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아닌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나폴레옹

 

[공감신문]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때부터 잔소리 듣는 걸 몹시 싫어했다. 다리 떨지 마라, 책상 정리를 해라, 똑바로 걸어라, 입 꼬리를 내리고 있지 마라.... 어른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 거슬리는 게 무지 많으셨나보다. 어릴 때에는 그 상황을 얼른 모면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하려는 시늉을 했었다. 하지만 스스로 그걸 고쳐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개선의 의지가 없었던 거다.

대표적으로 나에겐 걸음걸이가 그렇다. 난 좀 특이하게 걷는 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멀리서 걸음걸이만 봐도 나인 줄 알아본다고 한다. 좀 ‘총총총’ 걷는다.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시절, 아니 그 전에도 연기 수업을 받으면 늘 튀는 걸음걸이를 지적받곤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걸음걸이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나약한 내 의지로는 고칠 수 없었고 여전히 그 ‘틀린’ 걸음걸이를 유지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틀릴 것이다.

영화 아리아 스틸 컷

정말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내가 자주 듣는 말 BEST5 중 하나는 이거다.
‘도대체 넌 못하는 게 뭐니?’
우선 평소 요리를 즐겨하는 편인데, 맛본 지인들은 모두들 내 손맛을 인정해주더라. 이전에 나는 백업 댄서로도 활동했을 만큼 춤을 좋아했었다. 스킨 스쿠버 라이센스는 물론이요, 수영도 접영까지는 한다. 외국어는 기본적인 영어, 중국어 조금. 아빠를 닮아 그림도 조금 그릴 줄 안다.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왜? 난 내가 못하는 것들을 당신들에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기회도,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난 내가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일 수밖에.

난 약점이 너무도 많은 인간이다. 위에서 말한 습관 같은 것들 뿐 만이 아니다. 우선 난 숫자에 몹시 약하다. 한번은 이런 일화가 있었다.

작년 11월 말이었을 거다. 친한 동생들과 광화문에 촛불을 지피러 갔다가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기사들을 보는데, 방금 우리가 갔던 집회에 ‘30만 명’이나 모였다는 게 아닌가! 난 순간 좀 격양된 목소리로 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30만 명 왔데! 그럼 우리나라 인구 반이나 온 거 아냐? 대박.”

그 때 지하철에서 나를 쳐다보면 뭇 낯선 이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눈을 깜빡깜빡 거리는 나 대신 얼굴이 붉어진 동생들이, ‘누나 우리나라 인구 6000만이야...’라고 말해주더라. 그 다음 주엔 100만 명이 모였다. 난 이때 우리나라 인구가 60만이 아님을 확실히 알았다.

수 개념은 물론, 엄청 충동적인 성격이라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할 거고 해본 적도 없다. 균형 감각이 떨어져서 자전거도 잘 못 탄다. 손아귀 힘이 없어서 태어나서 한 번도 팔씨름을 이겨본 적이 없다. 가끔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다. 예민해서 불면증을 달고 사는데, 또 엄청 게을러서 하루에 한 가지 일 밖에 해내지 못한다. 감정 기복이 진짜 제멋대로다. 

아마 내가 직장에 다녔더라면 이런 단점들을 개선하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을 거다. 아니, 어느 조직 안에 있을 때 늘 그랬던 것 같다. 학교 선생님들도 나에게 늘 그랬으니까. 심지어 공부에 있어서도 그랬다.

영화 폴링 스틸 컷

문과적 인간이었던 내가 그나마 가장 잘하던 과목은 외국어와 사회과 과목이었다. 수리/과학 탐구 쪽은 만년 하위 점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게 ‘고질병’이라고 느낀 선생님들은 나에게 ‘넌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니, 부진한 과목들을 더 공부해서 평균을 올려라’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하지만 난 그게 ‘고질병’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며 수학 쪽으로는 머리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난 내가 잘하는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반에서 중하위권 성적이던 내가, 아무리 반 1등보다 영어와 사회를 더 잘한다고 해서 그런 경시나 토론 대회에 내보낼 생각을 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런 상장이 대학입시에 시너지 효과를 줄만한 상위권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공부는 그냥 다 자기만족이었다.

