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정제우/12사도

[공감신문] 우리가 살면서 ‘숭고함’을 느낄 때가 얼마나 있을까. 나의 경우 숭고함이라는 단어는 멀게만 느껴졌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이었고, 내가 직접 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내가 그레이트 오션로드에서 만난 12사도에게서(아마도 처음으로) 숭고함을 느꼈다고 하면 어떻게 들릴까. 정말 웃기게도 ‘숭고하다’라는 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어떤 광경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 위기에 봉착하곤 한다. 지금 이 감정에 어떤 단어가 적절한지 골똘히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대체 적절한 단어가 뭐냐는 말이다. 집에 있는 국어대사전은 무려 4772페이지나 되지만 내가 쓰는 단어는 반절도 안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할 땐 자신의 언어 영역에 있는 단어를 자연스레 쓰게 된다. 애매하게만 느껴졌던 숭고함은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만난 뒤 나의 언어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이제 숭고함이 뭔지 알게 됐거든!

출처=정제우/12사도

나는 두번에 걸쳐 12사도를 보았다. 한번은 노을 질 무렵, 한번은 다음날 아침. 멜버른에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숙소는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캠핑장이었다. 나와 일행은 숙소에서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12사도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주자창에 차를 주차하고 푯말을 따라 얼마간 걸어가니, 절벽 너머로 12사도의 모습이 드러났다. 약 천년에서 이천년 전에는 원래의 절벽에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풍파에 깎이고 깎여 온전한 12사도가 아닌 8사도를 감상할 수 있다. 일년에 약 이cm씩 지속적으로 깎여 나가는 터라 수십년 수백년 뒤면 단 하나의 기둥만이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모습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파도는 여전히 거세게 치고있다.

출처=정제우/해변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일몰이 시작되었다. 계란 노른자 같은 해가 기울면서 코발트빛을 띠던 바다가 황금빛으로 변했다. 아니, 바다 뿐만이 아니라 이 일대가 전부 물들었다. 천천히 조금씩 짙은 오렌지 색으로 물들어 가는 12사도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노을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 쬘 때의 황홀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 버리니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황금빛을 잃고 다시 어둠에 잠겼다.

출처:정제우/런던 브릿지

다음날 아침의 12사도는 또 달랐다. 이번엔 바닷가에 내려가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절벽과 모래사장을 이어주는 깁슨 스텝스를 따라 내려가니 12사도의 압도적인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압도 당했다. 바다 위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12사도의 모습은 마치 조각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였다. 초자연적인 힘이 들어간 듯한 아름다움. 절대자가 바다 위에 박아 넣은 듯한 경이로움.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에게 갑자기 전혀 다른 감정이 불쑥 솟아올랐다.

공포. 한없이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제 절벽 위에서 관조하며 바라봤을 때와 오늘 가까이 마주했을 때의 간극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 장엄함, 위대함, 무서움, 경이로움... 여러 단어들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이 중에서 어떤 단어가 가장 어울릴까. 자연의 산물 앞에서 고민하던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출처=정제우/지오토

아아 숭고하다! 내가 한낱 먼지처럼 느껴지던 순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공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단어. 순식간에 ‘숭고함’에 도취되어 버렸다.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에게 처음으로 숭고함을 일깨워준 12사도를 보며 무력함을 느끼다가도 이내 담담해졌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한결 편안해 졌다. 그렇다고 “역시 나같은 건 쓸모 없는 존재야”라는 식의 감상이 아니다. 숭고함 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영감을 받는다. 초월적인 기운이 내 몸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속에서 쉽게 할 수 없다. 숭고함은 흔하지 않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늘을, 바다를, 사막을, 산을 찾는 이유는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