랭 파이

얼마간 기다리니 정갈하게 담긴 스콘과 파이들이 나왔다. 사실 미트 파이는 다른 가게에서 먹었던 것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레몬 머랭 파이는 너무 달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이때 쓰이는 걸까.

이제 스콘만이 남았다. 따끈따끈한 온기가 손가락으로 전해져 온다. 라즈베리 쨈과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올려 한입에 넣었다. 어?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스콘은 스콘이 아니었다. 겉은 노릇노릇 바삭하고 안은 식빵처럼 푹신했다.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 먹었던 도넛처럼, 여기 스콘 또한 분명 평범한데 절대 평범하지 않다.

스콘, 라즈베리 쨈, 클로티드 크림

스콘은 먹을 것 없기로 유명한 영국의 대표 음식이다. 기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 귀리와 버터밀크를 넣고 만든 퀵브레드를 원형으로 본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 또한 간단한데, 흰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달걀, 버터, 우유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말린 과일, 치즈, 설탕 토핑을 추가할 수도 있다. 스콘이라고 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 스콘이었다. 그러나 파이 인 더 스카이의 스콘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스콘 자체다.

간단하다. 바구니에 담겨져 나온 두덩이의 스콘, 적당한 양의 라즈베리 쨈과 클로티드 크림이 전부다. 다른 첨가물을 넣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문득 스콘이라면 단순하고 간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맛있어 보이려고, 더 맛을 내보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면 어느새 본연의 맛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차이라떼

덜어내고, 덜어내는 법. 지금보다 더 간단하고 단순해지고 싶다. 벌써 바구니가 비워졌다. 포장을 할까 했지만, 갓 구워낸 스콘이 가장 맛있다기에 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스콘을 맛보며 간단함의 미덕을 입안 가득 느끼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남긴 클로티드 크림과 라즈베리 쨈이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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