하지만 난 내 방식이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개발시켰던 강점들로 아주 게으르고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주변에서 ‘정말 쟤가 저렇게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고 의심을 품다가 슬슬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요즘, 내 편이 되어주는 책 한권을 만났다. 바로 ‘강점혁명’이라는 책이다.

이미 월스트리트 저널 및 미국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책은, 우리가 약점들을 보완할 시간에 강점을 개발시키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린 매스컴을 통하여, 아니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위인전을 읽어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하는 희망의 아이콘들을 만나왔었다. 

Impossible Is Nothing, 불가능은 없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힘들고, 어렵고, 드문 경우니까 몇 백 년이 지나도 위인전이 나오고 TV에 출연하는 것이다. 꼭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가능한 것들을 더 잘 해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을, 남들 보기에 진짜 잘해내는 것도 무지 힘이 든다. 왜? 더럽게 잘하는 애들 천지잖아.

이 책에 안내된 검사를 통하여 나의 강점 5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내가 그것들을 써먹고 있었음은 물론이요,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이것을 확인함으로써 내가 가진 역량을 어떻게 발휘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지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책의 저자이자 강점 기반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날드 클리프턴

매주 칼럼 두 편을 연재하고 있는 나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한다. 이번에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스토리텔링 및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자리를 제안 받았다. 칼럼니스트로서의 활동 역시 적극 호응해주는 이 회사는, 나에게 정식 출퇴근을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유롭게 사고하는 내 방식이 흐트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3년 가까이 매주 1-2개씩의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 온 내 칼럼도 회색빛으로 진부해져 버릴 것 같았다. 삶 자체가 나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 남들과 똑같은 방식을 구사하되, 심지어 성실하지도 않으면서 디렉터랍시고 건방을 떨 게 빤히 보였다.

“대표님, 저한테 말씀하신 업무나 소프트웨어가 지금은 정말 흥미롭게 들려요. 하지만 저를 9 to 6 매일매일 사무실에 잡아두시면 전 그 일에 금방 질려버릴 거예요. 그게 제일 겁나요.”

결국 한달 여의 고민 끝에 회사 측은, 출퇴근을 하지 않되 일주일에 한번 사무실에 오는 조건으로 나를 쓰시기로 결정하셨다. 나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첫 번째 이유였으니까.
난 뭐든지 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못하는 건 더럽게 못한다고, 심지어는 어떤 건 더 해낼 자신이 없다고도 말한다. 성실한 직원? 난 될 수 없다. 하지만 전략/발상/최상화/개별화 그리고 행동은 자신 있다.

이렇게 고질적인, 아니 고착화된 취업난 속에서 또 하나의 일을 얻은 나는, 다음 주엔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볼까 하고 여유로운 계획을 세워본다.

재수 없나? 재수 없을 거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들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더라. ‘성실한 나라’가 이 나라였다. 그렇게 모두들 열심히 사는 데도 불구하고, 그 노력만큼 행복한 표정은 아니더라. 잘 사는 게 행복한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노력하면 잘 살거나 행복하거나 둘 중 하나는 가졌으면 한다.

불완전을 자신을 인정했으면 한다. 까짓 거, 나 이렇게 약점 많은데 어쩌라고? 하는 거다! 대신 자신의 매력과 강점을 더욱 어필하고 발전시키는 거다. 자신이 가진 ‘안 좋은 점’을 모두 옳다고 여기라는 건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들- 예를 들어 습관적인 음주 운전 같은 건 마땅히 고쳐야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게 아니라면,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 힘을 쏟는 대신 대체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효율적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힘써야하는 건 ‘배움’이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개발시켜야 하는 건 ‘강점’인 것 같다. 자신의 생산성을 인정받을 때 우리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기분을 맛보며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 오리는 백조를 낳을 수 없다, 아니 낳을 필요가 없다고 해야 맞다. 백조는 보기에 좋고, 오리는 맛이 좋다.(오리야 미안)

내가 무엇을, 어떤 것을 잘 낳을지 아랫배 위에 손을 얹고 찬찬히 생각해 보시길. 남들이 보기에 좋다는 것, 혹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닌 진짜 본연의 나를 느끼며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엔 이 똑같은 글이 재수 없게 느껴지지 않는, 재수 좋은 나날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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