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여당이 대통령 속을 더 새카맣게 태우나"

 

[공감신문 이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가 경제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지경"이라고 말했다. 같은 심정에서 박 대통령은 재계가 추진하는 서명운동에도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여했다.

박 대통령이 민생안정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주길 바라는 18개 경제법안중의 하나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코스피, 코스닥, 파생상품 등 기존 3개 시장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거래소는 이번 국회에 법안이 통과될 것을 기대하고 지주회사를 상장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여당 때문이다. 걸림돌은 지주회사의 본사를 부산에 두는지의 문제였다. 원안에는 부산을 본사로 둔다고 돼 있었는데, 야당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부산 본사 조항을 꼭 넣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이 조항을 담긴 법안은 처리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간다고 호소했지만, 정작 집권 여당이 잿밥에 눈이 멀어 알맹이가 담긴 법안은 제껴두고, 다른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 법안은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적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장사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공매도 공개 의무등의 내용은 자본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가진자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자유로운 투자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고도, 새누리당이 시장 발전을 지향하는 보수세력인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것을 여당이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속을 더 태운게 아닌지.

 

자본시장법 개정안 가운데 핵심은 거래소 지배구조개편안이다. 개편안 본문은 애초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되, 지주회사의 본점을 부산에 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민간회사인 거래소의 본점 소재지를 법률에 넣어 강제하는 것이 이례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 쟁점 법안으로 비화됐다. 또 일부 비(非) 부산 여당 의원들도 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여당은 개정안에서 본점 조항을 없애는 대신 거래소 정관에 부산 본사 소재 규정을 넣는 방식으로 절충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부산 지역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자본시장 발전보다는 텃밭인 지역구 민심이 중요했을 것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차라리 이 조항을 빼는 한이 있더라도 부산 본사 문제에 확답을 주지 못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자본시장법 본 조항이 아닌 부칙에 거래소의 본점 소재지를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시행된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특화 금융중심지'는 부산 한 곳이어서 야당은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회사의 본점 소재지를 본문이든 부칙이든 넣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뜻에 변함이 없다"며 "거래소를 지주사 체제로 개편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발상에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거래소를 지주사로 바꾸고 유가·코스닥·파생상품 등 기존 3개 시장 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거래소 지배구조개편안이 담겨 있지 않은 법안은 올라오지도 못했고, 그와 별도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그 개정안은 자본시장 발전과는 상관 없는 내용들로 차있다. 기업 오너 가운데 누가 봉급을 많이 가져가는지 이름을 공개하고, 하락장에서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을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투명성을 확대하기보다는 챙피를 주자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상장회사의 경우, 연간 보수 상위 임직원 5명의 보수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법이 발효되면 미등기 임원으로 있는 오너 일가의 연봉이 공개된다. 오너 기업인들 가운데 회사가 손실이 날 때 사재를 털어 살려놓고, 수익이 날 때 이를 보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개인돈 털어 넣고, 회사가 살만하면 얼마나 봉급 가져가는지 공개하라면, 어느 기업인이 상장을 하려 것인가. 자본주의가 성숙한 서구에서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봉급을 많이 가져간 오너 가문에 대해 비난하는 풍조가 강하다.

따라서 이 조항에 대해 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는 이날 공동으로 입장을 정리한 자료를 내 "연봉공개는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며 "상위 5인을 무조건 공개하는 경우 높은 성과를 내서 많은 급여를 받는 직원들도 공개 대상에 포함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또 "임원 개별보수 공개가 회사 투명성 제고나 실적 개선과는 상관성이 적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며 "오히려 연봉이 공개된 임원들이 범죄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또 정무위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대량 공매도를 할 경우 이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는 일정 비율 이상 공매도를 한 기관이나 개인이 금융감독원에 자신의 공매도량을 보고하지만 시장에 공시할 의무는 없다.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앞으로 누가 얼마나 공매도를 하는지 시장 참여자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투자전략 노출을 우려한다. 공매도에 대한 규제가 가해지면 거래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은 오를때가 있고, 내릴때도 있는데, 내릴 때 투자하는 내용만 공개하라는 것은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오를 때 투자하는 내용도 공개해야 하지 않는가. 다른 법안은 선진국에서 모방하면서 공매도 규제는 선진국에도 없는 내용을 만들었는지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릴 때 투자하는 숏세일 리스트를 공개하면 많은 투자자들이 오를때만 투자하고, 그렇게 되면 시장은 과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누가 책임지나. 시장에 거품이 커지면 국회의원들이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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